‘코로나 시대’에 돌아보다… 중세 교회의 전염병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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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칼럼] 불공평한 시대에 찾아온 공평한 것

▲중세 흑사병을 표현한 그림.

▲중세 흑사병을 표현한 그림.

중세 유럽인들은 불안감과 두려움의 도가니 속에 살았다. 반문화, 반노동 정신은 조악(粗惡)한 기술, 봉건제도의 구조적 모순, 그리고 빈곤을 선사했다. 호구(糊口)가 불가능했으며, 생존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중세는 굶주림의 천지였고, 배고픔에 대한 강박관념의 시대였다. 빵에 대한 기적 이야기가 사람들의 상상력과 신앙심을 증대시켰다. 가나 혼인잔치의 포도주 기적보다 갈잉리 호수변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이야기가 훨씬 더 인기 있었다.

이 시대의 기적 이야기들은 대부분 빵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궁핍한 가운데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등의 내용이었다. ‘풍요의 나라(The Land of Cackaygne)’에 대한 꿈은 13세기 문학의 중심 주제였다. 이 무렵 왕국의 실록은 배고픔을 다루는 작품과 성자들의 전기와 전설을 많이 담고 있다.

자연재해는 기아에 허덕이는 중세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재앙은 흉작, 가뭄, 홍수와 더불어 찾아왔다.

일기불순은 식량부족을 낳았고, 물가를 폭등시켰다. 물가폭등은 빈약한 영양으로 인한 질병과 고통과 죽음을 몰고 왔다. 비축된 식량은 거의 없었고, 농지의 생산성이 낮았다.

자연과 동물들에 의한 곡식 피해도 컸다. 쥐는 식량 생산을 크게 감소시켰다. 쥐들이 밀밭을 휩쓸어 식량부족 상태를 가져왔다. 피리를 불어 마을의 쥐를 퇴치했던 독일의 전설적 인물이 문학 작품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메뚜기의 침입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재앙은 2년, 3년 혹은 4년마다 반복되었다. 재앙의 주기가 빠를수록, 지옥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중세 천지는 공포로 가득 찼다. 농민들은 흉작과 재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었다.

클루니수도원 수도사로서 당대 이야기를 몇 권의 책으로 남긴 랄프 글라베르(Ralph Glaber)는 1032년과 1034년 사이에 그가 겪었던 재앙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기근이 그 포악성을 떨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거의 전 인류가 소멸될까 하여 두려워했다. 열악한 환경조건 때문에 파종을 제때 할 수 없었고, 특히 홍수 때문에 곡식을 거둘 방도가 없었다.

땅을 파고 파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3년 동안 비가 와서 땅이 흠뻑 젖어 있었다. 수확철에는 잡초와 독보리들이 밭 표면을 온통 뒤덮었다. 간혹 식량을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마음대로 터무니 없는 값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야생동물과 새를 잡아먹었으며, 극심한 기아 때문에 온갖 종류의 썩은 고기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죽음을 면하기 위해 초근과 수초를 먹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 만연했던 도착적(倒錯的)인 이야기를 들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 슬프도다! 어느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극심한 기아로 인해 사람들은 인육을 먹었다. 여행자들은 자신보다 더 건장한 사람들에게 유괴되는 일이 흔했고, 그들은 사지가 절단되어 불에 구워져 다른 사람들의 먹이가 되었다.

기근을 모면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방황하다 도중에 환대를 받게 된 사람들은, 자신을 환대해 준 사람들에 의해 살해돼 먹이로 이용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과일이나 계란으로 아이들을 꼬여 으슥한 곳으로 데려다가 탐욕스럽게 잡아먹었다. 시체들이 도처에서 도굴되어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 이용됐다.”

사람들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찰흙을 파서 밀기울에 섞어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얼굴은 영양실조로 인해 창백하고 앙상했다. 피부는 고창병으로 축 늘어졌다.

굶주림으로 인해 죽은 자들의 매장되지 않은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늑대들은 시체들을 먹었다. 시체가 뒤죽박죽 쌓였다. 발끝에 걸리는 것이 시체였다.

