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나 연인 사이라도, 상대 가족 흉은 보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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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96] ‘관계’를 외면하면 ‘관계’가 틀어진다

▲ⓒ김재욱 작가

▲ⓒ김재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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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원숭이, 판다, 바나나 중에서 두 개를 묶어 보라고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결과를 외국의 심리학자들은 정말 희한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어떻게 둘은 동물이고 하나는 식물인데, 동물들(원숭이+판다)끼리 안 묶고 동물과 식물(원숭이+바나나)끼리 묶느냐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원숭이가 바나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고, 한국 사람이 동·식물의 구분을 못해서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그게 아니라는 거다.

한국인들은 원숭이와 바나나가 서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고,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주고 싶어한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봐도 한국인들은 매번 관계성과 유대감에 유달리 집착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서양인들은 개체의 '속성'에 주목해 사물을 분리하고 분석해 공통된 규칙을 발견하려 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인들은 개체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전체를 보려 한다는 것이다.

‘관계’는 우리뿐 아니라 같은 동양인 중국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비즈니스에서도 ‘꽌시(guanxi)’ 문화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꽌시가 바로 관계(关系)이다. 이것은 주로 공식 라인이 아닌 비공식의 사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사업의 성공률을 높이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는 지나친 학연과 지연, 인맥을 따지는 부정적인 요소로도 작용한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정치사상이 극단적으로 양분화되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모든 문제를 이념의 잣대로 생각한다. 부부 간에도 생각이 다르고 부모 자식 사이에도 지지하는 세력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명절 때는 다툼이 일어나기 쉬워서 아예 정치 얘기를 안 꺼내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크리스천들도 전도하고 싶지만 섣불리 이야기를 못 꺼내거나 제사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민감한 이야기는 피하든지, 꼭 해야 할 때는 지혜롭게 해야 한다. 정치, 이념, 종교 등도 다 관계 속에서 공유하는 유대감을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인데, 사람뿐 아니라 특정한 매체와 사물까지도 넓은 의미에서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작정 반대하고 비판하면 불쾌감을 주게 된다.

카카오톡으로 어떤 정보를 공유하거나, 아무리 자기 마음대로 운영하는 SNS에서 자기 소신에 따라 말하는 것이라도, 특정인이나 대상을 강력하게 비난하면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함께 비난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분쟁이 되기 쉽다.

너무 극단적인 논리들은 공감을 표하거나 반대를 하기가 꺼려지고, 교류가 점점 어색해지기 마련이라 그런데, 내가 SNS를 하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포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SNS만큼 그물같은 관계와 관계로 이어진 곳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상대방이 믿는 종교나 지지하는 생각 등을 폭력적인 언어로 사정없이 까는지, 신기할 때가 많다.

그런 사람들은 유명 정치인이나 해당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라면, 얼마 못 가 도태되고 외톨이로 남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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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상대방과 관계된 대상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가 마음에 안 들어도, 함부로 그 교회에 나가지 마시라고 하거나 목회자 비판을 해선 안 된다.

반대하는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이 중요시하는 그 교회와 단절시키려는 시도는 부모님이 맺고 있는 관계를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설령 가족이 이단에 빠졌다 해도 무조건 비난하는 방법으로는 설득하기 어렵고,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 수 있다. 누구든지 그 사람과 연결된 사람, 일, 취미와 선호하는 것들을 평가할 때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런 특징을 가볍게 넘기면 인간관계에서 많은 실수를 하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내 친구를 욕하면 나를 욕하는 것으로 알고, 내 가족을 비난하는 것은 나를 비난하는 것으로 듣는다.

예로부터 부모들은 자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잘했다.

“너, 아무개랑 놀지 마라. 소문이 안 좋더라.”

그러면서 자기 자식이 엇나가면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친구가 나쁜 길로 이끌었는지 자기 자식이 더 나쁜 아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이전에 자식에게 그런 단정적인 평가와 지시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게 말했을 때 자녀가 자기 친구를 좋은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부모의 단정적인 평가가 부당하다고 여기게 되고, 나아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자신이 비난받았다고 여길 수 있다.

부부싸움이나 연인 간의 다툼도 이런 일에서 많이 발생한다. 시댁이나 처가에서 사돈을 무시하는 말 때문에 감정싸움이 시작되는 일도 많다.

부부 사이에도 상대방의 부모나 형제자매를 욕하면 듣기 좋아할 사람이 없다. 설령 지적받는 그런 문제점을 익히 알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내 가족은 욕을 해도 내가 하지, 남이 하는 꼴은 못 보는 법이다.

자녀나 형제자매가 연애를 할 때도, 함부로 사귀지 말라고 반대하거나 한두 가지 맘에 안 드는 일로 악평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연인과 계속 사귀든 결혼에 성공하든 그런 일은 도움이 안 된다.

이 모두가 가족에게 생긴 새로운 관계를 당사자가 어떻게 여기고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가족이니까’ 그런 말을 해도 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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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에도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과도하게 연결돼 있다. 친밀하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부작용도 많다. 양가 가족 때문에 이민을 가는 사람도 있다. 외국으로 이민 가서 사는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부모님을 자주 못 뵙는 불효를 하고 있지만, 아마 이민을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 부부가 이혼했거나 부모님과 인연을 끊어야 했을 겁니다.”

이 정도의 과도한 관계는 흔치 않겠지만, 아무튼 우리나라는 좋게 말해 가족끼리 서로 관심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간섭이 많다. 잘 되면 화목하고 서로 덜 외로운 인생의 동반자가 되지만, 맺고 끊기를 잘못하면 피곤한 일에 휩싸인다.

그러므로 가족들은 부부 사이의 관계가 가장 중요함을 깨닫고 지나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하며, 부부들은 주변 가족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부부나 연인 사이에도 상대방과 연결된 ‘관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항상 인식해야 존중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상대방의 가족과 친구 등 대부분의 관계는 나와 맺은 관계보다 더 오래된 관계이고, 얼마나 멀든 가깝든 각각의 의미가 있는 관계다.

그래서 좋은 배우자를 찾으려면 그 사람이 나의 기존 관계들을 어떻게 대하고 존중하는지 보면 된다. 그것이 ‘관계’를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별로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배우자나 연인의 관계인들을 일방적으로 끊도록 종용하거나 비난하고 단절시키려 하는데, 이런 것도 지양해야 할 일이다.

정말로 단절이 필요한 상황이라 해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억지로 하게 되면 역효과가 나고, 상대방의 마음에 오랜 상처를 남기기 쉽다.

“당신 집안은 왜 그래?”
“당신은 왜 그런 사람들이랑 어울려?”
“그 모임에는 나가지 말지?”
“무슨 저런 프로를 보고 있어?”
“그런 곳에는 왜 다녀?”

이런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연인이나 배우자와 연결된 것은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표현하면서 단절을 유도하거나 설득해야 한다.

개체의 속성에 주목하는 서양식보다는 전체를 보는 동양적 사고가 더 낫다고 본다. 좋든 싫든 우리나라의 문화는 동양적 문화다. 그래서 항상 전체를 봐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전체를 살펴 배려해야 한다. 그 사람이 아끼는 것을 함께 좋아해 주고, 그럴 수 없어도 존중하며 그의 모든 면을 최대한 살필 줄 알아야 서로 행복하고 나도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과 연결된 ‘관계’들을 가볍게 여기면, 나와의 관계도 틀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라.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www.woogy68.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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