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주의 비판] 한국 신학계는 패륜적 성혁명을 막아낼 준비가 되었는가? (5)
서구 교회, 한국 기독교 성혁명 방어 위해 중보기도
한국교회가 무너진 서구 교회 회복시켜줄 것 요청
일단 법제화되면 엎질러진 물, 지금 고군분투할 때
교회는 세상의 심장, 한국교회 살아야 사회도 살아
4. 젠더주의의 성혁명에 봉착한 21세기 한국 기독교의 책임적 과제
4.1 건강한 가정공동체 구축과 건전한 세대 전승의 당위성
젠더주의의 성혁명이 전통적 결혼 및 가족제도, 특히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성한 결합인 일부일처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필자가 건강한 가정공동체 구축과 세대 전승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인간 자신을 지키는 일,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와 문명 자체를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오랜 연구를 통해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가정은 단순히 자연적·사회적 구성단위가 아니라, 남녀 간의 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끊으려야 끊을 수 없게 이어주는 생명줄, 인류가 후손에게 대대로 전수하고 길이 보존해야 할 인류의 보고(寶庫)이다.
이러한 가정은 서로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결실인 자녀를 낳기 원하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일부일처제에 기초해야 견고하고 올바르게 세워질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이 안에서 인간의 성(性)이 가장 거룩해지고 보호받고 축복받을 수 있음은 물론 다음세대가 가장 잘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는 갈등이 적은 결혼생활을 하는 생물학적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가장 잘 성장함으로써, 건강하고 안정된 가정은 건전한 사회인이자 신실한 신앙인을 배출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가정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삶의 영역은 황폐해지고, 사회와 국가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건강한 가족공동체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넘어 사회와 국가공동체의 안녕과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건강한 가정을 구축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젠더주의가 감행하는 패륜적 성혁명의 거센 파고 앞에서 가정이 해체되고 사람들의 심령이 피폐해지는 위기상황에 봉착하여, 21세기 한국 기독교는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구축함으로 건전한 세대를 이어가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별히 필자는 ‘존엄한 삶-존엄한 죽음-존엄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에 몰두하면서, 건강한 가정공동체 구축과 건전한 세대 전승의 당위성을 절감하고 있다.
한 개인에게 있어 건강한 가정적 유대관계는 삶의 질은 물론, 죽음의 질도 좌우하는 중요 조건, 곧 ‘삶의 존엄-죽음의 존엄-인간의 존엄’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라고 진단한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의 심각한 현안 중에서 긴급히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사회문제인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예방 기제도 건강한 가정 공동체이다.
실제로 가족의 끈끈한 정서적·사회적 지지는 자살 시도자의 행동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많은 연구자들은 보고한다. 그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는 가족과 갈등이 많은 반면,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사회적 지지를 받는 사람은 자살행동이 매우 낮아진다.
그러므로 가족의 따뜻한 후원과 진심어린 격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과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형제자매의 존재는 자살의 훌륭한 방어요인이 될 수 있다.
한편 가정공동체가 무너져서 가족의 애정어린 지원을 받지 못해 발생하는 고독사(孤獨死) 및 무연사(無緣死)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가정의 중요성을 확연히 인식할 수 있다.
곁에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살다가 혼자 맞이하는 죽음, 자살이나 지병 등으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후 시간이 한참 지나 부패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고독사’, 고독사를 넘어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상태에서 홀로 죽어 시신을 거두어줄 사람조차 없는 ‘무연사‘, 이것은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관계망이 해체된 사회에서 연(緣)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겪는 참담한 사회현상이다.
고독사가 전통적 가족관계의 붕괴로 말미암은 가정해체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강한 가족관계는 서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기 때문에 개개인과 사회구성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정서적 안전망이다.
건강한 가정 공동체 구축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할 21세기 한국 기독교의 사명을 위해서도 중차대한 일이다. 특히 “젊은이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격언이 있는데, 이것은 이 영적·사상적 전쟁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지를 결정하는 말이다.
