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2021년: 소의 해(辛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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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하얀 소의 해’, 신축년(辛丑年)이다. ⓒ픽사베이

▲2021년은 ‘하얀 소의 해’, 신축년(辛丑年)이다. ⓒ픽사베이

우리나라에서 글을 잘 쓰는 분 중에 양주동, 이규태, 이어령, 김대중(조선일보) 같은 분들이 생각난다. 박학다식에 글을 맛깔나게 쓰는 재주까지 갖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고금동서를 통틀어 무불통지한 분들이다.

오늘은 이규태 씨의 ‘소’에 관한 글을 소개하려 한다. 2021년이 하얀 소의 해(辛丑年)이기 때문이다. 소는 재산(財産)이라는 생각이 불교의 윤회 사상과 복합되어 남에게 빚을 갚지 않고 죽으면 후생에 소로 태어난다는 생각도 옛날 우리 한국인의 마음이었다.

한 핏줄의 가족을 식구(食口)라 하고, 식구와 구별하기 위해 생구(生口)란 말이 따로 있었다. 식구와 같이 한 핏줄은 아니지만, 한집에서 밥을 먹고 사는 종 즉 노비들을 그렇게 불렀다.

주의를 끄는 것은 생구 속에 사람이 아닌 소를 유일하게 끼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 똑같은 특혜를 받았던 존재가 바로 소였다.

농경사회에서 노역(勞役)을 대신 해주는 소는 그만큼 소중했고, 소중했기에 그만큼 대접을 해주었음직 하다. 그래서 노비를 사고파는 인신매매를 할 때 그 단가는 소 한 마리 값이 고대부터 근대까지 거의 상식이었다.

20대 전후의 건장한 사내종은 황소 한 마리 값이요, 건장한 여자종은 새끼를 잘 낳는 암소 한 마리 값으로 흥정되었다. 이처럼 소는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사람 값과 맞먹는 재산(財)이었다.

풍수지리에서도 와우형(臥牛形)을 재물을 몰고 온다고 믿었다. 소 꿈은 재수(財)가 좋다는 길몽으로 여겼다. 소를 재산으로 보는 생각이 불교의 윤회 사상과 연결돼, 빚을 갚지 않고 죽으면 다음 생애에서 소로 태어난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변(卞) 씨라는 사람의 아버지가 어찌나 인색하고 구두쇠였던지, 집을 짓게 해놓고는 집 지은 값을 주지 않았다.

삯을 달라고 하면 허리에 검은 전대(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서도 “죽어서 너희 집 송아지로 태어나면 될 것 아니냐?”면서 오히려 매질을 하여 내쫓곤 하였다.

변 씨 아버지가 죽던 날 빚 받을 사람네 집에 노란 송아지가 태어났는데, 송아지 허리에 전대 모양의 검은 띠가 둘려 있었다. 얼마나 인색했던지, 소로 태어나면서까지도 전대를 풀지 않았던 것이다.

빚 받을 사람이 송아지 앞에서 “변공(卞公), 왜 빚을 갚지 않고서 이 꼴이 되었소?” 하고 혀를 차자, 송아지는 앞발로 전대 무늬를 가리키면서 고개를 흔들곤 하였다. 소로 태어날망정 돈은 못 갚겠다는 집념의 결과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아들이 십만 금을 챙겨 빚을 갚으려 했으나 소 주인의 고집도 대단하여 그 거금을 받지 않고, 이 소를 고되게 혹사함으로써 앙갚음을 했다는 이야기다.

무서운 인간 집념의 극한을 빗대는 이야기지만, 소(牛)를 재물(財)로 보았던 한국인의 전통적 우관(牛視)을 실감 나게 드러낸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소 값이 떨어지면 앉아서 흉년을 맞는 천재(天災)라 하여 우제(牛祭)까지 지냈을 만큼 국가의 대사(大事)로 여겨왔던 것이다.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노부부가 40년 가까이 부려오던 소가 죽자 절에 가서 천도제를 지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노인은 청력이 약해도 워낭소리는 귀신같이 듣고 한쪽 다리가 불편해도 소 먹일 풀을 벨 때는 겁 없이 산을 오른다. 소는 늙었지만, 노인이 고삐만 잡으면 논밭을 갈고, 수레 가득 나뭇짐을 나르며 식구처럼 열심히 일한다.

소가 죽자 노부부가 산에 묻어주고 노인도 부인도 그 곁에 묻힌다. 이 세 무덤을 봉화 사람들은 ‘워낭소리 공원’이라 부른다.

2020년 여름 홍수 때 구례 농가 지붕 위로 피난한 소가 있었다. 그때 구조된 소가 다음날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아 ‘희망이’와 ‘소망이’라는 이름으로 자라고 있다.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젖소의 젖을 짜다가 우두(牛痘)에 걸린 적 있는 여인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종두법(種痘法)을 만들었다. 그래서 백신(Vaccine)은 ‘암소’를 일컫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래저래 우리 인간은 소에게 참 많은 신세를 짓고 있다.

성경(겔 1:10)에도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환상이 나오고, 구약의 많은 제사에 소는 양과 함께 대표적인 제물이었다. 소는 살아서 평생 일을 한 후, 죽어서도 고기, 가죽, 뼈, 뿔까지 100% 활용되는 진짜 생구(生口)인 것이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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