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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전직 대통령에 이어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얼마나 괴로우면 자살을 했겠느냐는 동정심이 왜 없겠냐마는, 자살은 건강한 사회를 조성해야 하는 윤리적 관점에서 사회악이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살로 인한 사회적 악영향은 매우 크기 때문에 자살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자행되어서는 안 될 악행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미래 세대에게 실의와 좌절을 체감케 하는, 자살의 악영향은 어떤 명분으로도 덮을 수 없는 과오가 분명하다.
특히 자살한 사람을 추앙하거나 공덕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목소리를 내는 개인이나 단체의 언행은, 사회적 악영향을 끼친 자살자를 흠모케 하는 역효과를 확산시킨다.
자살한 사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마음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살한 사람의 악영향에 대한 사회적 지탄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윤리적 도덕률이자 건강한 사회를 존립시킬 수 있는 교훈이다.
자살은 스스로 죽는 것이 아니다. 자살은 곧 타살이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분만이 생명의 소멸을 주도한다. 생사(生死)의 주관은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 영역이다.
인간은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사 생령(生靈)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만이 영혼이 존재하는 피조물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므로 인류가 탄생되었고, 그 분은 각 사람의 죽음을 주관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
자살로 인한 죽음이든, 타살로 인한 죽음이든, 자연적 소멸의 죽음이든, 죽음은 끝이 아니다. 어떤 죽음이건 육신의 소멸은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영혼의 생명은 극과 극의 환경에 놓이게 되는 진행형이다.
죽음으로 인하여 육신은 소멸되지만,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앞에 서야 한다.
자살은 하나님의 생사 주권의 영역에 대하여 대적하는 행위이다.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은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영역에 대항하고 대적하여 자살을 선택하겠는가. 자살의 배후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사탄의 궤계가 숨어 있다.
사탄은 그럴듯한 당위성을 부여하여 자살을 획책한다. 이꼴 저꼴 추잡한 꼴이 보이지 않는 끝인 것처럼 위장하여 자살을 부추기고, 대단하고 결연한 선택인 것처럼 자살이라는 멸망의 길을 걷도록 조장한다.
갈등의 인과관계, 어려운 환경, 건강의 악화, 절대 고독, 허무한 심령을 파고들어 자살의 마음을 조장하고 죽음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사탄은, 자살이라는 허무맹랑한 당위성을 앞세워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하여 끊임없이 대적하고 있다.
사탄의 궤계에 속은 결과가 자살이다. 그러므로 자살은 곧 사탄에 의한 타살이다.
자살 후에 생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지옥 불에 던져져야 하는, 돌이킬 수 없는 통한의 멸망 길이 자살의 대가이다.
일생을 살다 보면 누구든지 어려운 일, 난관에 봉착하는 상황, 원치 않는 환경 등에 노출될 수 있다. 때로는 실수할 수 있고, 후회할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좌절감으로 실의에 빠질 수 있고, 도무지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한 환경 때문에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극한 상황일지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대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치료할 수 있는 대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인간의 고통은 모두 하나님을 떠남으로 발원된 아픔이다. 아픔의 원인을 깨달을 때 치료의 대안을 수용하게 되고, 비로소 고통의 원인은 제거된다.
인생은 근본적으로 나약하다. 자신의 죽음조차 관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죽음에 대하여 항거할 수 있는 일말의 능력도 없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자랄 수 있느냐(마 6:27)”.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인생이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 6:34)”.
지금 하나님께서 고통의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으라고 긍휼의 음성을 외치신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러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자, 그 어떤 부요함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환희의 영생을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부여받는 축복의 길이다.
하민국 목사
웨민총회 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