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아름다운 퇴진, 성공 신화보다 큰 승리의 월계관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강원도 산간 지방엔 폭설이 내렸다. 남녘의 봄꽃 소식을 무색케 할 만큼 많은 양의 폭설이 내렸다.
봄의 전령이 다가올 때면 겨울은 언제나 시샘의 투쟁을 벌인다. 겨울의 성품은 참으로 고약하다. 그러나 봄은 고요하고 화평하며 어질고 고운 성품이다. 아름다운 자태를 오래도록 뽐내려고 성화를 부릴 만도 한데, 여름의 전령이 다가오면 대립하지 않고 종용히 물러난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기득권층들은 계절에 비유하자면 못된 겨울을 닮았다. 아집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고집불통들이 제 식구를 감싸며 득세하는 집단화에 몰입한다.
국회의 장관 인사청문회는 그저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장관 후보의 이력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에서 심각한 허물이 들춰진 인물도 서슴없이 등용하고 만다.
급기야 LH 공사 직원들의 천인공노할 부동산 투기 사건이 불거졌다. 이들의 범법을 조사하는 진두지휘자는 다름 아닌 LH 공사 전직 사장인 변창흠 국토부 현 장관이다.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가게의 피해를 더 큰 고양이에게 맡긴 격이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당정청(黨政靑) 지도층에서 연일 엄중하게 조사하라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변창흠의 퇴진이다.
치욕스러운 사과를 거듭하며 버티고 있는 대법원장에서부터 국토부 장관까지 낯두꺼운 인두겁을 벗어버리고, 퇴진의 미학을 깊이 숙지하는 결단 앞에 서기를 바란다.
역사적으로 돌아보아도 주관적 사고가 두드러지게 강한 국가가 대한민국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작은 반도의 땅은 언제나 사분오열된 과거를 지나왔다.
지금까지도 지구촌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현실은, 주관적 사고를 관철시키려는 웅지로 똘똘 뭉쳐진 민족의 성품을 대변하는 증거다. 물론 일제강정기 때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의 혈류가 흘렀던 강한 민족임도 틀림없다. 그만큼 주관적 사고가 강한 민족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퇴진했다. 문재인, 조국, 추미애, 박범계로 이어 달리며 내뱉는 가래침을 닦아낼 휴지가 다 떨어졌나 보다.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불화살을 맞으며 버티던 그의 퇴진은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여권으로부터 뭇매를 맞으며 퇴진한 현실은, 민의와 정의를 실현할 미래를 품고 절치부심한 퇴진일지라도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하다.
당장 자신의 손으로 구속시킨 제1야당에서 숫돌을 꺼내들고 칼을 갈자니, 박근혜 정권의 수하들과 기득권 세력들이 수탉의 벼슬을 곧추세우고 ‘꼬꼬댁’ 쪼아댈 터이고, 제3지대에서 칼날을 갈자니 정권을 창출할 기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지속해서 멍멍 젖어댈 여권의 삿대질을 막아낼 방패막이가 매우 약한 현실이다.
자칫 잘못 들어서면 노무현 정권 때 잠시 정가에 발을 디뎠다가 추잡한 정치판의 거센 입씨름에 소스라치게 놀라 퇴진한 고건 전 총리의 퇴진처럼 한낱 백일몽이 될 수 있다. 현 정권의 범법을 수사해 놓은 봇짐조차 풀어보지 못하고 귀거래사(歸去來辭) 될 수 있는 현실은 한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정치판의 변화무상한 미래다.
대한민국의 이념적·사상적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심각하다. 이승만 정권이 부정선거를 하며 버티다 하야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을 고쳐가며 버티다 총탄에 목숨까지 잃은, 불운의 정치사를 지나온 오명의 국가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자살했으며, 김대중·김영삼·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감옥과 연분을 맺은 범법자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의 임기도 이제 1년여 남짓 남았다. 아름다운 퇴진이 되기를 바란다. 퇴임 후 전직 대통령들이 밟은 암울한 범법자의 말로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불편한 것은 왜일까.
혹시 감옥행이 두려워 제3국으로 망명이라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고, 감옥과 관계없이 정치의 어른으로 국민의 시름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퇴진으로 기록될 최초의 전직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현 정권은 남은 임기 동안 건실하게 민의를 수렴하고, 과실(過失)을 인정하고, 실정(失政)을 철회하는 고개 숙임으로 아름다운 퇴진을 준비해야 한다.
아름다운 퇴진은 성공 신화보다 더 큰 승리의 월계관이다. 그 월계관의 수여 집행자는 국민이다.
하민국 목사
웨민총회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