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면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필자는 바다를 볼 때마다 늘 신기한 생각이 있습니다. 육지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바다로 다 흘러들어갑니다. 만약 바다가 없다면 지구는 오염으로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다는 3~5% 정도의 소금이 물을 정화시켜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바람과 태풍을 통해 깊은 바닷속(파도)까지 산소를 공급해 줍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은 신비 그 차체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수많은 물질 중에 왜 우리를 소금으로 비유하셨을까? 오늘은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의 몸은 하루에 1g 이상 소금 섭취가 필수적입니다. 우리 몸에서 나트륨이 부족하면 신경 전달에 필요한 전위차가 발생하지 않아 몇 분에 사망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은 약 55~70%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수분 안에 소금이 없다면 사람은 사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소금은 인체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물질입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소금과 관련해 많은 설교들을 하셨습니다. 소금은 썩음을 방지, 변하지 않는 언약, 희생과 화목, 맛을 내는 삶 등 많은 해석이 있습니다. 필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100%의 신앙이라면 소금처럼 3%는 매우 적은 수치입니다. 세계 인구는 현재 78억(7,836,058,142)이 넘습니다. 그 인구 중에 기독교 인구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해 32%(약 24억)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나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왜 예수를 믿고 있는가? 분명한 기독교인의 세계관과 정체성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가정에서 사회(이웃)에서 교회에서 소금처럼 3%의 정도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고 강달희 목사님이 3,000여명 정도가 모인 권사집회(기도원)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 모인 3,000명중 10명만 천국에 갈 수 있다면 큰 복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 말 때문에 그 교회에서 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목회자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에 7만 명이 넘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 중에서 디모데전서 3장에서 말씀하는 목회자가 몇 명 정도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바울처럼(빌3 :17)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한 목사님이 “100명도 안 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100명이 무엇입니까? 10명만 있어도 한국교회가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필자가 공군비행단 장교헌신예배에 강사로 초대되었습니다. 비행사와 많은 장교들이 참석한 예배였습니다. 설교 도중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도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행단장이 “목사님, 제가 말을 해 보겠습니다.” 자리에 일어서서 큰 소리로 “그런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살 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비행단장님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분명히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천국은 분명히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천국의 비밀을 믿음으로 깨달은 자들은 신앙인의 열매(빛과 소금)가 분명히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론
필자는 32년 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해외 선교를 위해서 2년 전 조기 은퇴를 했습니다. 요즈음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에 지금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었을 것인데……. 많은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30년 전 은퇴를 앞둔 선배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 목사, 요즈음 설교 때문에 많이 힘들지? 한 20년쯤 목회를 하면 그 때 조금 알게 될 거야” 당시 그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습니다. 요즈음 그 목사님의 말씀이 가끔씩 생각이 납니다. 설교는 성경에 기록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나님말씀을 믿고, 순종한 후 삶에서 체험한 것을 전하는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본이란 단어가 지도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바울도 빌립보서 3:17; 살전 3:9; 딤전 1:16;에 본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제자 디모데에게 본으로 사역하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도(살전 1:6~7) 세상의 본이 되었습니다. 소금과 빛은 세상의 본이 되는 신앙입니다. 바다에 3~5%의 소금이 최적한 환경을 만들어 모든 생물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듯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정과 사회(이웃) 교회(공동체)에서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으로 변화된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