1221년에서 1280년 사이 몰아닥친 자연재앙은 더 극심한 기근을 가져다주었다. 농작물이 생산되지 않거나 냉동됐다. 식량과 생활필수품 부족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고,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대기근은 1314년과 1317년에도 찾아왔다. 폭우과 홍수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극심한 기근은 빈자들을 방문하고, 부자들은 피해갔다.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타격을 받았다. 그들의 신체가 극심한 굶주림 때문에 귀족들에 비해 허약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교회는 기근을 해결할 방책을 세우는 대신, 그것을 인간 타락의 결과로 해석했다.

불공평한 시대에 찾아온 공평한 것이 있었다. 흑사병은 빈부를 차별하지 않고 사람들을 삼켰다. 1348년 들이닥쳐 수많은 농민들과 귀족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결과 경작지 대부분은 황무지가 되어버렸고, 영주들은 농지를 노동력이 적게 드는 목축지로 전환했다. 아비뇽에서는 하루 동안 1,320명이 사망했다. 교황이 파악한 바로는 그 다음 날에도 400명 이상이 죽었다.

수많은 수도사들이 희생당했다. 사순절 기간에 358명의 탁발 수도사들이 사망했다. 몬트펠라수도회 140명의 탁발 수도사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다만 7명이었다. 막달레나수도회 160명의 수도사 가운데서는 7명이, 마르세이레스수도회의 150명의 수도사 가운데서는 단 한 명만 살아남았다.

아비뇽에서 죽은 갈멜수도회 수도사는 166명이었다. 그들의 주검은 서로 집단 살해한 것처럼 보였다. 탁발 수도사들이 특히 많이 희생된 것은 섭취한 음식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중세기는 조악한 음식의 세계였다. 사람들은 가축이 먹는 사료를 먹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질병에 노출됐다. 호밀에 생긴 깜부기가 일으키는 맥각병(Ergotism)이 유난히 심했다.

이 균은 몸 속에 파고들어 사지를 석탄처럼 까맣게 태웠다. 1090년, 1094년, 1109년, 1235년에 기승을 부렸다. 썩은 사지를 절단하고, 목숨만 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트완비에누아(St. Antoine en Viennois) 수도원은 맥각병을 고쳤다는 어느 죽은 성자의 유골이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했다. 제1차 십자군 원정(1096)에 나선 사람들은 대다수 허기진 사람들이었다. 독일과 프랑스 지역 출신 농민들은 기왕 죽을 바에 “거룩한 일”을 위해 죽자며 자원했다.

중세인들을 괴롭힌 질병은 여러 가지다. 한센씨병, 종양, 탄저병, 옴, 궤양, 종창, 암종병, 습진, 단독(Saint-Sylvain), 궤양성 혹은 결핵성 연주창(Scrofula or Ulcers)이 괴롭혔다. 맹인, 꼽추, 절름발이, 중풍환자가 많았다.

갑상선 환자, 무도병, 간질병, 광란자, 정신이상자, 미치광이도 많았다. 치통, 복통, 구루병(Colic)을 앓는 사람도 많았다. 질병은 중세인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극대화시켰다.

교회는 질병의 횡포에 무력했다. 미신적 치료술을 배척할 것인지, 아니면 수용할 것인지를 두고 머뭇거렸다. 신자들은 질 나쁜 음식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렸고, 그러한 육체는 환영(幻影)을 보는 등 정신적 질환을 겪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출현한 천사, 악마, 성자, 성모가 인기를 끌었다. 화체설, 연옥교리, 공로구원 사상이 호감을 줬다. 허약한 육체는 그 교리들을 중세기적으로 지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비판적 정신은 그것을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유혹했다.

중세 사회는 식량을 비축, 분배하는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공권력이 무능했던 탓에, 식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수학한 곡물을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수송할 수 있는 도로나 행정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노상강도나 해적들이 들끓었고, 지역을 통과할 때마다 관세와 통행세를 징수하는 소영주들이 괴롭혔다. 식량 수송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수송 기술과 설비도 부족했다. 가끔 풍년이 찾아왔지만, 곡식을 보관할 창고가 없었다. 1259년경에는 생산된 곡식보다 그것을 담는 그릇 값이 더 비쌌다.

