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흑사병 체험과 섭리에 관한 교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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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칼럼] 종교개혁 기념강좌 (6)

4. 칼빈의 흑사병 체험과 섭리에 관한 교훈들

칼빈의 생애 기간 동안에 그가 살았던 도시들과 스위스 지역에 흑사병이 모두 다섯 차례나 휩쓸고 지나갔다. 종교개혁의 2세대에 속하는 칼빈의 경우에는 보다 차분하게 신학적인 해답을 제시하였다. 지독한 전염병에 대처하는 그와 제네바 목회자들의 목회적 리더십이 돋보였다.

4.1. 칼빈의 흑사병 체험과 고난들

1542년 가을에, 흑사병이 다시 스위스 전체와 특히 제네바를 강타했다. 아마도 프랑스 군대 약 1만여 명이 바로 앞선 시기에 제네바에서 머물다가 떠나갔었는데, 그들이 지나간 후로, 일 년이 되어갈 무렵에 흑사병이 크게 확산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보드 지방 니용에 흑사병 병원을 설립하여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 해에 흑사병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서, 제네바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극심한 전염병이 퍼졌던 1542년은 칼빈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다시 제네바 목회자로 되돌아온 지, 불과 1년여 되었을 때였다. 바로 이 해에 전염병에 걸려서 저명한 바젤의 개혁신학자, 시몬 그리내우스(Simon Grynaeus)가 사망했다. 칼빈이 깊은 존경심을 갖고 흠모하던 바젤 대학교의 교수였던 시몬 그리내우스에게 첫 저서, 로마서 주석(1539년)을 헌정한 바 있었다.

1545년 3월 27일자, 칼빈의 편지에 보면, “삼 년 동안이나 흑사병을 몰래 숨기고 있었던 수많은 모략자들, 남녀 할 것 없이 드러났는데, 그들이 어떤 수단들을 사용했는지 나는 모른다. 열다섯 명의 여인들을 화형 했다. 상당수의 남자들에게 가혹하리만큼 징벌을 가했다. 상당수는 감옥에서 자결했다. 스물다섯 명은 아직도 구금되어있다. 음모자들과는 같이할 수 없다.”

칼빈이 제정한 “제네바 교회의 목회규정”에서 이미 이러한 질병에 대한 대처방법을 제시한 바 있었다. 일단 감염된 환자들을 시 외곽지역의 격리 병원에 수용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격리병원이 오히려 감염환자를 증폭시키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칼빈은 매우 주도 면밀하게 환자들을 돌보는 목양사역에 앞장을 섰다. 시의회에서 목회자들에게 환자들을 돌보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자를 직접 만나서 위문하는 열정적인 목회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환자들을 돌보다가 전염병에 감염되어서 죽음을 당하였다. 그 어떤 목회자보다도 먼저, 칼빈이 앞장서서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맡겠다고 자원했지만, 시의회에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제네바 목회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자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시의회는 목회자들을 비판하면서, 칼빈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목회자들로 하여금 환자 심방과 위로에 나가라고 결의하였다.

제네바 목회자 삐에르 블랑세(Pierre Blanchet)가 이처럼 고통스러운 현장을 방문해서 죽어가는 자들을 위해서 목회적인 배려와 영적인 돌봄 사역에 자원했다. 칼빈은 블랑세에게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나면, 자신에게 그 남은 의무가 주어진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칼빈은 블랑세에게 큰 짐을 지우게 해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블랑세는 1542년 가을까지 환자들을 방문해서 돌보는 일을 열심히 수행하다가, 결국 그도 감염이 되어서 사망했다.

칼빈은 이러한 흑사병이 전파되는 상황에 대해서 두려웠다. 그가 마음을 나눈 친구 삐에르 비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려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스캇 마네치 교수는 『칼빈의 동료목회자들』에서, 이 상황에서 목회자들이 소명의식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밝혀놓았다. 일부 목회자들은 블랑세처럼 헌신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와는 정 반대로 격리된 환자들이 머무는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하는 목회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추첨으로 담당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감당케 했다. 어떤 목사는 자신의 순서가 정해졌는데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꺼이 환자 방문을 자원하였던 매튜 게네통 (Mathieu de Geneston)은 불과 몇 주 사역하던 중에 흑사병에 감염되었고, 결국 사망했다. 제네바 목회자들은 칼빈의 개혁신학에 대해서 확신을 가졌지만, 치사율이 높았던 흑사병에 대해서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제네바 시에서만이 아니라, 스위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칼빈의 지인들 중에서도 희생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칼빈은 1538년 여름부터 1541년 8월까지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프랑스 피난민들을 위한 목회자로 사역했었다. 그를 목회자의 길로 인도했던 기룜 파렐은 평생 동안 아버지같이 의지하고 따라던 분이었다. 1538년 동역자 기룜 파렐의 조카가 흑사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칼빈이 파렐의 조카가 누워있던 침상을 방문했었다. 그 환자가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징표들을 곧바로 목격할 수 있었다. 칼빈이 여러 가지 영적인 격려를 하였지만, 파렐의 조카는 곧 사망하고 말았다.

칼빈이 스트라스부르그에 있었던 시절에 흑사병으로 인해서 사망한 동료들을 돌보면서, “내 영혼이 부서지고, 내 정신이 완전히 죽은 사람들로 압도당하고 말았다”고 호소하였다. 1541년 3월, 칼빈은 이런 슬픈 소식을 파렐에게 보냈었다. 그들이 피차 알고 지냈던 프랑스인 친구들, 끌로드 페레Claude Ferey)와 그의 동생 루이 (Louis)가 스트라스부르그에서 흑사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파렐에게 알렸다. “당신은 나의 친애하는 형제가 사망함으로서 느끼는 슬픔이 얼마나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지를 충분히 다 알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칼빈과 함께 개혁신앙을 나누던 피난민들이었다.

1541년 3월, 칼빈이 잠시 독일 레겐스부르크에서 모인 신학토론회에 참석하고 있었을 때에, 흑사병이 그가 살던 집안으로 퍼졌다. 칼빈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던 젊은 학생 끌로드 페레이 (Claude Feray)가 사망했고, 다른 학생들도 역시 죽었다. 칼빈은 자신의 아내 이들렛과 그녀의 첫 결혼에서 낳은 아들과 딸을 모두 다함께 그녀의 오빠 (Lambert)에게 가도록 했고, 칼빈 자신의 두 동생들 (앙트완느와 마리)도 다른 도시로 잠시 피신을 시켰었다.

칼빈이 다시 제네바에 돌아온 후, 성도들을 보살피면서 목격한 흑사병의 참상은 1544년까지도 지속되었다. 칼빈은 다른 목회자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병원을 방문하여 환자들을 돌보았다. 칼빈은 기꺼이 이런 목회임무를 담당하겠다고 자청했지만, 시당국에서는 그의 위치가 국제적으로 너무나 중요해서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일부 제네바 시민들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피난민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있었고, 칼빈에 대해서도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칼빈의 교훈과 명성은 갈수록 개신교회 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었기에, 시당국에서는 종교개혁에 동참해서 은신처를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지속하고자 다짐했다.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칼빈의 목회적 돌봄 사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김재성 박사(조직신학,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김재성 박사(조직신학,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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