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성 칼럼] 신학교, 국가 통제에서 벗어나야
1. 해임 결정을 즉각 취소하라
최근 총신대학교 이사회(관선임시이사회)는 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윤리학을 가르치는 이상원 교수를 해임시켰다. 징계위원회가 결의한 것을 받아 확정하고 당사자에게 통보했다.
이 건은 사소한 행정 사안이 아니라 동성애 또는 성희롱이라는 주제에 직결되어 있고, ‘신학교’에서 이루어진 일이며, ‘기독교 길들이기’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점에서 심각성을 지니고 있다. 이 사건은 총신대학교가 ‘바벨론 포로 시대’에 돌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총신대학교의 일부 학생들은 이사회를 향하여 “해임 결정을 취소하라”고 규탄한다. 다수 교수들은 탄원 성명서를 발표하여 이사회에 “해임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한다. 한국복음주의 윤리학회는 “해임 결정을 즉각 취소히라”는 성명을 공표했다. 관선임시이사회가 헌법적 가치를 위반했고, 정상적인 이사회라면 그처럼 가혹한 처벌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교수직 해임 징계 결정은 징계위원회가 했다. 이사회가 임명한 위원회는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2명, 학부 교수 1명, 이사 3명, 외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사회는 이상원 교수 동료 교수들이 포함된 징계위원회의 결정을 이사회가 받아 행정적으로 확정했다. 그 결과를 국가(해당청, 교육부)에 보고했을 것이다.
국가-정부를 대표하는 관선임시이사회가 절차상 하자 없이 진행하여 확정한 사안을 취소·재고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학생, 교수, 언론의 목소리에 사회적 압력을 받을 까닭이 없다. 더욱이 정부의 심부름을 하는 이사회가 ‘법 집행 꼬임’이 발생하는 결정을 할 것 같지 않다. 판사가 법정에서 선고를 내린 판결을 번복, 취소, 재고, 철회하지 않음과 같은 이치이다.
대한민국 사립학교법은 당사자가 처벌 통보를 받은 건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명시한다. 제66조 4의 3항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제소할 수 있고, 만약 이 기구의 결정에도 순응할 의사가 없으면 행정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사회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와 행정법원의 판단 결과에 따라 징계위원회에 해당 교수에 대한 재심을 요청할 수 있다. 당사자는 징계의 양정 과다, 절차상 하자, 과잉금지 원칙(비례원칙) 위반, 상당성 원칙(협의의 비례원칙) 위반 등을 근거로 변론을 할 수 있고, 자기 정당성을 방어할 수 있다.
관선임시이사회, 교원소청심사위원회, 법원 등은 법리와 적법성만 따져 처리한다. 이 기구들은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가 아니다. 사회적 압력을 혐오한다.
이들에게 총신대학교의 정체성, 신학전통, 기독교생명윤리, 반동성애, 사회적 성인지 감수성 등은 무의미하다. 정부 심부름 목적으로 파송된 이사회가 기정 사실화된 건을 교육 목적, 설립 이념, 신학 노선, 성경적 가치관, 기독교 세계관 등을 존중하여 재고, 취소, 재심할 리 만무해 보인다.
2. 사립학교법 제66조 2의 2항
대한민국 사립학교법은 신학 계열의 고등교육기관들을 ‘바벨론 포로’로 삼을 수 있는 법 조항을 지니고 있다. 징계위원회가 징계사유에 비추어 ‘가벼운 처벌’을 결정할 경우, 정부(관할청, 교육부)는 해당 학교의 교원 임용권자(이사장)에게 그 경징계 처분에 대하여 징계위원회에 재심을 명할 수 있다(제66조 2의 2항)고 규정한다. 교회가 운영하는 사학의 기독교적 정신과 정체성을 억제할 수 있는 법 조항이다.
기독교 사학이 정부의 철학과 이념과 상반되는 어떤 결정을 하면, 곧 사학의 정체성, 교육 목적, 신학 전통, 기독교 윤리에 따라 무엇을 결정하면, 정부는 이를 간섭하고 재심을 하라고 명할 수 있다.
