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단자들 3] 바울 3: 베드로와 아볼로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의 괴수’로 낙인찍혔던 바울
로마제국 황제 가이사에 직접 재판 받으려고 상소
신학적 사변과 철학으로 인기 끄는 아볼로 등 경계
바울 정립한 예수복음 교리, 정통신학의 지위 차지
5. 이단의 괴수
바울은 예수신앙 공동체에서 이단자로 정죄당할 뻔 했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때문이었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대안이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졌고 새 것이 나타났습니다(고후 5:17)”.
바울은 이방인 개종자가 유대인처럼 할례 받음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를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음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마음으로 믿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롬 10:9-10)”.
이방인이 예수를 믿어도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유대인 율법이 규정하는 식사 규례를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함은, 바울 사역의 기반을 흔드는 주장이었다. 바울은 유대인 율법주의에 항거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구원의 충분조건이라고 했다.
예수와 제자들은 모두 율법을 준수했다. 예루살렘 교회의 새 지도자 야고보는 개종한 유대인 기독인에게 할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견해 차이가 가져온 갈등 때문에 교회는 이방인 그룹과 유대인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이 상황에서 예루살렘은 교회의 대표성이 없는 바울을 거짓교사라고 선언할 수도 있었으며, 율법 폐기론 주창자로 여겨 이단자로 단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루살렘공의회 곧 사도들의 회의(c. 48)는 예수 신앙으로 개종한 유대인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데 동의했다(행 15:5-12).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시킨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의 충분조건이라는 데 동의했다. 유대인 개종자 기독인들에게 할례와 음식 관련 율법준수 의무가 없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개종한 유대인 기독인들에게 할례와 음식 관련 율법 준수가 필요한가를 논의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서 사도들 간에 얼굴이 붉어진 사건이 일어났다. 안디옥을 방문한 베드로가 그 교회의 대표자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기독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그때 야고보가 보낸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자,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베드로가 갑자기 자리를 떠났다. 전통적인 유대인 관행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금했다. 바울은 베드로의 행위에 면박을 주었다(갈 2:11). 바울은 베드로를 꾸짖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단자로 몰리지 않았다.
바울은 십여 년 동안 섬긴 안디옥교회를 떠나 세계 선교의 비전을 품고 독자적인 선교의 길에 들어섰다. 율법주의에 대한 바울의 투쟁은 문화적 견해 차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활이 달린 중대한 사안이었다.
바울은 평화공존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를 거부했다.
바울과 율법주의자들의 갈등은 정통과 이단의 신학충돌이었다. 원시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신앙 전통이 있었다. 당시 교회의 정통과 이단의 기준은 신약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신앙고백,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구원 사건으로 강조하는 정형화된 믿음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예수, 바로 그가 그리스도 곧 구원자이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주 예수의 은총으로 된다(고전 15:4; 행 15:11)”는 진리였다.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규범과 시금석은 예수중심의 구원사적 관점과 사도적 신앙고백이었다.
바울은 모든 율법을 거부했는가? 바울이 거절한 것은 유대인 율법 613개 조항들이었다. 이것들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유대인의 율법이었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롬 7:10).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율법, 계명이 삶의 지침이지만, “그리스도의 법(갈 6:2)”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의 괴수’로 낙인찍혔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기존 세력 집단의 불만이 커졌다. 유대인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 분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자, 유대인들이 작당하여 바울을 붙잡아 법정으로 끌고 갔다(행 18:12). 치안판사는 오히려 유대인들이 이 사건의 내부 갈등 요인이었음을 파악하고서 고소를 기각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성전으로 들어가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를 목격하고 군중을 선동하여 붙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12일 만에 고소당했다.
고소자들은 외쳤다. “동포들이여, 이 자는 누구에게나 우리 동포와 율법과 이 성전을 반대하라고 가르치는 자입니다(행 21: 28)”. 그러자 도성 전체가 소란스러워지고 예루살렘 성 안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보고를 받은 로마군 파견대장이 바울을 체포하고 쇠사슬로 묶어 병영으로 끌고 갔다. 군중은 난폭하게 굴었고, 바울을 “죽이라”고 소리쳤다. 바울은 유창한 그리스어로 자신의 출신지와 신분을 밝혔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유창한 히브리어―아람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정통파 유대인이며, 다소 출신의 로마시민이다. ‘예루살렘 대학원대학교’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수학했다. 엄격한 율법 공부를 했다. 나는 기독인들을 괴롭힌 박해자였다. 기독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어 죽게 했다.
