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칼빈주의 정치사상과 열매들 -흐룬 반 프린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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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칼럼] 개혁주의 전통에서 본 교회의 정치적 책임 (5)

▲김재성 박사(조직신학,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부총장).

▲김재성 박사(조직신학,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부총장).

4. 근대 칼빈주의 정치사상과 열매들

칼빈에서 시작하여 청교도들의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교회는 모든 정치적 자유 신장에 앞장 서 왔다. 칼빈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혁명이라는 대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지도하면서, 가장 앞장서서 정착시키는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칼빈주의 개혁신학은 네델란드 신칼빈주의 운동을 통해서 전무후무한 정치적 행동주의를 실현하게 된다.

1) 흐룬 반 프린스터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대중선동과 세속화된 혁명운동이 전개될 때에, 그 위험성에 맞서서 화란 사학자이자, 정치가 흐룬 반 프린스터 (William Groen Van Prinsterer, 1801-76)가 힘든 싸움을 평생 동안 지속했다. 그는 1829년부터 1833년까지 국왕 윌리엄 2세의 비서로 활동했었고, 점차 성장하여 반혁명당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1828년 제네바의 목회자이자, 역사신학자 멀 다빈예 (J. H. Merle d'Aubigne)가 법정 설교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주권 사상을 선포했는데, 단순히 개인의 구원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에 대해서도 역시 그리스도가 통치자라는 교훈을 선포할 때에 흐룬은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유럽 대륙에 제2의 대각성 운동이 전개되어질 무렵, 1831-32년에 강렬한 회심을 하게 된 흐룬은 칼빈주의 사상을 근대 정치에 적용하는 저술을 시작했다.

회심 후에, 흐룬은 초창기였던 1831년부터 간결한 주장들을 발전시켰는데, 가장 중요한 저서로 꼽히는 『불신앙과 혁명에 대한 강좌들』(1847)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집약시켰다. 이 글로 인해서, 흐룬은 “근대 화란 역사 연구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얻었는데, 칼빈의 정치적 이념들이 반영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1834년에는 『진리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했는데,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혁명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이 합당하다. 이 책은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이 나온 바로 그 다음 해에 나왔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흐룬의 주요 정치사상의 뿌리에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키 (Edmund Burke, 1729-1797)의 반혁명 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면서, 버키는 무제한적인 민주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에 충실하려는 기독교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자본주의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부패와 타락을 이겨낼 능력이 없음도 지적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형성된 흐룬의 주요 정치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정치적 계획들은 그 기초가 되는 궁극적 원리들과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치학에서도 중립적인 진리란 없다는 것을 흐룬은 확신했다. 그는 신학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시키지 않았다. 이점에 있어서 그의 기독교 사상은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구별이라는 견해와 다르다. 정치를 위한 실제적인 계획들과 정책들은 불가피하게 철학적이며 윤리적인 기초를 가져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불가지론이나 혹은 인간중심적인 접근을 한다면, 그 개념은 결코 광범위한 일반적인 관점을 제공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그 사람의 극히 개인주의적인 정치적 사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관여하게 된다면, 이러한 것을 불가피하게 인식하여야 하고, 합당하게 분석해야만 한다.

둘째, 흐룬은 서구문명에 있어서 종교개혁의 원리들과 혁명의 원리들은 각각 근본적으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프랑스 혁명(1789)의 원리는 인간중심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거부하는 사상이다. 혁명의 이념들은 서구 인본주의를 위하여 철학적 계획을 제공했고, 결국 정부통치에서도 드러났다. 혁명은 인간의 권리를 가장 먼저 선언했으며, 자유의 확대, 평등, 대중 주권, 사회계약, 공동의 동의에 의한 사회의 재구성을 이념으로 삼았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셋째, 오늘날의 문화전쟁처럼, 대립적이며 양립할 수 없는 이념들은 결국 전쟁을 하게 된다는 것이 흐룬의 인식이었다. 종교개혁의 원리들은 유럽을 미신숭배로부터 구출했다. 혁명은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인간주권을 주장하며, 이성으로 판단한다. 혁명에는 믿음의 통일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정치는 일관성을 갖고 있으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넷째, 혁명가들의 이념들 중에서 가장 위험스러운 표현들 중에 하나는 개인적인 권리의 개념이라고 흐룬은 비판했다. 근대사회에서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윤리를 구축하면서 전체주의, 통일적인 극단주의, 동성애자들의 옹호와 같은 권리주의를 생산해냈다. 모든 분야에서 개인의 권리와 특권을 확장시킨다는 주장으로 넘쳐나는 것에 대해서도 거짓된 이념이라고 비판했다.

흐룬이 가장 강조하고자 했던 정치사상은 모든 권력은 하나님의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제한적인 민주정치는 결코 성공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합당한 선출의 과정을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시민들의 동의를 얻은 법률을 제정해야 하고, 이것을 국왕이나 최고 통치자가 선포해야만 한다. 토마스 홉즈의 사회계약론을 비판하면서 정부가 제멋대로 힘을 사용하게 된다면, 괴물처럼 삼켜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다섯째, 신학은 바른 윤리의 정착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합당한 정치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흐룬은 지적했다. 윤리와 정치에 있어서 모든 분야의 기초를 수립할 때에 반드시 신학적 기초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인본주의는 뿌리도 없기에 열매도 없다. 신앙적인 신념이 있어야만 사회적인 계획과 정치적인 지침들을 수립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다면, 도덕의 기초도 없다.

흐룬은 종교개혁과 개혁주의 신학의 유산을 근거로 하여, 순수한 민주주의라는 것이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지속적으로 경고했다. 거듭나지 못한 인간들의 의지에 기초하는 민주주의만을 가지고는 결코 의를 구축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수결로 선과 좋은 것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결코 참된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에 동등한 인권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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