동성애 금지나 성차별 발언을 한 교수 건에 대하여 징계위원회가 가벼운 처벌을 결정하면, 정부(해당청)가 중징계를 하라고 이사회에 명할 수 있고, 이사회는 이에 따라 징계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언(傳言)에 따르면, 이상원 교수에 대한 최초 징계위원회가 경징계를 결정했으나, 정부(관할청)가 해당 교수 임용권자(이사장, 관선임시이사회)에게 재심을 하라고 명한 것으로 보인다. 재심 명령은 중징계를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현 정부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반기독교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시대의 흐름인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문화 마르크스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동성애자 보호법, 젠더 이데올로기,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정권의 철학과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기독교 사학 ‘손보기’, 교회 제압하기, 기독교 정신 억제하기 등의 의지가 엿보인다.
칼은 권력자가 쥐고 있다. 정부(해당청)는 정부 시책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반동성애와 반젠더 이데올로기 신념을 가진 교수의 교수직을 단칼에 처단할 수 있다.
이상원 교수 해임은 ‘성희롱’을 이유로 세속 권력의 의사에 반하는 말이나 강의를 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목사, 신학교수가 성경적 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한 시범 케이스일 수 있다. 기독교 강단에 칼을 찌른 것과 다르지 않다.
3. 총신대학교 교수들의 탄원 성명서
총신대학교 신학 관련 교수 27명은 이상원 교수 해임과 관련하여 이사회에 해임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요지의 탄원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상원 교수님의 해임을 대하는 우리의 입장(2020. 5. 23)’의 요지는 자신들이 이사회의 결정을 수용하기 어려우며,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관선임시이사회가 아니었으면 그 정도의 과중한 처벌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 탄원 성명서는 현 총신대학교 신학 관련 교수들의 두 가지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한 가지 근원적 질문을 자아낸다. 성명서는 총신대학교 공동체의 거울이며, 한국교회 전체를 향하여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첫째, 국가의 ‘신학교’ 통제와 관선임시이사회를 일반은총의 방편으로 여긴다.
총신대학교가 ‘바벨론 포로’ 상황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국가의 굴욕적인 지배를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교회사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오랜 역사 동안 씨름해 온 국가와 교회 간의 관계에 대한 지적이 없다. 신학교를 교회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도 드러나지 않는다. 교회-신학교가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음이 옳지 않다고 하는 신학적 통찰도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 총신대학교의 행정과 교원 처벌은 이 학교의 신학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적용되어야 한다고 한다.
총신대학교가 개혁신학을 표방하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남녀 양성 간의 바른 관계를 지향하며, 인간은 타락으로 부패해졌고 그 결과 왜곡된 모든 인식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왜곡된 인식이란 성경이 죄로 규정하는 동성애를 지칭하는 듯하다.
총신대학교 교수들의 해임 재고 탄원은 현실 인식이 결핍된 것으로 보인다. 동료 교수에 대한 처벌 수위를 이 학교의 신학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적용하라고 함은 정부의 통제, 곧 교회-신학교의 바벨론 포로 상황이라는 엄중한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상원 교수 건에 대한 총신대학교 공동체의 항의 목소리가 높을수록, 이 학교의 바벨론 포로 시대가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셋째, 위 탄원 성명서는 개혁신학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총신대학교가 성경의 진리에 충실한 신학교라고 강조한다.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한다고 한다. 청교도적 경건성과 개혁 사상에 입각하여 하나님 말씀을 순수하고 충실하게 증거하는 목회자, 선교사, 기독교 문화 창달 일꾼들을 양성한다고 한다.
총신대학교는 개교(1948년 5월) 이래 72년 동안 성경 진리, 개혁신학, 개혁주의 세계관, 하나님의 영광, 청교도적 경건성을 천명해 왔다. 출범 이후 지금까지 동일한 구호 아래서 목회자들을 배출해 왔다. 현재 예장 합동 구성원들, 신도들 그리고 총신대학교 관련자들은 이 구호 아래에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다.
우리의 의문은 여기에 있다. 훌륭한 목표, 순수한 신앙, 귀중한 신학 전통을 따라 교육을 시켜왔음에도, 왜 총신대학교와 예장 합동이 오늘의 불행한 사태에 이르렀는가? 왜 굴욕적인 바벨론 포로 사태를 자초(自招), 방임했는가?