예수도당 멤버들을 끌어다가 벌주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하늘에서 찬란한 빛 가운데 나타난 예수를 만났다.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또 다시 나타난 그리스도는 나를 이방인의 전도자로 보냈다(행 22장). 이 말을 들은 유대인 폭도들은 소란스레 떠들었지만, 파견대장은 바울이 로마제국의 시민임을 확인하고서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바울은 유대인 의회 앞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바리새파 사람이며, 이 재판을 받는 것은 바리새파 유대인처럼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의회는 부활을 믿는 바리새파와 믿지 않는 사두개파로 갈렸다. 분쟁으로 장내가 소란하자 율법학자 가말리엘이 바울을 두둔했다. “영적 존재가 나타나 바울로 하여금 저 말을 하게 했다면 어쩔 셈인가?”
그는 예수신앙 운동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았다면, 자연적으로 소멸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견대장은 폭도들을 따돌리려 바울을 병영으로 데리고 갔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을 찾아와 “용기를 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행 23:11)”고 했다.
이튿날 아침, 유대인 약 40명이 바울을 암살할 음모를 꾸몄다. 바울을 죽이지 않고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제사장 아나니야가 바울을 로마 총독에게 고소하려고 어느 법관을 데려와 고발하게 했다.
“이 사람은 몹쓸 전염병 같은 놈입니다.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입니다. 나사렛 도당의 괴수입니다(행 24:5)”. 유대인들은 ‘바울, 이단의 괴수’라는 법관의 논지와 논거를 지지하며 모두 사실이라고 외쳤다.
이단의 괴수 바울은 총독 벨릭스에게 자신의 무죄를 해명했다. 자신은 성전이나 도로에서 유대인과 논쟁을 벌인 일이 없다. 군중을 선동한 적도 없다. 고소를 당할 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고소는 근거가 없다고 소리쳤다.
바울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리스도교를 따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다(행 24:14)”고 했다. 부활을 믿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는 선한 양심을 간직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바울은 로마제국 황제 가이사에게 직접 재판을 받으려고 상소했다.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었다. 로마에서 몇 사람의 유대인들을 만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모세와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짚어가면서 예수를 설명했다(행 28:25-27).
셋집에서 만 2년 동안 기거하면서 내빈들과 이야기를 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주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자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고 칭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된다고 가르쳤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나라의 관문이라고 했다.
6. 바울과 아볼로
바울은 독불장군 유형의 사도였다. ‘십자가 형벌로 죽임을 당한 구원자’라는 역설을 앞세우는, 괴기한 종교 발명가로 인식되었다. 바울은 예수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고립을 자초했다. 율법, 할례, 식사 규례를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독불장군이라는 비난에 아무런 방어를 하지 않았다.
바울은 모든 것을 구원과 복음전도의 관점에서 보았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파송한 이방인의 사도이며, 예수의 열두 제자들과 동등한 신분임을 천명했다. 당당히 자기의 권위를 세우고 자신을 보호했다. 그는 하나님이 이기적인 거짓말쟁이에게 권능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울은 아볼로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 개종자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서 예수복음을 듣고 믿었다. 구변이 탁월하고 구약성경에 정통한 자였다. 그는 성경을 근거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명했다. 유대인들이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논박했다(행 18:24-28).
아볼로의 지적 능력이 바울을 능가했을 수 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와 함께 수학했으며, 철학과 율법을 상호 관련짓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필로의 성경해석 방법과 철학적 틀을 사용했고, 철학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동원하고 종합하여 당대 지성인들의 지적 갈망을 만족시켰다.
뛰어난 웅변 재능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을 주선하고 신앙생활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탁월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필로의 해석방법과 철학적 체계를 활용하여 바울이 제시한 복음 요소들을 의미 있게 종합하는 지적 성취를 보였다.
아볼로는 바울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지적 탁월성을 지녔다. 그러나 아볼로에 대한 정보를 접한 바울의 심기는 불편했다. 바울은 ‘나무에 달려 죽은 구원자’라는 역설적 진리를 소개하는 일에 전력한 탓인지 모르나, 아볼로가 지닌 철학적·지적 탁월성의 도움이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지적 사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손상시키거나 대체할까 봐 두려워했다.
아볼로 때문에 고린도인들이 자기에게 보여준 사랑과 존경심을 잃을까봐 두려워했다. 자기가 전도하여 회심한 자들과 자신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들을 장악하려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다.
바울은 신학적 사변성과 철학적 방법으로 인기를 끄는 아볼로와 소수의 지식 계층 사람들을 경계했다. 자신이 씨를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하면서, 각자가 수고한 만큼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고전 3:6, 8).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했다(고전 1:17-2:16, 2:1 이하).