전통(tradition)이란 단어가 ‘전수하다’는 의미의 라틴어 ‘트라데레(tradere)’에서 유래하듯이, 만일 어떤 세대가 그 조상들로부터 인간이 반드시 지녀야 할 미덕을 전수받지 못하면, 그들 역시 다음세대에 이를 전수해주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기독교적 가치체계가 한 세대를 거쳐 다음세대까지 전승되지 못하면, 다음세대는 이를 전수받지 못할 것이며 기독교 전통은 종언을 고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주일학교가 문을 닫고 다음 세대가 급감하는 상황 속에서 청소년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사명의 위중함은,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격언이 가혹한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다음 세대에 기독교적 가치체계를 전수하는 일은 이보다 더 위중한 일이 없을 만큼 우리 세대의 가장 중차대한 사명일 것이다. 사실상 기독교가 2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가정이 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정 건강한 가족이 가장 중요한 정서적 안전망이라면 가장 중요한 영적 안전망은 신앙일진대, 전방위적으로 도전받는 가정해체에 대항하여 21세기 한국 기독교는 건강한 가정공동체 구축과 건전한 세대 전승에 사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4.2 음란하고 패역한 성혁명에 맞서는 거룩하고 성결한 성혁명
인류 문명사를 연구하면서 패륜적 성혁명 세력들이 최소한 200년 동안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다.
첫 번째 성혁명이 일어났던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오늘날 두 번째 성혁명에 이르기까지, 서두에서 언급했던 많은 사상가와 활동가들이 검은 연기를 피우며 ‘그들의 때’를 기다려 왔음을 발견하였다.
마침내 두 번째 성혁명의 포문을 연 68혁명 당시 패륜적 성혁명 세력이 “너 자신을 억압적인 기독교의 성도덕으로부터 해방시켜라. 너의 성적 충동을 만족시켜라. 그래서 모든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라는 낙원을 창조하라”고 기독교를 집중 공략했을 때, 서구의 기독교 교회와 신도들은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방관하거나 침묵하였다.
이로 인해 기독교적 가치체계의 전복이 가속화됨으로써,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성도덕을 포기한 것이 오늘날 전 세계를 타락과 패륜으로 몰고 간 성혁명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패륜적 성혁명의 맹렬한 도전 앞에 선 21세기 한국 기독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특별히 한국 기독교가 음란하고 패륜적인 성혁명에 맞서 거룩하고 성결한 성혁명을 일으켜야 할 성서적 당위성은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구약성서에 명료하게 제시된 바와 같이, 이스라엘 근동에는 절제된 성규범이 존재하지 않아 이방 족속들은 동성애와 근친상간, 수간 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했지만, 이 패역한 이교도 세계에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는 이전엔 전례가 없는 거룩한 성혁명이었다(레 11:44-45).
즉 하나님은 동성애(homosex)를 통해 상호보완적 성(性)의 경계를 넘고, 근친상간(incest)을 통해 혈연 간의 경계를 넘고, 동물과의 성관계(zoophilia)를 통해 생물 종(種) 간의 경계를 넘는 것을 철저히 금하셨던 것이다(레 18-20장).
이번에 한국 기독교가 패륜적 성혁명이 도모하는 음란에 대항하고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일대 전쟁을 치루면서, 성결함을 회복하는 역사적 분수령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회복함으로 한국 기독교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변화됨으로써 개신교 전래 이래로 맞닥트린 절체절명의 위기상황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건전한 성윤리를 철폐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저항은 항상 기독교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모든 시대에 걸쳐 교회는 변함없는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밝히 드러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잘못된 시대사조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세상을 부패시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시대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이들로 말미암아 세상은 정결해지기 때문이다.