성경에 충실한 개혁신학과 하나님 영광과 청교도적 경건성을 천명하면서 목회자를 양성하고 신도들을 교육시켜 왔다면, 왜 총회 석상에서 간부급 인물이 권총을 들고 설쳐대는 기이한 사태를 연출하고, 교회라는 조직체가 수십 갈래로 나눠지고 또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기독교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행태들이 지속되고 있는가?
개혁신학은 복음전도와 영혼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전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문화관을 지향한다. 지난 70년은 교회가 기독교적 가치를 가진 사회 건설, 문화 창달,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
예장 합동은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이며, 위 교수들이 강조하는 위대한 구호들 아래 신학교육, 신앙교육을 시켜 왔다. 그럼에도 이 교회의 신학교인 총신대학교가 바벨론 포로라는 굴욕적인 상황에 돌입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4. 나무와 열매
예수께서는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 수 있다(마 12:33)”고 말한다. 참 감람나무는 돌 감람 열매를 맺지 않는다. 돌 감람나무가 돌 감람 열매를 맺는다.
‘왜 총신대학교 공동체가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과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둘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성경과 개혁신학과 청교도적 경건 자체가 ‘나쁜 나무’이든지, 위 탄원 성명서가 강조하는 총신대학교의 교육 목적, 정체성, 개혁신학 전통이 입술에 발린 구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바벨론 포로 시대’는 로마교회 교황청이 1309년부터 1376년까지 프랑스 아비뇽에서 73년 동안 세속 권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시기를 일컫는다.
교회가 프랑스 왕권에 굴복한 것을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포로 시기’에 빗대는 표현이다. 이 시기의 일곱 명의 교황들은 이족의 땅에 머물며 국왕의 괴뢰(傀儡) 역할을 했다.
총신대학교의 바벨론 포로 상태는 오래 전부터 겪어 온 내부적인 악순환의 연장이다. 총신대학교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들은 어디에서 뿌리를 두고 있는가? 인간의 전적 부패를 포함한 여러 가지가 까닭이 있을 테지만, 그 가운데서도 상대적이고 역사적인 까닭이 있으리라.
고신대학교는 약 15년 전 여러 해 동안 관선임시이사회 시절을 경험한 적이 있다. 대학병원과 의과대학 경영 부실이 가져온 재정난 때문이었다. 예장 고신 직영 고신대학교 공동체는 교회의 연장인 신학교-고려신학대학원이 국가 권력의 지배 아래 있던 이 시기를 철저히 ‘교회의 바벨론 포로시대’로 인식했다.
그 기간 동안 극심한 영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신앙적인 답답함은 형언하기 어려웠다. 예장 고신은 국가의 교회-신학교 지배를 거부하는 개혁신학 전통을 소중하게 여긴다. 신사참배거부운동과 스코틀랜드장로교회의 언약도 신앙을 존경한다.
총신대학교의 바벨론 포로 상황은 재정난 때문이 아니다. 총신대학교 공동체가 스스로 국가 지배, 관선임사이사회 파송 사태를 초래하거나 방임했다.
일부 신학 관련 교수들도 관선임시이사회 파송을 환영했다고 알려진다. 이 학교의 사유화를 반대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총신대학교 공동체는 이제야 굴욕적인 바벨론 포로 시대의 ‘쓴 맛’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개인은 집단적 환경과 전통의 상호 작용 안에서 존재한다. 보고 듣고 배운 대로 행동하고 처신한다. 자식은 부모의 흉을 보면서도 닮는다. 보고 듣는 방향으로 머리가 발달하고 관심의 폭이 넓어진다. 한 마을의 앞뒷집에 살아도 집마다 자녀들의 분위기, 생각하기, 느낌, 행동이 다르다.
교회와 신학교는 신앙 기질, 특성, 요소, 전통을 전수하는 채널이다. 후대는 선대가 물려준 신앙적 삶, 신앙고백, 진리, 정신적 유산을 받아 이를 소중히 여긴다.
교회와 신학교는 인간의 삶, 신앙, 추억들을 실타래처럼 뭉치게 한다. 기억의 씨줄과 날줄을 서로 엮어 신앙전통이라는 양탄자를 만들어낸다. 연속성, 일체감, 정체성을 제공한다.
보고 듣던 신앙 이야기와 행동거지가 현재의 교회의 기질, 정신, 전통을 형성한다. 신앙 인식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후대의 정체성과 가치 판단에 영향을 준다.
