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의 러브레터] 고통의 참여
1. 복음이 무엇인지 물으면, 누구나 ‘기쁨’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기쁨과 감사함이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죄에서 자유해지고 죽음에서 자유해진 생명의 사람이 되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2.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고통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듣는데,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체감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니까 그런 거라고, 우리는 기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 생각해 보면서도 그 마음이 또한 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3. 누군가의 고통을 들으면서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런 우리들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진 나머지, 주어진 시간, 오늘을 기쁜 날들로 채워 나갑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쇼핑을 즐기며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있어 조심스럽게 지내기는 하지만, 삶의 스타일이나 마음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때가 많습니다.
반면, 우리 모두에게 내 아픔은 누구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은 자신의 고민과 아픔이 세상에서 가장 큽니다.
그런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들을 때 타인을 사랑한다 하지만, 전혀 공감하기 힘듭니다. 그런 우리가 되면, 타인을 향한 따뜻함을 보면서 차별이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주어지는 따뜻함은 당연함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4. 사실 우리 모두는 고통 앞에 평등합니다.
우리 모두가 짊어지는 가장 큰 고통, 죽음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합니다. 죽음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죽음은 자신에게는 고통이면서 타인과는 완전한 이별이기에, 가장 큰 아픔이고 외로움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가장 큰 고통 앞에 평등해지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과 고통을 향한 여정에 주어진 세부적인 고통들에 대해 지극히 상대적이 되어 갑니다.
5. 이 땅이 흑암과 고통이고, 아담의 죄 때문에 우리 모두 죄인이 되어 알 수 없는 눈물과 슬픔이 만연해졌습니다. 아파야 하고 울어야 하고, 왜 이 고통이 주어졌는지 모르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 고통은 모두에게 주어져 있는데도, 우리는 그 죽음의 고통 앞에 위로의 존재가 되기보다 고통마저 차별이 있는 세상 가운데 고독하게 살고 있습니다.
6.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좋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살아 계실까? 오늘 내 눈물을 아실까? 라고 고백하며 상대적 고통의 아픔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시고, 흑암과 어둠, 고통과 눈물 가운데 있는 이 땅에 하나님 당신 자신이 동참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좋습니다.
이 땅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신이 신으로 이 땅에 오심도 아니요, 모든 것이 성장한 상태인 성인의 모습으로 나타남이 아닌,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몸으로 가장 낮은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울면서 오셔서 울면서 마치는, 인간의 일생이었습니다. 그 분은 상대적 고통 가운데 아프다고 우는 자들과 함께, 상대적 고통에 동참하셨습니다.
저는 성령님이 좋습니다.
자기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2천년 전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불현듯 깨닫게 해줍니다. 이성의 논리에 지배당하지 않고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영성을 깨워, 이성과 감성을 통해 더 깊이 예수님을 만나게 합니다.
7. ‘무엇이 복음일까?’ 하고 최근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고통에 동참하는 거지.’
기쁜 소식. 기쁨과 자유는 그저 먹고 마시고 노는 자유함이 아니라,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할 때, 그 고통이 비록 상대적이라도 절대적인 것처럼 다가가는 것입니다. 자기 온 몸을 다해 고통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8. 코로나19가 여기 저기 전파되면서, 우리 모두 누군가의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고통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모임을 취소하고, 만남을 자제하고, 교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가 이제 한국에서는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조금 약화시키기로 했습니다. 너무나 힘들게 버텨온 국민과 단체들에게, 이제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다 노력한 덕입니다. 이제 많은 모임과 개인들, 또 교회들도 예배를 회복해 간다고 하니 기쁜 소식임은 분명합니다. 여러분들의 노력과 눈물을 주님이 아시고 앞으로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9. 그러나 여러분.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상대적 고통이 사그라든다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전 세계의 아픔과 고통은 오히려 점점 커져만 갑니다. 이 땅에 꽃이 피고 잎이 푸르러진다고, 그 고통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상대적 고통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의 고통과 아픔에 자기 몸으로 동참하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사건입니다. 그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부활 없는 복음은 가짜입니다. 가짜 복음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10. 우리 교회도 오랜 기간 온라인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정부의 원칙보다 더 앞서 민감하게 반응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사회나 교계의 기류를 따르기보다, 생명의 소중함에 반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약 5주간 온라인 헌금을 받지 않기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이는 예배의 가치를 몰라, 모이는 예배를 강조하는 이유가 헌금 때문이라고 오해들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왜 모이는 예배가 중요한지 알고 있다 해서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복음은 아니었습니다. 한 생명을 위해, 세상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믿음을 위해 살아내야 하는 것이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태여 온라인 헌금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망하기 직전까지 버텨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재정부에서 드디어 이제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월세도 2개월이 밀렸는데, 집주인이 돈내라는 소리도 안 하신다고. 그래서 지난주부터 이제 온라인 헌금을 공지했습니다.
