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북한 지역에는 정말로 코로나19가 들어가지 않았는가?” 필자는 지난 달 31일, 한 매체에 관련 칼럼을 쓰면서 이 질문을 던지며 의구심을 표한 바 있다. 그리고 4일 후(2.4)에,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화교소식통을 인용해서 신의주에 감염 의심환자 2명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2월 7일, 국내 메이저 언론에서도 북한에도 코로나 19 감염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한바 있다. 13일인 어제, 미국의 소리(VOA)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평양사무소 부대표가 코로나 19 확진자가 없다는 북한의 발표에 의구심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미 국무부도 북한이 코로나 19 발병으로 받을 수 있는 영향을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전염병 예방부문에서 종사했던 어느 탈북 의사는 “북-중 국경지역이 모두 강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다 얼었다. 그것을 다 차단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공개적인 세관은 막을 수 있겠지만 밀수꾼들을 통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마도 들어갔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북한 보건당국은 아직까지 코로나 19 발병 환자가 없다고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후, 입국한 외국인들과 북한 내 일반 주민들 중 의심환자들을 격리조치하면서도 세계보건기구(WHO)에 현재까지 감염자 ‘ZERO’라고 보고하고 있다. 노동신문도 1월 22일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하루에 10편 정도의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에 그 방점을 찍고 있다. 북한당국 및 언론매체들의 보도대로, 북한지역은 바이러스에 전혀 전염되지 않은 것인가?
사스-메르스 사태와는 확연히 다른 코로나 19 대한 노동신문의 보도방식
코로나 19에 대한 노동신문의 관련 기사들을 자세히 검토하고 동시에, 2003년에 발생한 사스 관련 기사 및 2015년의 메르스 사태 관련 기사들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번 코로나 19 관련 보도방식과 사스-메르스 보도방식에 큰 차이가 있음이 드러났다. 각각의 바이러스 대한 노동신문의 첫 보도 시기는 거의 유사하다. 코로나 19 관련 첫 보도는 1월 22일이었는데, 중국 우한시 당국은 작년 12월 30일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사스 기사는 2003년 4월 7일에 처음 보도되었는데, 세계보건기구는 3월 17일에 바이러스를 ‘사스’로 명명했고 한국은 3월 16일에 사스 경보를 발령했다. 노동신문의 메르스 관련 첫 보도는 2015년 6월 12일이었다. 한국에서는 5월 20일에 첫 감염자가 발생했고 뉴스화되었다. 세 가지 모두 대략 20여 일 뒤에 보도되었다.
주요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보도방식(행태)이다. 사스 당시는 강 건너 불구경 식이었다. 사스 관련 기사는 2003년 4월 7일에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이상한 비루스>’라는 제하로 기사화되었는데, 그 내용은 사스의 발병 시기 및 지역과 세계적인 피해 상황(1,480명 감염, 55명 사망)을 건조하게 전했을 뿐이다. 사스라는 명칭도 쓰지 않았다. 4월 8일자에도 전체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알리는데 그쳤다. 북한당국의 대응방침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단지 “지금 많은 나라들에서는 최근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이 전염병을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아시아 페염>이라고 부르며 그 방지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라고 보도했을 뿐이다. 사스라는 명칭은 4월 10일 자에 처음 제시되었는데, 여기서도 전 세계적 피해 상황과 더불어, 발병원인 및 증상에 대한 정보만 제공되었다. 11일, 13일, 14일, 17일, 19일 자, 관련 기사들에서도 북한당국의 대비책에 관한 내용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4월 20일이 되어서야 보건성 책임자의 담화문이 실리면서 북한당국의 위생방역사업에 대해 처음으로 알렸다.
메르스 사태 당시에는 한국정부를 비판하는데 그 초점을 맞추었다. 2015년 6월 12일에 ‘전염병 사태는 무능한 <정권>이 초래한 위기’라는 제하의 첫 기사를 올렸다. 내용은 한겨레신문의 6일 자 보도를 인용하여 “메르스 사태 위기는 무능한 정권이 초래한 것이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국정부를 비판하는데 메르스 사태를 이용한 기사다. 23일, 24일, 7월 2일 관련 기사들도 한국정부를 비판하는데 할애하였다. 메르스 관련 기사도 매우 간헐적으로 실렸다.
이번 코로나 19에 대해서 노동신문은 북한당국의 대응방안 및 정보제공과 예방조치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1월 22일, ‘중국에서 신형코로나비루스에 의한 전염병 급속히 전파’라는 제하의 첫 기사에서 바이러스의 발생 시기, 지역, 피해 상황을 자세히 다루었다. 24일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미국, 일본, 피지, 몽골)의 피해 상황 및 대응양상을 보도했다. 25일에는 전 세계적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면서 중국 내 감염 지역의 확산을 구체적으로 알렸는데, 흑룡강성도 언급되었다. 그다음 날인 26일에는 길림성까지 전염된 사실을 전했다. 같은 날, 보건성 책임자의 담화(‘신형코로나비루스 감염을 철저히 막자’)를 실으면서 북한당국의 대응책을 자세히 보도하였다. 이후, 열흘 정도 까지는 두 세차례 관련 기사를 올리더니, 2월 5일부터 5편 이상, 급기야 11일부터는 10편의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어제 13일도 10여편을 기사화했는데, 총 기사(35편)의 30%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북한 당국이 이 문제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사스-메르스 사태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보건당국의 대응 양상
다음은 북한 보건당국의 대응 양상(강도)의 차이다. 사스 당시에는 2003년 4월 7일에 첫 기사가 올라간 후 13일 만인 20일에 보건당국 관계자의 담화가 실렸고 메르스는 이틀 만(2015.6.14.)에, 이번에는 나흘 만에(2020.1.26.) 실렸다. 그런데, 사스와 메르스 당시에는 보건성 국가위생검열원 원장의 담화만 실린 것에 반해, 이번에는 보건성 국가위생검열원뿐만 아니라, 국가품질감독위원회(1월 31일)와 중앙위생방역소 관계자의 담화문도 실었다(1월 31일).
