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NEW 노아의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8)
야완 아들 엘리사, 달시스, 깃딤, 도다님
이들 4인 모두 헬라 사람들과 관계 있어
죄악된 세상, 전쟁 포로는 민족 이동 초래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창 10:1-2)”.
헬라 문화를 일군 야완의 후손들
야벳의 넷째 아들 야완(Javan, Ἰωυαν)은 그리스(Greece)의 히브리 단어이다. 그 뜻은 분명치 않으나 어원상으로 이오니아(Ionia, 고대 헬라어 이알론)와 일치한다. 따라서 그 이름은 예언서들에서 이오니아 본토(소아시아 서부 연안)와 헬라 마게도냐에 거하는 야완의 자손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즉 야완의 후손들은 야벳의 세 아들, 곧 야완의 형들인 고멜과 마곡과 마대가 아라랏산을 중심으로 ‘트라이앵글’을 이루며 초기 정착지를 이룬 반면, 지금의 터키 해변가와 에게해, 그리고 그리스 방면으로 진출한 것을 알 수 있다.
헬라(Greece, KJV은 Grecia로 표현) 또는 헬라 족속(Grecians)에 대해서는 선지서들이 잘 전하고 있다. 특히 이사야(사 66:19), 에스겔(겔 27:3), 다니엘(단 8:21, 10:20, 11:2), 스가랴(슥 9:13), 요엘(욜 3:6) 선지자가 이 야완의 후손들에 대해 전하고 있다.
구약의 선지서 여러 곳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야완의 후손들은 이미 팔레스틴 지방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헬라인들은 이렇게 항상 히브리어로는 야완으로 불렸다. 다니엘은 ‘헬라 왕(단 8:21)’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문자 그대로 ‘야완의 왕’이었다. 그리스와 앗수르, 애굽 문서들이 헬라 사람들과 그들의 거주 지역을 가리킬 때 늘 야완이라 불렀듯이, 구약 성경도 정확히 일치한다.
야완은 엘리사(Elishah)와 달시스(Tarshish)와 깃딤(Kittim)과 도다님(Dodanim)이라는 네 아들이 있었다(창 10:2, 4; 대상 1:5, 7). 이들은 모두 헬라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
섬으로 간 야완의 장남 엘리사
고대 헬라인들의 명칭인 엘리시안스(Elysians)는 엘리사(Elishah)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친히 이스라엘 주변 여러 국가들의 운명에 대해 계시하실 때, 두로를 위해서는 애가(哀歌)를 부르라 하신다.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두로 사람들의 물질적 자랑과 교만의 허망함을 지적함이었다. 이때 두로가 ‘엘리사 섬’과도 교역했음이 나타난다(겔 27:7). 이렇게 이오니아와 헬라 지역에 분포하며 해양을 장악한 야완의 아들 가운데 장남 엘리사의 후손들은 섬에 정착했다.
바울의 고향 다소의 개척자 달시스
야완의 둘째 아들 달시스(Tarshish, 또는 Tarsus)는 실리시아(Cilicia, 성경의 실루기아(Seleugia) 또는 길리기아, 현재의 키프로스섬 북쪽 터키 지역) 지역에 정착했다. 타르수스는 실리시아의 도시 이름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의 다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예수님 당시 이미 사도 바울의 고향 실루기아의 다소나 셀리누스(Selinus) 등 실루기아의 중심 도시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정착지였다.
헬라어 70인역이 아닌 히브리어 성경을 직접 라틴어로 번역(일명 Vulgate 역)한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일명 제롬, 340-420)는 바울의 가족이 주전 4세기 경 갈릴리의 기살라에서 다소로 이주해 왔을 거라고 한다(참조. Jerome. Devir. ill. 5).
달마디아(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출신의 제롬은 젊은 시절 동방을 순례했을 만큼 경건함과 신앙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그는 바울의 고향 다소를 거쳐 안디옥까지 순례했고, 386년 베들레헴의 수도원에서 420년 사망할 때까지 머물렀기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야완의 셋째 아들 깃딤, 키프로스(구브로) 섬에 정착하다
깃딤(Kittim)은 구브로(키프로스, Cyprus)의 히브리식 명칭인 키티온(Kition)과 연관된다. 또한 키티온은 키프로스 섬 남동 해안에 위치한 페니키아의 주요 도시이기도 했다.
