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의 러브레터] 세상의 문제들 8: 예민함 vs 단순함
1.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예민하다고 생각되시나요?”
다들 자신의 예민함에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소리에 예민한 사람, 냄새에 민감한 사람, 낯선 환경에 예민해지는 사람, 타인에 대하여 예민한 사람….
Highly Sensitive Person, 미국의 심리학자인 일레인 아론에 의해 알려진 매우 민감한 사람은 어느 나라건 20% 정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주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민함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 매우 복잡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문제는 유독 우리나라는 예민함의 긍정적 측면만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도서를 판매하는 유명한 도서 판매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예민’이라는 주제에 링크된 도서들의 제목은 <오늘도 예민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게 뭐라고 신경이 쓰일까>,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심지어 아이들 책도 ,나도 예민할거야>, 예민한 부분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매우 단순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예민함이라는 특성이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개인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나타난 이 예민함의 문제들에 대해 위로 받고 싶어하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지난 10년 삼성서울병원에서 진료한 전홍진 교수는 그래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출간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예민하다는 이야기를 열거한 뒤, 자가진단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31가지 자가진단 항목 중 마지막 31번째에는 ‘코로나 블루’라는 현상도 있습니다. 다들 초예민 상태여서 기침만 해도 자기 걱정에 사로잡히고, 타인에게는 불필요한 예민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조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어디서 어떻게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당장 생계를 포기할 수도 없고, 회사원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 학교를 무조건 막을 수도 없고, 어머니는 내일도 자녀들을 위해 장을 보러 가야 합니다. 시장 상인들에게도, 매장 직원도 누구하나 거저 밥을 주지 않습니다. 모두 일해서 자기 자녀들, 부모들, 부인과 남편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조심했음에도, 자기도 모르게 코로나에 걸릴 수 있습니다. 병에 걸린 것도 슬픈 일인데, 그 병에 걸리면 “당신은 왜 돌아다니냐”, “왜 거기를 다녀왔느냐” 심문하듯 날카로와진 세상….
3. 지금까지 세상의 문제들을 요한복음 21장을 토대로 살펴본 결과, 예민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늘 바쁘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니 쉼이 없습니다. 언제나 남보다 빨라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상처만 남습니다. 세상의 속도에 점점 맞춰 따라가고 있습니다.
결국 올바른 대화는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매여 구속당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저기 분노와 상처가 얼룩져있습니다. 이제는 내 뜻이 주님 뜻보다 더 중요합니다.
4. 이렇게 예민해진 결과, 그래도 “나는 괜찮아”라고 하는 세상에 속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 예민함은 자신에게는 몰입을 방해하고, 타인에게는 갈등을 불러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복음 21장 18-19절에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순간 돌아보더니,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21절)?”라고 묻습니다. 예민해진 상태입니다. 늘 거슬리는 요소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넌 이제 니 마음대로 못 살아. 나중에 너는 순교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대화의 대상은 주님이어야 합니다.
“주님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라고 묻거나,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자신에게도 몰입하지 못하고 주님께 집중하지도 못하는 베드로는, 여전히 사람이 신경쓰였습니다.
5. 예민함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수 있는가에 대해, 오카다 다카시는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로 긍정적이고 균형적인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민해지면 늘 비판적이어서, 사고가 편향이 됩니다. 흉을 보면 그 마음으로 자기를 볼 때 남을 비판하는 모습과 똑같은 자기 모습이 보입니다. 타인의 긍정을 보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친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거리두기입니다.
그런데 타인과 거리를 두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와 거리를 두는 겁니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대부분 타인에게 비판적인 사람일수록, 자기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날카롭게 타인을 향해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합니다. 자기와 거리두기가 안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안전기지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예민한 존재일수록 완전한 안전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해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네 여러분, 안전한 곳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런 예민하고 까칠한 우리를 세상 누가 받아주겠습니까. 주님 안에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래서 아주 단순한 일상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예민한 사람의 특징은 인풋(input)이 많은 겁니다. 그걸 차단하는 겁니다.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에 자꾸 요한이라는 존재가 들어옵니다.
타인이 능동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이 능동적으로 얼마든지 차단할 수 있습니다. 몰입과 몰입 사이에 내게 주는 자극을 차단해가는 것입니다.
6. 여러분. 원래 사람은 단순해져야합니다. 창조된 모습이 원래 그렇습니다.
전도서 7:29절 말씀인데요.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깨달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문제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겁니다.
자연의 리듬 또한 단순합니다. 그저 아침과 밤의 질서안에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리듬에 나를 맞추어갈 때, 매일 새로운 창조질서는 생산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것을 무너뜨립니다. 밤을 낮처럼 삽니다. 그래서 낮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7. 문제는 우리도 쉬어야할 때, 쉬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커스 라이컬이라는 워싱턴 의대 뇌과학자가 2001년에 발견한 사실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바로 Default Mode Network(DMN)입니다.
아무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뇌의 이 영역이 활발히 운동하는데, 이곳은 내측 전전두엽, 후측 대상피질, 설전부의 영역입니다. 이 영역은 놀랍게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운동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밤이었던 영역이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쉴 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영역의 일은, 서로 연결 못하고 바쁘게 움직이던 뇌 영역을 그 사이에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적 질서가 뇌에 다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리더십들이 이미 활용했던 분야이기도 합니다. GE 잭 웰치가 회장으로 가장 바쁘게 근무할 때, 1시간씩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빌 게이츠도 1년에 2-3번씩 약 2주 넘는 시간을 오두막에 가 혼자 지내곤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자녀들에게 결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순간은 수도원 생활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8. 과거 가장 창의적 순간은 몰입할때 나온다고 봤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바른 몰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놓치고 있는 세상입니다. 완전한 비목적적 사고, 다시 말해 밤에 자려고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할 때, 옆에 아무도 없을때 산책하면서 샤워하며 나른함 가운데, 그럴 때 ‘아하~!’ 하는 생각이 튀어나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기도할 때 온갖 생각이 다 드는 이유는 그만큼 여러가지 자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안 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가만히 두면서 계속 기도할 때 생각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창조적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집니다.
9.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 시기에 많이 힘드시지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예민해져 있습니다. 곳곳에서 분노를 터뜨립니다. 자기 분노로 누군가가 다치고 있다는 것도 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단순해진 삶의 패턴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주님을 알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잠시 뒤로 하고, 멍하니 있는 것같이 단순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옵니다. 아마 예전처럼 서로 만나는 일들도 줄어들 것입니다. 예민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안전한 주님과의 만남에 몰입해 보는 것입니다. 그 몰입을 위해, 여러분 삶을 단순함으로 인도하시는 현재의 궤적으로 순종해 보십시다.
코로나19가 우리 모두에게 예민함으로 다가오지 않고, 놓치고 있었던 삶의 단순함을 회복해서 창조의 리듬이 무너진 곳곳에 회복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