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3월 스리랑카 평신도 지도자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각 교회에서 선발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일까요? 질문에 답을 주시는 분에게 귀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여러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분은 교회 부흥(전도), 어느 분은 재정, 어는 분은 교회 건축……. 이런저런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목회자에 따라 추구하는 꿈과 비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답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주일예배 후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32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2년씩 교회를 거쳐간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도 달라진 사람이 있을까요? 아내의 대답은 “한 명도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본질(삶)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신앙인들은 달라지지 않을까? 무엇이 문제일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대답은 “구속의 은혜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옛 사람과 새 사람이 무엇인지 그 근본을 잘 모르기 때문이겠죠!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주변에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을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목사님들 중 한 두 분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목사님들의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별로 달라진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의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과 믿음의 수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15년 동안 강단에서 설교한 횟수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공식 설교만 5,500번 이상이었습니다. 그 많은 설교 중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말)가 “사랑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내와 자녀에게 목사로서 사랑의 본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강단에서 설교할 때 많은 은혜도 받았지만, 때로는 말만 하지 말고 당신이나 잘하세요.”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수십, 수백, 수천 번 설교를 듣고도, 신학과 성경공부를 하고도, 은사는 물론 각종 은혜를 체험하고도, 새벽기도는 물론 금식 기도와 철야기도를 하면서 왜 사람이 달라지지 않을까? 저에게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주일날 어느 집사님께서 이런 은혜 나눔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설교에 눈물 콧물로 많은 은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고 지나가면 깜짝 놀라 은혜 받은 말씀을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스리랑카에 어느 사모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쪽 귀로 말씀이 들어와 나갈 때는 바람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목사의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는 무능한 목사입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6개월 이상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천지가 개벽되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이 말씀 때문에 몇 날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날을 뒤돌아보니까? 많은 설교와 성경공부는 했지만 내가 전한 말씀대로 내가 먼저 실천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그 후 주일날 성도들에게 광고를 했습니다. “오늘이 저와 마지막으로 드리는 송별예배입니다. 그동안 목사로서 본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다른 교회로 모두 출석하시길 바랍니다.” 그 후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아내와 아들을 붙들고 2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저는 그 2년이 평생에 제일 행복한 목회였습니다. 매 주일마다 가족이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달라지지 시작했습니다. 내 묘비에 “나를 본받으라”는 말로 내 생애를 마감할 수 없다면 나는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묵상을 하다가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빌 3:17)”란 말씀이 레마가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과 눈으로 성경을 볼 때마다 그동안 불행했던 모든 것이 내 책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명품 설교를 해도, 그 설교가 명품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먼저 명품 삶과 명품인격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었던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먼저 변하기 시작하면서 가정은 점점 천국으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아내는 물론 아들과 며느리 이 땅에서 이렇게 행복한 가정이 있을까 할 정도로 온 가족이 천국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개척 후 15년 동안 가난은 물론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도 저도 온 식구가 신용불량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쌓을 곳 없는 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2019년도에 32년간 봉직한 목회를 조기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 사도 바울처럼 귀한 사역을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습니다. 목사들끼리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목회는 하루하루가 목 매달린 사역이다.” 저 역시도 그런 목회를 15년 동안 해보았습니다.
어느 날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손에 말굽자석을 주셨습니다. 끈으로 자석을 묶어 땅에다 놓고 끌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석을 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붙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쇳가루가 붙어있습니다. “앞으로 너에게 불필요한 모든 것들은 다 끊어지게 할 것이며, 너에게 필요한 복을 주겠다.” 그 후 모든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가 행복한 사역과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축복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