그 무렵, 탁발 수도사들은 특별한 존경을 받았다. 젊은이들이 걸식하고 다녀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중세 흑사병을 표현한 그림.

▲중세 흑사병을 표현한 그림.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건장한 신체를 가진 거지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월리암 생타무르(William de St. Amour)와 장 드 묑(Jean de Meung)은 만연한 노동 경시 풍조를 탄식했다.

화폐 경제의 재등장과 극심한 물가상승은 중세인의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켰다. 중세 서양의 인구는 10세기 말에서 14세기 중엽 사이 두 배로 증가했다. 인구가 증가하고 재난이 강타하는 가운데서도 농업생산, 임금, 물질생활은 약간의 진보를 보였다.

화폐 경제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화폐는 경제적 힘의 상징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힘의 상징이었다. 군주들이 금화를 주조한 것도 경제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화폐 경제의 발전은 화폐에 대한 민중의 증오심을 증폭시켰다. 초기 화폐 경제는 부르주아 계급과 교회 영주들에게만 이익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억압의 요소였다.

13세기 말 자연 경제에서 화폐 경제로 점진적인 교체가 이루어지자, 세금이 현물에서 화폐로 바뀌었다. 거둬들인 화폐는 급속한 물가 상승으로 영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 봉건제도에 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인구증가로 보유 토지를 분할해야 했다. 소농들은 소멸되고, 부농들은 영주의 예속민이 되었다. 예속민이 아닌 자들은 거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일부 소영주들도 가난한 자가 되었다.

토지의 생산성이 낮고 식구가 많은 농경 사회에서, 빚을 진다는 것은 큰 타격이었다. 많은 농민들이 고리대금업자의 신세를 졌으며, 결국 거지로 전락했다.

화폐 경제의 발전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집단은 상인이었다. 도시의 발전은 화폐 경제를 활성화시키면서 부르주아 계급을 등장시켰다. 경제적 힘을 토지가 아닌 화폐에 기초를 둔 계급이 출현한 것이다.

상인은 고리대금업 외에도 농작물을 매점매석하여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귀족의 지위를 매입했다. 중세인들은 부르주아들과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치를 떨었다.

정치적·사회적으로 어두운 그림자는 중세인의 정신 상태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찾았으며 신앙에 의존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안정된 세계를 동경했다. 도래할 천년왕국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다.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의 비율보다 낮다”는 말을 두려워했다.

13세기 프랜시스수도회 수도사 베르톨드 레겐스버그(Berthold Regensburg)는 선택된 자와 저주받을 자의 비율을 산정했다. 노아 시대 홍수를 예를 들면서, 그 때 죽은 자들의 수와 노아 가족의 수의 비율이 마지막 날에 구원받지 못할 사람의 수와 구원받을 사람의 수의 비율과 동일하다고 했다.

이 주장은 안전, 피난처, 영생을 갈구하던 중세인들의 가슴에 호소력 있게 파고들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먼저 구원을 받기 위해 앞다퉈 교회에 재물을 갖다 바쳤다. 지옥에 대한 공포는 현세적 불안의 연장이었고, 연옥 교리를 잘 수용하도록 만들었다.

불안에 대한 교회의 처방은 교회라는 집단 속에서 연대의식을 갖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신앙으로 승화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세상에서 추구할 수 없는 안정을 수도원에서 찾고자 했다.

저승에서 안정을 소유하기 위해 이승의 덧없는 재물들을 교회나 수도원에 갖다 바쳤다. 이러한 까닭으로 교회와 수도원은 엄청나게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가난하고 굶주리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교회는 웅장한 교회당들을 건축했고, 수도원을 화려하게 치장했다.

1348년경, 흑사병(Pest)이 만연하자 유태인들이 우물에 독물을 넣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여러 곳에서 유태인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당했다. 불안하고 공포스런 사회는 유태인을 희생제물로 삼았다.

교회는 극악무도한 폭력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럽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간 전염병 확산에, 교회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최덕성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최덕성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최덕성, <종교개혁전야(본문과현장사이, 2003)>, 168-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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