바울은 고린도 교회 문제의 원인이 아볼로의 지혜의 말에 있음을 감지했다. 이 점은 이의제기가 불가능할 만큼 분명하다. 바울은 ‘신령한 자들’로 일컬어지는 사변적 신학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고전 2:6-16). 바울의 태도는 영지주의를 거부하는 초기 기독교의 전례가 된 것 같다.
나무 위에 달린 구원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바울에게는 사색적인 철학이나 사변적인 신학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울은 철학과 신학을 동경하는 지식인 기독인들에게 초라한 전도자로 비쳤을 수 있다.
지적 열망을 가진 기독인들이 아볼로 주변에 모여들었다. 바울은 질문을 던지고 청중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설교했다. 조롱하듯 날카로운 어조로 아볼로를 따르는 신령한 자들의 독선적인 자기만족 태도를 공격했다. 영적이고 지혜 있다고 하는 것들은 세상의 영이며, 썩어질 이 세대의 지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고전 2:6).
바울은 아볼로를 언급하면서, 잔인할 정도로 비아냥거리는 듯한 수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신령한 자들이 동료다운 자질을 갖추지 않았다고 넌지시 말했다. 모욕적인 어조로 신령한 자들의 주장을 세속적인 성취로 단정했다. 경쟁자를 대하는 바울의 태도에는 이처럼 인간적인 면모가 확연히 드러난다.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고차원적이고 조직적인 구조로 쓰여졌다. 이스라엘 역사와 율법과 제사법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예수를 새 언약의 중보자, 화목제물로 해석한다. “구변이 탁월하고 성경에 정통한 사람(행 18:24)”이 쓴 글이다. 히브리서는 아볼로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맺음말: 패러독스
설교자는 자기의 설교를 들어주는 청중과 전도를 받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개종자가 많을수록 용기와 자신감이 솟는다. 예수신앙 운동의 선두주자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설교를 한 오순절 하루 동안 약 3천 명이 예수를 믿었다. 유대교 배경을 가진 개종자들은 당일에 세례를 받았다. 베드로의 영적 권위는 높아졌고 도전할 사람이 없었다. 베드로의 설교문(행 2장)은 초기 예수신앙 운동이 남긴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초기 기독교가 남긴 또 다른 저명한 자료는 스데반의 설교문(행 7장)이다. 스데반은 율법학자들과 백성과 원로들에게 사로잡혀 의회에 끌려가 그들을 향하여 담대히 외쳤다. “형제 여러분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라는 말로 시작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등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켰다. “당신들은 바로 그분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행 7:52)”라고 지적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 청중이 달려들어 그를 죽였다. 베드로는 설교로 하루에 3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지만, 스데반은 탁월한 설교를 하고서도 죽임을 당했다.
오늘날 절대 다수의 기독인들은 베드로보다 스데반에게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있던 한 유대인 청년 때문이다. 이 젊은이는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일에 찬동했다. 살해자들의 옷과 소지품을 지켜주고 있었다.
나중에 예수를 믿는 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이곳저곳 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을 붙잡아 매질했다. 본명은 사울이고, 구브로에서 처음으로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행 13:9). 그가 다름 아닌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들을 저술한 신학자이며 전도자인 예수의 사도 바울이다.
바울이 정립한 예수복음 교리는 약 2천년 동안 정통 신학의 지위를 차지해 왔다. 초대교회의 정통과 이단 판별의 기준이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와 영감을 받고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라 자신이 배우고 통달한 성경 지식을 종합했다. 통합적인 눈으로 ‘나무 위에 달려 죽은 구원자 예수’라는 역설적 진리를 정립했다. 그는 예수 십자가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전파에 일생을 바쳤다.
바울 시대의 전도자들은 신학적 사고능력과 교회를 세우는 측면에서 미숙했다. 기껏 두세 주간 바울과 함께 있었다. 이미 유대 민족을 거쳐 진행되어 온 구원 역사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바울이 전도자들에게 준 지침은 단순했다. 첫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화해의 중보자 이야기를 전하라. 둘째,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예수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 또 전하라고 일러주라. 셋째, 개종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며 예수께서 보여준 자기희생을 본받게 하라. 믿는 자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넷째, 교회 회집 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 커다란 집을 가진 개종자를 만나도록 각별히 노력하라.
바울이 제자들에게 위로의 말로 당부했음직한 한 마디 말이 있다. “혹시라도 내가 다마스쿠스 길에서 그리스도의 특별계시를 받아 정식화한 역사적 기독교를 ‘바울교’라고 폄하하거나, 정통신앙인을 ‘근본주의자’라고 비난하거나, 정통신학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매우 크다.”
<위대한 이단자들: 종교개혁 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1장 3부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