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종교개혁 기념강좌 (9·끝)
5. 맺는 말: 현대적 교훈들
종교개혁자들은 흑사병이라는 공포스러운 질병에 대처하여 목회자로서의 헌신과 봉사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러한 체험들은 그들의 신학사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흑사병은 잉글랜드 청교도들의 시대에도 퍼졌는데, 목회자들은 전염병을 피해서 다른 도시로 가지 않고, 환자들을 심방하며 격려하고 위로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에 크게 기여한 토마스 가태커 (Thomas Gataker, 1574-1654)와 윌리엄 고그 (William Gouge, 1575-1653)는 그들이 목회하던 런던을 떠나지 않고 환자들과 가정들을 보살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이 세상에서의 짧은 삶보다는 영생을 바라보면서 신실하게 봉사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복음을 설교하여 희망을 밝히고, 환자들을 위로했다.
2020년, 한 해 동안에 “코비드 19”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몰고 온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우리가 생각할 몇 가지 현대적 교훈들로 적용해 보고자 한다.
5.1. 가짜 기독교 신자와 순전한 신앙인의 구별
현재 우리는 극도의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러한 때에 참된 기독교 신앙을 분별해 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서 가르쳐주신 바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서, 유대주의와 형식적인 바리새인들이 가짜임을 드러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참된 신앙을 선포하셨으나 그들은 반대하며 정죄했다. 이처럼 정확한 진리의 본질을 이해하고 따르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가식과 교활한 외식에 젖어있는 자들이 구별된다. 참된 성도들은 이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교회를 떠나지 않고 단결하며, 가짜 기독교인들과 구별되게 참된 인격적인 생활을 지켜낸다 (마 6:16-18).
우리가 어떤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은 모두 다 알고 계신다. 사람들끼리는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진짜 기도를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기도하는 척 하는 사람인가! 진짜 금식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금식하는 척 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 하는 자인가! 그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자들은 하나님마저 속이려든다. 코로나 19시대는 누가 진짜 성도인가를 구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충성스러운 일군처럼 교회 생활을 하던 사람들 중에, 이처럼 고난에 임박해서도 신실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자기 편리한대로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봉사를 아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필자는 교회 안에서 점차 줄어드는 젊은이들에 대해서 걱정하게 된다. 부모들의 신앙세계를 충분히 물려받지 못하고 성장한 자녀들은 교회에 관한 헌신과 소속감이 현저히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불안과 근심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다 (마 6:25-34).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해서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공중의 새들을 둘러보아라. 들판의 꽃들이 어떻게 살아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배려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아버지와 같다. 매우 자상하게 살펴주시고, 도움을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과 통치를 확신해야 한다. 우리가 과연 지금 당하는 고통 속에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는가? 과연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가? 과연 우리에게 신앙이란 이러한 확신이 있다는 것인가? 바울 사도는 “사형선고”를 받은 자같이 되었다가, 환란에서 건져주시고, 고통 가운데서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로 건져내심을 받았다고 하였다 (고후 1:3-9).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하신 말씀은 다시 바울 사도가 반복하였다고 생각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리라” (빌 4:6-7)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회전반에 불안과 불면증, 우울증, 의욕상실증 등을 확산시키고 있다. 성도들은 질병의 급속한 확산 속에서 두려움과 염려에 휩싸여서, 불면증이나 불안감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제가 침체하고,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며, 수입이 줄어드는 고통들을 당하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 성도들은 “우울증”에 빠져서 지내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도록 선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따라서 “평강의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평안을 믿고 의지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유와 도움을 제공하시기를 즐겨하신다.
5.2. 어려운 일로 인해서 분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욥기서에 나오는 대로, 마귀는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에도 불필요한 논쟁과 격론을 유발하게 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트리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참으라고 요청하신다. 오래 참는 것이 성도의 덕목이다. 죄인들과 반역하는 무리들을 향해서 항상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귀는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려 한다.
건강이 손상되거나, 가정에 문제가 발생한 성도를 돕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한다. 어떤 장로님은 매번 작은 소모임의 형제들에게 전화를 하신다고 하는데, 큰 수고가 아닐지 모르지만 성도들의 반응은 매우 호응적이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방역당국에서는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조심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당연히 ‘마스크’를 사용하고, 손씻기를 습관처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러한 조항들을 준수하면서,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과 가까이 다가가는 일을 미룰 수 없다.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시대에 성도들은 각 가정에서 혼자 유투브나 텔레비전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런데 각 개인의 방에서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는 집중이 되지도 않거니와, 전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서 혼란을 겪고 있다. 경건의 훈련과 성도의 헌신이 없이 그저 개인적인 형편에 맞춰서 편리한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결국 경건의 퇴보가 초래되고 만다. 결국 각종 시련과 유혹에 대처하지 못하는 믿음의 심각한 붕괴상황에 처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목회자들은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적응해서, 더 많은 성도들과 접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미디어 환경에 기술적으로 적응이 잘 된 그냥 설교자가 아니라, 목자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영혼의 아픔을 돌아보고, 상처를 치유해 주며, 악한 위험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의 주요 지도자들, 특히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은 거룩한 직분을 맡은 자들로서 상호간에 성도들이 격려하고, 돌아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중국 우환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에 대해서 걱정하면서, 동시에 중국을 위해서 사역하거나, 그 안에서 선교하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중국의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면서도, 교회의 부흥에 대해서 기도하여 왔다. 하나님께서 그곳 사람들을 위해서 역사하시기를 간구한다.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북한에서도 역시 보이지 않게 사역하는 분들을 통해서 복음의 열매들이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동시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성도들과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전 세계에 수 백만 명이 사망하였고, 천만 명이 넘게 확진 판정을 받아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믿으며, 만물을 지배하시는 분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작동에 대해서도 간여하시고 통제하실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의학 분야의 종사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자기들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헌신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 기회에 더 많은 영혼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 앞에 나와서, 겸손히 무릎을 꿇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된 성도들에게는 용기를 부여해 주시며, 성령의 권능이 함께하여서 더욱 견고한 신앙으로 이겨나가게 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