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후예들… 한국은 일본과 이란 중 어느 민족과 더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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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NEW 노아의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6)

마대와 바사의 언어는 한 민족 된 뒤, 시간 지나며 융합
멀리 떨어진 이란과 한국인의 기질 닮은꼴 설명 실마리
일본은 열도에 고착되면서 본래 유목민 기질 일부 변질

▲선지자들(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시대의 마대, 엘람, 앗수르, 바벨론의 강역. 메디아의 강역이 엘람보다 현재의 이란 대부분을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A Hisstorical Atlas of the Jewish People, NY: Schocken Books, 26).

▲선지자들(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시대의 마대, 엘람, 앗수르, 바벨론의 강역. 메디아의 강역이 엘람보다 현재의 이란 대부분을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A Hisstorical Atlas of the Jewish People, NY: Schocken Books, 26).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창 10:1-2)”.

마대(메대) 후손들의 정착지

야벳의 자녀들 가운데 형들인 고멜과 마곡이 아라랏산 서북쪽을 향한 것과 달리, 마대(Madai)의 후손들은 티그리스 강 북쪽에 있는 카스피해 남부의 자그로스(Zagros) 산 동쪽을 중심으로 정착하였다.

마대족(族)은 페르시아 서북의 험준한 자연 환경과 마대족의 북쪽에서 강력한 스키타이 제국을 세운 마곡족의 영향을 받으며 일찍부터 야성의 거친 민족성을 보인다.

야벳의 셋째 아들인 이들 마대 후손들은 셈의 육적 장자인 엘람(Elam) 후손들과 함께 오늘날 통합 국가를 이루게 됐다. 바로 과거 페르시아 지역 페르시아 만을 중심으로 오늘날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며 맞서고 있는 이란 지역이 바로 마대족(族)들이 뿌리를 내린 땅이다. 그리고 일부 메대인들은 지금의 인도 지역까지 진출하여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와 병합된 마대의 후손들

마대족은 어떤 역사적 여로를 걸어왔을까? 마대는 역사 속에서 주로 메대(Media)로 불려진다. 즉 메대(the Medes)는 민족 이름이고 메디아(Media)는 그들이 세운 나라 이름이다. 이들은 고멜이나 마곡의 후손들이 정착 지역의 특성상 성경 구약 역사와는 조금 거리를 두게 된 것과 달리, 성경 계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메대와 협력하여 앗수르를 멸한 바벨론의 성벽(베를린 페라가몬 박물관).

▲메대와 협력하여 앗수르를 멸한 바벨론의 성벽(베를린 페라가몬 박물관).

바로 마대는 창세기 이후 메대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다시 등장한다(왕하 17:6; 스 6:2; 에 1장; 사 13:17; 렘 25:25; 단 5,6,8,9장, 행 2:9 등 참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마대의 자손들은 헬라 사람들에 의해 메대(Medes)라 불려 졌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도 헬라인들이 이들을 메도이(Μῆδοι)라고 불렀다고 했다.

구약에서 메대가 언급될 때마다, 히브리어로는 마대(Madai, maday)라고 쓰여졌다. 외래어나 특수 이름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언어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당연히 페르시아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었다.

이란의 평원과 고원(高原) 지대에 자리 잡은 메대에 비해, 셈족 엘람 후손인 바사(페르시아)는 메대 남부의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였다.

넓은 평원에 자리잡은 반면, 규모가 크지 않은 나라였던 메대는 일찌감치 앗수르에 정복당한다. 주전 722년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을 때, 북이스라엘의 여러 지파 사람들은 앗수르의 점령지였던 메대 땅 여러 고을로 잡혀갔다(왕하 17:6).

▲메대 바사인(페르세폴리스, 전 KAIST 문화예술대학원 연구원, 디지털 복원 전문가 박진호 박사 제공)

▲메대 바사인(페르세폴리스, 전 KAIST 문화예술대학원 연구원, 디지털 복원 전문가 박진호 박사 제공)

마대족의 중심 도시는 전통적으로 엑바타나(Ecbatana, 지금의 Hamadan)였다. 이곳에 유대인들이 입성한 것이다.

마대의 후손 쿠르드족은 이슬람 전파 이전 주로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를 신봉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대교를 신봉한 것은 바로 이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영향이었다.