총신대학교 사태는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이 공동체의 행습과 인식의 결과가 아닌가? 선대의 정신적 기풍(ethos)들이 형성하고 체질화된 행습과 교훈의 현현(顯現) 아닌가? 총신대학교 공동체의 혈관을 관통해 흘러오고 있는 친일파 전통, 교회교 기질, 교권주의 망딸리떼(mentalité, 한 사회를 특징짓는 관습적 사고 양식의 총체 -편집자 주)의 구현(具顯)이 아닌가?
이상원 교수 해임에 대한 상호비방, 기독교 윤리와 동성애, 동성애에 대한 신학 프레임 씌우기, 성희롱 성격의 발언, 전임 이사장의 대학교 사유화 시도 비난, 계파 갈등 따위의 주장들은 이 원초적·역사적 요소들의 결과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총신대학교 일부 학생들은 최근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총신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이사회 결정에 대한 항의성 예배와 기도회를 가졌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학’이라는 구호는 현재의 바벨론 포로 상황과 불일치한다. 무엇을 근거로 이 학교의 역사와 전통이 빛난다고 말하는 지 의문스럽다.
기독교 신앙의 호소력은 ‘빛나는 역사와 전통’에 달려 있지 않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겸허한 의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충성하는 성실, 실패의 원인을 간파하고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각오하는 결기가 중요하다.
총신대학교 공동체가 그리스도께서 기뻐하는 학교로 발돋움하려면, 현 사태를 초래한 근원적 이유, 역사적 쓴 뿌리의 시원을 정확한 진단하고 이를 지적, 제거, 개혁하는 용기와 실천이 필요하다.
교회사가 주는 진귀한 영양소는 성공한 사건만이 아니라 실패한 역사에서도 얻을 수 있다. 실패의 역사가 주는 반성적 교훈은 교회의 반복적인 실패를 막아준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학교, 장자교단, 정통신학, 최대 교회라는 따위의 세상적이고 하기오그래피(hagiography, 칭송 일색 -편집자 주)적인 역사 인식은 총신대학교 공동체가 경험하는 모순과 갈등을 장기화한다. 교회-신학교의 바벨론 포로 시대를 연장시킨다.
5. 황금률, 코람데오
총신대학교 사태에 대한 교수, 학교, 기독교 단체들의 항의와 시위에는 갑질의식이 엿보인다. 자신들을 ‘갑’으로 여기고 국가-사회를 ‘을’로 여기는 발상을 가진 듯하다. 갑과 을의 자리는 뒤바뀐지 오래 되었다.
사회주의와 문화마르크스주의 가치를 기치로 내세운 정부의 눈에는 이들의 항의와 시위가 폐악(弊惡)으로 비쳐질 수 있다. 총신대학교 공동체의 저항은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킬 수 있다.
갑질 의식은 기독교 공동체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기독인의 빛과 소금 역할은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삶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한국교회는 가루 서 말 속에 들어 있는 누룩처럼, 소리 없이 세상을 정화하고 개혁시켜야 할 시점에 돌입했다.
개혁신앙은 입술이나 구호에 달려 있지 않다. ‘항상 개혁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는 실패를 정확히 솔직히 시인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기독인다운 삶을 실천하는 데서 시작된다.
총신대학교 공동체의 심대한 과제는 개혁신학에 부합하는 삶이다. 신행불일치 전통의 고리를 끊고, 순수한 성경적 신앙, 청교도적 경건, 개혁신학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실천으로 거듭남이다.
황금률(마 7:12)과 개혁신학의 ‘코람데오’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개혁신학에 역행하는 신행불일치 기질의 고리를 끊는 일이다.
총신대학교와 한국교회에 제안하고 싶다. 신학교-신학대학원을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형태로 개편함이 바람직하다. 교육 수준이 낮은 시대에는 목회자 양성에조차 국가의 학력 인정이 필요했다.
이제는 수준이 높아졌고, 국가가 인준하는 학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목회자 양성 과정(Master of Divinity Equivalent)을 교단의 독자적 인준 또는 아시아신학연맹(ATA) 등 학력평가 기구의 인준으로 운영해도 폄하할 사람이 없다.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학교에서 신학교를 분리시키는 일은 교회-신학교의 바벨론 포로 시대의 치욕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