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님은 100세인데도 강의도 잘 하시고 신문에 칼럼도 잘 쓰시고, 전연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하신다. 방지일 목사님은 103세까지 맑은 정신으로 설교도 하시고, 젊은이들과 카톡 대화도 하셨다.
모세는 120세까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역사를 진두지휘하면서도 건강했고 눈도 어둡지 않았다(신 34:1-7). 다윗이나 솔로몬도 40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결국 청춘의 에너지는 자연의 나이에 관계없이 애늙은이가 있는가 하면, 늙은 젊은이도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목회자나 장로들 중에도 90세 이상인데 현역으로 일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노벨상 수상자인 이그나로는 “노벨상은 특별한 사람이 받는 게 아니라 흥미 있는 분야,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자가 받는다”고 말했다.
비영어권 사람들이 선호하는 영어단어를 조사했더니 ①mother(어머니)와 ②passion(열정)이 선정될 정도로 중요한 게 열정이다. IQ보다는 노력, 노력보다는 열정(不狂不及)이 중요하다.
청춘(靑春)은 ‘푸른 봄’이다. 싱싱한 에너지다. 지칠 줄 모르는 생기발랄함이다. 항상 “Yes, I will.”, “O.K. I can.”으로 사는 사람이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함께 읽어보자.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강인한 육신을 뜻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과,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을 뜻하나니
생활을 위한 소심성을 초월하는 용기, 안이함에의 집착을 초월하는 모험심, 청춘이란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살의 청년보다 예순 살의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우리는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어가나니,
세월은 살결에 주름을 만들지만, 열정을 상실할 때, 영혼은 주름지고, 근심·두려움·자신감 상실은 기백을 죽이고 정신을 타락시키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에의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미래에의 탐구심과, 인생이라는 게임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 법
그대의 가슴, 나의 가슴 한 가운데에는, 이심전심의 무선국이 있어, 인간과 신 그 모든 것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네, 아름다움과 희망과 기쁨과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그대 젊어있는 한
그대가 기개를 잃고, 정신이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살이라도 늙은이라네, 그러나 그대의 기개가 낙관주의의 파도를 잡고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네”.
우리나라에서도 충남 서산 출신의 우보(牛步) 민태원(1894-1935)이 지은 ‘청춘 예찬’은 1930년대 젊은이들의 피 끓는 정열, 원대한 이상, 건강한 육체를 들어 청춘을 찬미하고 격려한 명문이다. 힘과 박력이 넘치는 남성적 문장으로 물 흐르듯 도도하게 격문을 지었다.
특히 ‘청춘의 끓는 피’, ‘청춘의 이상’, ‘청춘의 가치’를 강조함으로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해 젊은이에게 용기와 기백을 북돋아 주었다.
성경에서는 만년 청춘으로 살았던 갈렙(Caleb)을 들 수 있다. 갈렙은 모세가 바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정탐꾼을 뽑을 때 유다 지파의 대표로 참여하였다(민 12:6, 13:6).
40일 만에 돌아와 10명은 부정적 보고를 했는데 갈렙과 여호수아만 긍정적 보고와 자신감을 표출하였다. 결국 그 두사람만 목적지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다(민 4:30).
가나안 입성 후 유다 지파의 대표로서 가나안 땅을 각 지파에게 할당 분배하는 직책을 수행했다(민 34:19).
그때 다른 지파 사람들이 할당받기를 꺼려하는 헤브론 산지의 험한 땅을 자진 선택해 그곳 현지거민을 쫓아냈고(수 14:13), 기럇세벨을 점령한 자에게 자기 딸 악사를 아내로 주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대로 옷니엘에게 자기 딸을 주었다(수 15:13-19).
갈렙이 85세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40세의 청년임을 주장한 대목은 또 하나의 ‘청춘 예찬’이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나타낸 것이다(수 14:10-12).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