미국 보수 가톨릭 대변인 프랜시스 조지(F. E. George) 추기경은 죽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어록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나는 내가 침대에서 편안히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뒤를 잇는 사람은 감옥에서 죽게 될 것이고, 그의 뒤를 잇는 사람은 광장에서 순교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뒤를 잇는 사람은 무너진 사회의 남은 조각들을 모아 인류 역사에서 교회가 늘 그래왔듯이 서서히 문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을 돕게 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패륜적 성혁명 세력은 기독교를 철저하게 적으로 간주하는데, 특히 성혁명을 완수하려면 인간의 성을 혁명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 도덕적 실체를 끊임없이 부여하는 하부구조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존재하는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재 그리스도인들은 점차로 세상에서 가장 핍박받는 집단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되는데, 기독교의 시대적 과제를 직시하고 모든 고난과 핍박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평신도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헌신하고 목회자들이 사생결단으로 동역하는 반(反)동성애 사역에, 신학계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현실이 매우 유감스럽다.
평신도와 목회자는 신학자가 교리를 굳건히 세워 영적·사상적 전쟁을 견인해 주길 기대하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현재 주류 신학계는 동성애 옹호세력에 점령당한 교육현장에서 강자의 눈치를 보면서 포퓰리즘에 영합하거나, 신성모독 수준으로 음란하게 성경을 해석하면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퀴어신학에 예언자적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다수 국민 정서가 동성애를 반대하고, 무엇보다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귀중한 자산 때문에 서구교회와 달리 반드시 승리할 거라고 확신해 왔지만, 신학자들 때문에 전체 한국교회가 분열하고 힘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지금이라도 한국 신학계는 동성애와 퀴어신학에 올바른 비판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바로 이 때를 위해 신학자로 부르심을 받은” 시대적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학자는 결코 사사롭게 학문활동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과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 살아있는 학자의 양심으로 시대 문명을 올바른 길로 선도(先導)하라고 그 직임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2천 년 역사에서 신학자 중에 순교자가 거의 전무한 상황 속에서 신학자들은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는 사도 바울의 경고를 뼈아프게 되새김으로써,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예비 성직자들이 올바른 신학교육을 받음으로 인류문명사적 위기에 봉착한 이 시대를 하나님의 진리의 영으로 선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땅의 다음 세대에게 인류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숭고한 가치체계와 건전한 문화유산, 무엇보다도 신실한 신앙 전통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 기독교는 인류 문명이 올바른 정도(正道)를 걷고 하나님의 주권과 창조질서를 지켜내기 위해 대리전(代理戰)을 치루는 시대적·역사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주었던 서구 기독교 국가들은 젠더주의에 굴복함으로 인해 교회공동체들이 붕괴된 참상을 몸소 겪었다.
서구의 복음적 교회들은 한국 기독교가 성혁명을 과연 막아낼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하면서 중보기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들 교회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한국에 선교사들을 보내 복음을 전했지만, 이제는 역으로 한국 기독교가 무너진 서구 교회들을 회복시켜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가 무방비로 성혁명에 굴복당한 서구의 잘못된 전철을 지켜보면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 아니할 수 없다. 일단 법제화가 이루어지면 엎질러진 물이 되므로, 지금은 고군분투해야 할 때다.
교회는 세상의 심장이므로, 한국 기독교가 살아나야만 이 세상이 살아날 수 있다. 이러한 책임의식을 갖고 21세기 한국 기독교는 음란하고 패역한 성혁명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거룩하고 성결한 성혁명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곽혜원 박사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세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독일 튀빙엔(Tübingen) 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 theol.)를 받았다.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공동체 <21세기교회와신학포럼>를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Das Todesverständnis der koreanischen Kultur(한국문화의 죽음이해), 『현대세계의 위기와 하나님의 나라』, 『삼위일체론 전통과 실천적 삶』(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자살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저작), 『제2종교개혁이 필요한 한국교회』(공저), 『관계 속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공저), 『죽음 목회』(공저), 『과학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가』(공저), 『우리는 죽음을 왜 두려워하는가』(공저)가 있다.
역서로는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의 『절망의 끝에 숨어있는 새로운 시작』, 『세계 속에 있는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은 정의이다』, 『희망의 윤리』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