모이지 않는다 해서 예배의 사모함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모든 예배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예배를 기획하고 드리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찬양을 보내 예배드리는 앉은자리 찬양, 인터뷰, 소통, 그리고 간증 나눔과 나아가 성경 동화까지 준비해 예배드렸습니다.
(참조: 요한복음 21장을 성경 동화로 그려냈습니다. 총 30장의 그림과 글을 직접 청년들과 달꿈학교 학생이 썼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pTu7AOA0O4
11. 이제 교회들은 모이는 날을 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기쁜 소식입니다. 법당, 성당들이 이제 모이는 예배 날짜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의 방향은 조금 다릅니다. 그러기엔 이 땅에 고통당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코로나19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먼저 모이는 날을 미리 정하지 않은 이유는, 사람이 주님보다 앞서지 않기 위함입니다.
12. 예수님이 주인 되신 교회는 주님의 관심에 맞추어야 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 관심을 생명에 두셨습니다. 고통에 관심 있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역시 모이는 날을 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가장 관심 가져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보기로 했습니다.
13. 그것은 이 땅의 학생들이었습니다.
모든 경제인들은 경제활동을 그대로 하고, 모든 정치인들은 선거도 그대로 하며 버텨온 시점에, 유일하게 자유와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이자 의무였던 공부까지도 강제로 포기하면서 집 안에 갇힌 채 지내야 했던 학생들은 여전히 등교 날짜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에 너무나 연약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세대는 가장 상대적 고통을 느끼면서 소외되어 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누구도 이를 절대적 고통이라 말하지 않는 세대가 되고 있습니다.
14.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저희 같이 연약한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있습니다. 고통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아이들 개교가 정해지는 그 날, 저희도 모여서 예배드리는 날로 정했습니다.
어렵지만 버텨보려 합니다.
보고 싶지만 참으려 합니다.
이 땅의 예수님의 외침에 응답하고 싶어도 응답하지 않음으로, 응답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15. 저는 최근 코로나와 전혀 상관없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다들 한결같이 말합니다. “너무 힘들고, 외로웠어요.”
그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면 반드시 한 가지는 하실 것 같습니다. 아픔에 동참해 주심입니다. 그분이 아픔에 동참해주심은 함께 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으켜 세워 주실 힘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희 달꿈학교 아이들은 모두 힘든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변화를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모두 자기들이 가진 고통과 슬픔 너머를 바라보고, 이제 자기 달란트로 주님을 전하고자 한답니다.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혜은 학생:
https://www.youtube.com/watch?v=Q9j2848BTv4
김승연 졸업생:
https://www.youtube.com/channel/UC4K4ggFexoCBO8mI8o-Ku8w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아이들과 함께 서있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로 저는 교회에서도, 이 땅에서도 그냥 그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어려워도 이렇게 버텨내서,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이 절대 혼자 겪는 것만은 아님을 몸으로 말해주는 교회가, 그리고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고통의 참여가 여러분의 삶에 함께 있기를 빕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