유대인들은 이후에도 옛 마대의 땅 하마단뿐 아니라 서부의 에데사(Edessa), 아미다(Amida) 등으로도 유입되었다. 지금 터키 땅(과거 아르메니아)이 된 이곳은 초기 기독교 전파 지역이 되었다.

주전 625년 경 메대 사람들은 앗수르에 복수전을 편다. 메대는 바벨론과 합세하여 앗수르를 멸망시켰으며, 이후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바벨론과 메대를 정복한 이후 ‘메대 파사’라 불리는 큰 나라를 이루었다.

선지자 다니엘의 시대, 메대 왕국의 다리오 왕(키악사레스 2세)은 사위 고레스가 바벨론을 함락시키자, 바벨론 갈대아 지방의 분봉왕이 되었다. 유럽과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중국 원나라와 고려 왕궁 사이에 빈번했던 일종의 왕가(王家) 간 결혼 동맹이 메대와 바사 사이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고레스(Cyrus, 통치 기간 기원전 539-530, 바사 제국 건설자) 시대 이후, 메대는 주로 페르시아인들과 함께 언급되고 있다.

▲메대 왕국 군주 다리오의 사위였던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고레스의 영묘(박진호 연구원 제공).

▲메대 왕국 군주 다리오의 사위였던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고레스의 영묘(박진호 연구원 제공).

그리고 ‘메대와 페르시아인의 법(다니엘 6:8, 12, 15)’ 이후 그들은 서로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페르시아인들(Persians)로 불렸다.

즉 그들은 변개치 않을 금령과 법도(단 6:15) 이후, 하나의 법에 의해 지배받는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야벳 후손 마대와 셈족 엘람 후손 바사(페르시아) 연합 국가의 탄생이었다. 다니엘이 활약하던 시대의 일이다.

따라서 이란을 단순히 셈족 엘람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오늘날 이란의 영토가 된 페르시아 고원과 평원의 넓은 강역을 지배하던 민족은 엘람 후손들이 아닌, 야벳의 셋째 아들 마대의 후손들이었다.

지금의 이란 수도 테헤란도 남부 엘람의 영역이 아닌 마대의 땅 하마단 동북부 엘부르즈 산맥의 남쪽 기슭에 있다. 마치 한반도 삼국 중 강역은 고구려가 가장 넓었으나, 신라가 삼국을 통합했고 수도는 이후 옛 백제 땅 개성과 서울(옛 한성 백제 수도)에 자리한 것과 유사하다.

인구 구성도 만만치 않다. 오늘날 쿠르드족 전체를 마대의 후손이라 보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이 비록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그들은 현재 고유 언어를 가지고 이란 안에만 1천만 명이 넘는다. 터키, 시리아, 이라크, 아르메니아 등에 속한 총 인구만 해도 3-4천만명에 달한다. 바사족에 완전 동화된 인구와 순수 엘람족과 비교해도 결코 적은 인구가 아니다.

이후 약 2,500년 후인 1935년 1월 1일, 팔레비 왕조는 자신들의 나라 이름을 이란(Iran)이라고 했다. 메대의 후예들로 알려진 쿠르드족은 자신들을 아리아누(Arianu), 즉 귀족들이라 불렀다. 팔레비 왕은 국호를 메대 후손들이 사용하는 ‘아리아나(Ariana)’, 즉 지금의 이란(Iran)이라 칭한 것이다.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전경(박진호 박사 제공).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전경(박진호 박사 제공).

마대-파사(이란)-한민족-일본의 커넥션

마대-바사와 우리 민족은 혹시 어떤 친연성이 있을까? 과거 일본 도쿄에서 대중목욕탕을 들렀다가, 한국과 이란 오직 두 나라 국민들만을 겨냥하여 탕 내에서 때를 밀지 말고 제발 목욕탕 안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소란 피우지 말라는 경고용 팻말을 본 적이 있다. 물론 한국어와 이란어로 된 팻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일본식 질서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들이 볼 때, 한때 동양의 축구 2대 강국이었던 다혈질 성향의 한국과 이란 두 나라 사람들의 민족성이 일본인들이 보기에 조금은 무례해 보이고 타국에 와서도 눈치 없이 여전히 소란스럽게 떠드는 두 나라 사람들의 닮은 행동이 자기들과는 꽤나 상이하게 느껴졌을 듯하다.