이 키프로스 섬은 기독교 선교사의 중요한 기점이었다. 제1차 전도여행 시 안디옥을 떠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실루기아로 갔다가 배를 타고 구브로 섬에 도착하여, 이곳 동부의 항구 도시 살라미(Salamis, 셈어 ‘평화’에서 온 말, 비잔틴 시대 섬의 수도였다가 지금은 폐허가 된 도시)에 와 유대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한다(행 13:5). 이때 마가 요한도 함께 있었다.
이어 살라미를 떠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구브로의 남서쪽 파포스(Paphos, 성경의 ‘바보’)에서도 복음을 전한다(행 13:6-13). 주전 58년 구브로 섬이 로마에 점령당하면서 신(新) 바보항은 이 섬의 수도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바울 일행은 성경이 지혜로운 사람(행 13:7)이라 칭하는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의 친구로 마술사요 거짓선지자였던 바예수를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요 주님의 길을 방해하는 자(행 13:8-12)’라고 꾸짖어 눈을 한동안 멀게 하고, 총독을 전도하였다.
야완의 막내 아들 도다님도 에게해의 섬으로
헬라 사람들은 주피터 도다네우스(Jupiter Dodanaeus)라는 이름으로 주피터 신을 숭배했다. 이것은 아마 야완의 네 번째 아들인 도다님(Dodanim)에서 파생된 말로 여겨진다. 그 성소(oracle)는 도데나(Dodena)에 있었다.
맛소라 사본은 도다님을 로다님(Rodanim)으로 표기하고 있다(대상 1:7). ‘로다님’도 에게해 지역에 분포한 섬 주민들과 관련된 이름이다. 히브리어에서 d와 r이 서로 유사하기에, 창세기의 도다님을 맛소라 사본 역대상(대상 1:7)의 로다님으로 볼 때 오늘날의 유명 관광지 ‘로도스(Rhodes)’ 섬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들 야완의 네 자녀의 후손들은 헬라와 이오니아를 중심으로 부근 에게해 주변 섬 지역에까지 널리 흩어져 살았다. 그리고 이들 야완의 후손들은 인구가 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중해 쪽 여러 섬들과 그리스 육지 등으로 진출했다.
이렇게 볼 때 야벳의 세 자녀(고멜, 마곡, 마대) 정착지가 아라랏산을 중심으로 트라이앵글을 이룬 반면, 넷째 아들 야완을 포함할 경우 아라랏산을 중심으로 테트라곤(tetragon) 형태를 이루며 번져나갔던 셈이다.
헬라와 이스라엘의 첫 만남: 노예 제도
에스겔 선지자는 야완을 노예와 놋그릇 무역상으로 묘사한다(겔 27:13). 맞는 말이다. 과거 헬라는 온갖 노예를 사고 팔며 해양 무역을 주도하던 민족이었다.
요엘서(욜 3:6)에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 민족에게 노예로 팔려갔다. 여기에는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이 관여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재물과 힘과 폭력을 기반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특히 야완의 후손 마게도냐의 젊은 황제 알렉산더의 예루살렘 입성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이어, 유대 민족에게 또 다시 유랑의 디아스포라를 선사했다. 이렇게 전쟁과 포로는 민족의 이동을 초래한다.
우리 민족도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의 시대에 중국의 진, 한, 당, 원나라와 몽골, 중앙아시아, 일본, 러시아 등으로 너무나 많은 동포들이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이동했다.
오죽 하면 저 멀리 남미 인디언들이나 태국 북쪽 산악지대 소수민족들에게서 옛 우리(고구려 등) 민족의 언어와 풍습의 원형을 찾아낸 선교사나 학자들이 있을 정도다.
이들 가운데 일부 인디언들은 (모든 인디언들이 그렇지는 않았더라도) 어떤 계기로 자발적으로 바다를 건넌 우리 민족(숙신, 읍루, 말갈, 발해 등)의 한 줄기였을 것이다.
태국 산악지역에서 발견되는 소수 민족 중 일부는 당나라에 잡혀간 고구려 패잔병, 백제 유민 중 정치적 이유로 남으로, 남으로 이동한 무리들과 관련돼 있음이 분명하다.
조덕영 박사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전 김천대, 안양대, 평택대 겸임 교수
평택대 <신앙과 과학> 교수,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