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전염병을 마주한 초기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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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나 역병이 역사의 변화 초래
이 대변혁의 시대, 절망한 민중들에게
현세적·내세적 아울러 소망 준 기독교

▲파리의 한 카타콤. ⓒ픽사베이

▲파리의 한 카타콤. ⓒ픽사베이

우리가 대역병(大疫病) 혹은 전염병을 말하면 중세, 특히 14세기 흑사병을 생각한다. 그것이 대역병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류의 질병이 그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염병은 초대교회 시대에도 창궐하여 교회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시대에도 끊이지 않고 발병하여 인류 사회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만 보더라도 1957년의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2002-2003년 사스, 2003-2009년의 조류독감, 2009년의 신종플루, 2015년의 메르스 등이고, 최근(2019- )에는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이런 질병이 창궐할 때 그 시대 교회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이번에는 초대교회 시대의 역병과 교회의 대응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역병(165-180)

특히 3세기 동안의 초기교회 시대에는 크게 두 차례의 국제적인 전염병이 발병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첫 번째 경우가 2세기 중엽, 곧 165년 겨울에 발생한 역병이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 황제 치하에서 근동 실루기아에서 베르스의 군부대에서 발병한 이 역병은 180년까지 15년간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역병이 안토니우스 역병(Antonine Plague)인데, 이 병의 확산을 목격하고 기록한 그리스 의사의 이름을 따 ‘갈레노스 역병(Plague of Gale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역병은 골(Gaul)로 그리고 라인강을 따라 확산되었고, 원정에서 돌아온 군인들에 의해 동부의 로마 제국으로도 전파되었다. 고대 사회는 통계에 무관심하여 정확한 사망자를 알 수 없으나, 윌리엄 맥닐(William McNeill)은 로마제국 인구의 4분의 1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매우 높은 치사율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세균학자이자 의사학자인 한스 진저(Hans Zinsser, 1878-1940)는 “사망자가 많아 이탈리아의 도시와 마을이 공동화되고 황폐화되었다”고 썼다(로드니 스타크, ‘기독교의 발흥’, 120).

이 역병은 1, 2년 정도로 유행하다가 종식된 것이 아니라 무려 15년간 지속되었고, 166년 이전에 중국에까지 전파되었기 때문에 사태가 매우 심각했다.

황제 아우렐리우스 자신도 이 역병으로 180년 3월 17일 사망했다. 흔히 지병의 악화가 사인이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 역병으로 고생하던 중 비엔나에서 사망한 것이다.

그의 시신은 테베레 강변의 하드리아누스 영묘에 안치되었다. 한스 진저는 이것이 서구 사회에 최초로 등장한 천연두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엄청난 인구가 유실되자 인력난에 허덕이게 되었고, 사회적 혼란은 가중되었다.

두 번째 역병(249-262)

두 번째 발병은 249년 시작되어 251년 창궐하기 시작했다. 262년까지 계속된 이때의 전염병은 도시와 농촌으로까지 파급되었는데, 이번의 역병은 홍역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이라고 불리는 이 질병은 천연두나 홍역을 경험해 보지 못한 지역에서는 면역력의 부재로 피해가 컸고 치사율도 높았다. 이때 로마시에서만 하루에 5천명이 죽었다는 보고가 있다고 맥닐은 주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인구의 3분의 2가 죽음을 맞았을 것으로 보우크(A. Boak)는 추정했다(스타크, 121).

이 때의 역병에 대해서는 기독교 관련 여러 기록이 남아 있다.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우리 가운데 많은 이가 이 전염병과 흑사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썼다. 몇 년 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는 부활절 설교에서 “청천벽력처럼 그 어떤 재앙보다도 공포스러운 존재인 이 질병이 임했다”고 탄식했을 정도였다(스타크, 121).

기독교회의 대처

이런 역병이 창궐했을 때 기독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그리고 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종교의 가치는 위난한 상황에서 유효한 역할을 통해 드러나는데, 이 당시 대역병의 현실에서 종교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했다. 첫째는 왜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가 하는 재앙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을 제시해야 했다.

