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어떤 재난 앞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의무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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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특별기고] 우리가 홍수이고, 우리가 방주다 (下)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하듯,
계몽주의자들 불가능한 일이 그리스도인들엔 가능
도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신앙으로는 가능하듯,
인간 연대로 불가능한 일, 그리스도 사랑으로 가능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묵시록적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 할 수 있고 해야만 해

▲코로나뿐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각종 위기를 막아서기 위해 전 지구촌이 하나로 힘을 모을 때다. ⓒ픽사베이
▲코로나뿐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각종 위기를 막아서기 위해 전 지구촌이 하나로 힘을 모을 때다. ⓒ픽사베이

2021년 새해, 사람들에게는 희망 대신 절박함이 가득하다. 절망적 재앙이 언제 끝날 것인지, ‘뉴 노멀’ 시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지 물음표만이 가득하다. 교회에 가서 예배마저 드릴 수 없게 된 그리스도인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에 지난 편에 이어,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철학자/신학자인 김용규 작가에게 2020년에 대한 성찰과 2021년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생각’에 대해 들어봤다.

◈희망은 이성 또는 합리성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를 비롯해 기후 변화로 인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재앙들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무분별한 개발에 의한 생태계 파괴와 과도한 자원과 에너지 소비에 의한 환경오염이 불러온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근대 이후 우리가 만들어온 세상-특히 지난 50년 동안 세계화와 자본주의, 소비물질주의가 주도해온 탐욕적 생활방식과 착취적 경제 체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영위해온 생활 방식과 경제 체제를 세계적으로 그리고 항구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예정된 재앙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같은 말을 달리 해 보자.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인간의 탐욕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죄의 결과, 곧 ‘죄성’이라 규정한다.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죄성을 에디오피아인의 검은 피부나 표범의 반점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예레미아 13:23)에 비유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23)”이라고 교훈했다.

요컨대 죄가 탐욕을 낳고, 탐욕이 사망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는 물론이거니와 기후 변화로 다가오고 있는 묵시록적 재앙들이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했다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가 자신과 세계를 구하는 일은 불가능한 과제가 아니겠는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인문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우리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천 길 벼랑 앞에 섰다. 출구가 없고 추락만 남았다. 소망이 끊어지고, 희망이 사라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바로 이 때 이 지점에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막다른 골목에 갑자기 출구가 트이고, 추락하는 우리에게 홀연히 날개가 돋는 일이 일어난다. 소망이 이어지고 희망이 열린다.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거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다양한 답이 가능하겠지만, 여기에 대한 올바른 답은 ‘하나님이 누구인가’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역시 다양한 답이 가능하겠지만, 그분은 ‘세계 내재자(Immanent being)’인 동시에 ‘세계 초월자(Transcendent being)’이시다.

하나님이 ‘세계 내재자’라는 말은 그분이 인간과 세계에 부단히 관계하신다는 뜻이고, 하나님이 ‘세계 초월자’라는 말은 그분이 인간과 세계의 한계를 부단히 넘어서신다는 의미다.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본질이자,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인간과 세계에 부단히 관계하시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인간과 세계의 한계를 부단히 초월하시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과 세계의 연약함과 죄성을 아시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인간과 세계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강하게 만드시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기(incarnatio)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또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anastasis)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희망과 삶은 이성 또는 합리성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의 희망과 삶은 이성 또는 합리성의 한계를 초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는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권능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과의 연결로 인해 세계 내재자이자 세계 초월자가 될 수 있다/ 된다/ 되어야 한다. 세계 안에 초월적 사건-이것을 우리는 기적이라 한다-을 일으킬 수 있다/ 일으킨다/ 일으켜야 한다.

코로나 사태를 비롯한 기후 변화가 가져올 다른 모든 재앙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하듯이, 계몽주의자들에게 불가능한 일이 그리스도인에게는 가능하다. 도덕으로 불가능한 일이 신앙으로 가능하듯이, 인간의 연대로 불가능한 일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는 가능하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오직 이것만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묵시록적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래서 2021년을 맞아 내걸고 싶은 구호가 있다. ‘우리가 홍수이고, 우리가 방주다’이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그랬듯이, 홍수가 일어난 원인도 우리에게 있고, 방주를 지을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의 크기와 구조, 그리고 제작법을 알려주셨지만, 방주를 짓는 일은 노아에게 맡겼다. 그렇다! 우리가 방주를 지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영위해온 탐욕적 생활방식과 착취적 경제 체제를 세계적으로, 그리고 항구적으로 바꾸어야 가능한 일이다. 에디오피아인의 검은 피부나 표범의 반점처럼 지워지지 않는 탐욕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할 수 있다/ 한다/ 해야만 한다. 일찍이 계몽주의의 선구인 임마누엘 칸트(I. Kant)는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 하기 때문에”라는 엄중한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가올 어떤 재난 앞에서라도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되새기면서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라고 당당히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각종 재난에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일, 자원의 생산과 그것을 공유하는 일을 부단히 실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탐욕적인 생활 방식과 착취적 경제 체제를 세계적으로, 항구적으로 바꾸는 일을 마땅히 감행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우리가 홍수이고, 우리가 방주이기 때문이다.

▲김용규 작가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투 DB
▲김용규 작가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투 DB

김용규 작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몰두했고, 튀빙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위르겐 몰트만과 에버하르트 융엘의 강의를 들었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깊이 있는 성찰, 생동감 있는 일상적 문체로 다양한 대중 철학서와 인문 교양서를 집필해 왔다.

대표작으로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와 기독 인문학 입문서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이상 IVP)>, 십계명을 다룬 <데칼로그(포이에마)>,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마지막 질문 에 답하는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휴머니스트)>,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 등 인류 문명을 만든 5가지 생각의 도구를 소개하는 <생각의 시대(김영사)>,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 도구를 알려주는 <설득의 논리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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