이는 북한당국의 예방 및 대응의 강도에 있어서, 사스-메르스 사태 당시보다는 훨씬 더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각 시기의 검역사업들을 구체적으로 비교해보자, 2003년 사스 당시에는 “의심환자로 예상되는 외국인들에 한해서는 엄격히 되돌려 보내거나 격리입원치료를 진행, 발생지역에 갔다 온 해외출장자들도 가족들과 함께 의무적으로 필요한 기간 격리시켰다(4월 20일, 김정일이 교시 하달). 사스 사태로 중국에서만 6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을 볼 때, 방비책이 그리 철저했다고 보기 어렵다. 2015년 메르스 당시에는 김정은의 교시가 아닌, 과거 김정일의 교시를 내세웠다. 김정은의 직접 지시가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철저히 대비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사스보다 사망률이 6배가 높았는데 말이다. 검역사업은 “또한, 비행장과 국경을 비롯한 모든 입국지점들에서 병이 발생된 나라와 중동지역에서 입국하는 인원들에 대한 검사검역사업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하며 조금이라도 이상 증상이 있는 대상들은 철저히 격리하여 해당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6월 12일). 외국인들의 출입을 막지는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떠한가. 검역수위가 너무나 지나칠 정도이다. 국가 존망까지 운운하며 철두철미하다. 외국인의 유입을 전면 차단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 거주했던 자국민들에게 조차도 입국을 불허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물품까지도 반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13일자 노동신문은 북한당국이 국가적인 긴급조치에 따라 설치한 ‘비상설중앙인민보건지도위원회’가 위생방역체계를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한다는 것을 선포했다고 전했다. 또 이 위원회는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는 통로를 철저히 차단하고 격리기간을 30일로 연장할 것을 제기했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승인했다고 했다.
김정은의 관련 교시도 벌써 여러 차례 실렸다. 노동신문은 2월 10일에 “보건부문에서는 위생방역기관들을 현대적으로 꾸리고 전염병을 막기 위한 사업에 힘을 집중하며 예방원식의료봉사를 잘하여 병걸린률을 극력 낮추어야 합니다”라는 김정은의 교시를 올렸다. 11일, 12일자에도 계속해서 김정은의 관련 교시들을 올리고 있다. 북한내부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외부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있는 김정은의 행보에서도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두문불출하면서 삼지연공사현장과 원산갈마작업현장에 격려의 글만 보내고 있는 김정은이다. 노동신문이 10일자에 올린 ‘우리 장군님의 10대 인민관’ 중에 그 첫 번째가 “가장 열렬히 숭배하는 하느님은 인민”이라고 하면서도, 무엇 때문인지 코 빼기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김정은이다.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린 대응조치, 왜?
2020년 들어, 대미 강경전략으로 전환한 북한으로서 올해는 어느 때 보다 중국의 지원이 긴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은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국경을 원천봉쇄하였다. 시진핑이 1월 25일에서야 공식 입장을 내놨는데, 북한은 발 빠르게 22일에 중국인들의 북한지역 관광을 전면 중단시켰다. 중국과의 접경지역도 곧바로 폐쇄했다.
이 같은 대응조치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2019년 작년 한 해만 북한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의 수가 35만 명을 넘었고 관광수입이 1.75억 달러였다고 한다. 유엔의 대북제재로 해마다 10억 달러 이상의 감소세로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난 북한은 그 돌파구로 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이것이 그나마 경제 파탄을 막아내는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이 버팀목마저 과감히 걷어찬 것이다. 도대체 왜 북한은 이렇게 엄청난 리스크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코로나 19을 막아내는데 집착을 하는 것인가. 요란법석을 떨면서 말이다.
2월 7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조사를 통해 의진자나 확진환자, 양성반응을 보인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 접촉하였을 가능성이 있는것으로 간주되는 승객 혹은 승무성원감염자들을 철저히 격리시키고...”라는 내용을 자꾸 곱씹게 되는 것은 왜 일까? 중국 우한시에서 바이러스 첫 감염자는 12월 8일에 발생했지만, 바이러스의 출현을 그 이전으로 보는 중국 전문가들이 다소 있다. 만일, 11월로 본다면 북한이 중국 관광객 불허한 지난 1월 22일까지는 두 달의 기간이 있다. 2개월 동안만 해도 중국 관광객의 수는 6만 명이 훨씬 넘는다. 이 들중, 우한시 거주자가 한 명도 없었겠는가. 적어도 북한은 2개월 가량은 코로나 19에 무방비상태였다.
이 글은 WORLD VIEW 3월호 실릴 예정입니다.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