자연과학과 의학이 발전한 오늘에는 그것을 종교가 답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초대교회 당시는 종교가 답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이방 종교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유일한 해답이 도피였다. 그래서 이교의 사제들은 피신했고, 고위층 관리들이나 부유한 이들은 도시를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이교도들은 환자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보았기에, 격리만이 최상의 도피였다. 물론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았으나, 도피가 최상의 대책이라고 여겼다.

부모는 자녀를 버렸고, 자녀도 부모를 버렸다. 돌보지 못한 자녀들과 연로한 부모들이 회생 가능성이 고려되지 못한 채 보호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했을까? 이때의 역병에 대처 했던 교회 지도자들의 여러 기록이 남아 있는데, 당시 교회는 모든 질병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보았고, 도피가 최상의 길이 아니라 보살핌과 배려라는 사랑으로 질병을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점이 이방종교와 그 신봉자들과의 현격한 차이였다.

이 때는 데시우스 황제 치하에서 기독교가 조직적인 박해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디오니시우스는 “이교도들은 처음 질병이 발생하자 아픈 자를 내쫓았고, 가장 가까이 이는 자들이 먼저 도망쳤고, 병든 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버려지고 매장하지 않는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서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을 막고자 했으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도망치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들과 달랐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역병의 현장에서도 사랑의 시혜자이고자 했다. 자기만 살겠다고 도피하는 현실에서도, 도피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도리어 감염된 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폈고 소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베풀었다.

도움을 베풀되, 교회 밖의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했다. 키프리아누스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단지 우리(그리스도인)들만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끼리만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세리나 이교도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관용을 베푸신 것 같이 관용을 베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며,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태양을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내리셔서 씨앗들을 기르시고 이러한 모든 선하심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만일 누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아버지를 본받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이상규, ‘헬라로마적 상황에서의 기독교’)

키프리안은 전염병이 돌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역병이 절정에 달하던 260년, 디오니시우스는 부활절 설교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 형제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무한한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 주었으며 한시라도 몸을 사리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픈 자를 보살폈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었고 주님 안에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 평안과 기쁨 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들은 환자로부터 병이 감염되자 그 아픔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른 이들을 간호하고 치유하다가 사망을 자신에게로 옮겨와 대신 죽음을 맞았습니다.”

자신이 감염될 수 있고 또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형제 사랑을 실천했는데, 이는 이교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단어가 ‘파라볼라노이(παραβολάνοι)’, 곧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이라는 단어였다. 3세기 당시 기독교 공동체에 파라볼라노이라는 칭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위난자들에게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했다는 중요한 증거였다.

디오니시우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사랑을 실천한 대가로 죽음을 맞았고, 또 이런 사랑을 실천했던 장로나 집사 혹은 평신도들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들이야말로 순교자와 다를 바 없다고 설교했다(Srtark, 82, 바트 어만, 206). 이런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후일 ‘사랑은 영혼의 손(Love is the hand of the soul)’이라고 말한 것이다.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키프리아누스나 디오니시우스, 그리고 역사가인 유세비우스 등은 이런 역병이 기독교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병든 자를 간호하고 위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푼 결과로 죽음을 맞기도 했으나, 모든 치료가 중단된 상태에서 기본적인 간호만으로도 사망률을 현저히 낮출 수가 있었다고 의사학자 맥닐은 주장한다. 물과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쇠약해진 이들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방 종교 신봉자들에 비해 기독교 공동체의 생존율이 월등히 높았고, 또 그리스도인들이 베푼 형제애적 사랑은, 기존 종교를 폐기하고 새로운 종교를 수용하는 변화, 곧 기독교로의 개종이라는 종교적 이행(移行)이 이루어져 기독교의 성공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이런 질병이 로마제국 쇠퇴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에드워드 로밀리 보크(Author. E. R. Boak, 1888-1962)와 역사가들은 계속되는 일련의 역병 발발로 인구가 감소하였고, 모자라는 군인을 농부와 지역 공무원으로 충당하였기 때문에 식량 생산량도 감소하였고, 또 도시와 농촌 등 행정 지원 부족으로 야만인 침략을 막는 로마제국의 역량이 약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자연재해나 역병이 역사의 변화를 초래하지만, 이런 대변혁의 와중에서 기독교는 절망한 민중들에게 소망을 주었다. 현세적이든 내세적이든 상관없이.

▲이상규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상규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상규 명예교수(백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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