노마드(유목민) 기질을 가진 전형적 야벳 후손의 모습이다. 한반도 지명 연구의 최고 전문가 김성호 박사는 일명 불구(붉은) 내왕이었던 박혁(박불, bagh-fur 또는 bagh-pur=이란어 천자) 거세 간(게세르 칸)의 이름과 최초 도읍지 한강(아리수)의 아리(Ali) 역시 강을 지칭한 이란어인 점과, 박씨 족의 지표 지명인 카라(kara)가 이란어로 ‘검다(일본어에서는 黑, 즉 ‘쿠로’가 됨)’가 된 점에서, 인구 비율로 현재 우리나라 제3의 성씨요 초대 신라 임금 혁거세의 후손들인 박씨 족을 이란계 스키타이 족으로 보았다.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전경(박진호 박사 제공).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전경(박진호 박사 제공).

가야는 아예 국호를 지표 지명 ‘가라’ 그대로 활용하였다. 오늘날 서울 송파의 ‘가락’을 비롯하여 변진 12국 중 10국이 ‘가라’라는 이름을 가진 제국이었고, 가라(加羅·加耶·伽耶·伽倻·加良·駕洛 등)계 지명은 평북, 황해, 강원, 경기, 충남, 충북, 경북, 부산, 경남, 전남 등에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서울에는 한강 하구 고양시 가라산(加羅山), 영등포 가리봉동(加里峯洞), 송파 가락동(可樂洞)의 지명이 삼각형을 이룬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편의상 스카타이족을 지역적으로 농민 스키타이, 농경 스키타이, 왕족 스키타이, 유목 스키타이로 구분했다.

이 중 이란계 언어의 영향을 받은 스키타이족 일부가 이란어인 ‘카라’의 지명(어쩌면 스키타이화된 지명)을 터키와 카스피해 서부, 카자흐스탄의 알마타 지역까지 확산시킨다.

우즈베키스탄 서부의 이름은 아예 카라의 자치주(카라칼팍)이다. 중국 중심 지역에는 없는 이 ‘카라’ 지명이 중국 접경 지역, 우랄 산맥을 넘어 중국 서북부와 몽골고원을 거쳐 다시 한반도 동남부 옛 가야(가라, 카라) 지역과 옛 일본 지명에서 일부 나타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키타이나 마대족은 언어는 있어도 모두 글은 남기지 않았다.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전경(박진호 박사 제공).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전경(박진호 박사 제공).

따라서 이란계 언어 ‘카라’는 남부 셈족 엘람의 언어가 아닌 고멜과 마곡(스키타이)의 형제요 지역적으로 이들과 삼각형을 이루며 인접하여 늘 교류하던 마대의 언어였을 것이다. 즉 야벳 계열의 언어였다.

물론 마대와 바사의 언어는 한 민족이 되면서 시간이 지나며 서로 융합됐다. 이것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치 우리 (고)조선어가 부여와 삼한(마한, 진한, 변한)어로 분화되고, 다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어로 재분화되었다가 삼국통일 이후 서로 융합된 것과 유사하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언어는 잃어도, 고향의 지표 지명은 끈질기게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잉글랜드인들이 도착한 아메리카 땅도 뉴잉글랜드라 하지 않는가. 당나라로 잡혀간 의자왕과 수많은 백제인들도 그랬다.

따라서 백제의 지명이 중국 남부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것도 연구 대상이다. 중국어와 어순이 전혀 다른 소수민족이 중국 남부와 태국 북부 등에서 끈질기게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고구려 유민과 관련하여 연구거리다.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전경(박진호 박사 제공).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전경(박진호 박사 제공).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진 이란과 한국인의 기질이 왜 일정 부분 닮은 부분이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실마리일 수 있다. 다만 같은 ‘카라’계 민족인 일본은 열도에 고착되면서 본래의 유목민적 기질이 일부 변질, 탈색되었다. 물론 반도에 정착한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이렇게 ‘노마드’ 기마 민족이 반도와 열도에 고착화되면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제 이 문제는 잠시 미루고, 다시 성경에 등장하는 마대의 주요 후손 다리오 왕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조덕영 박사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평택대 <신앙과 과학> 교수,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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