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고마워라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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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상징하는 마크는 ‘십자가’이다. 기독교를 십자가의 종교라고 한다.

정치범들을 매달아 죽이는 사형틀이었다. 생각만 해도 섬뜩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교회당의 안팎에 설치돼 있고 많은 이들의 목걸이로도 애용되고 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직접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바쳐 복된 피(blood)를 흘려주셨기에, 복을 빌어주는 축복(God bless you!)이 되고 있다.

바울은 말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I am going to boast about nothing but the cross of our master, Jesus Christ. Because of the stifling atmosphere of pleasing others)”.

이 십자가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 1:18).

하나님이 세상의 자칭 유식하다고 뽐내는 사람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하다는 사람들의 총명도 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십자가의 진리가 완전한 총명(perfect sense)인가? 순전한 아픔(sheer sillness)인가? 아무리 심오한 진리라도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와 인식에 따라 전연 다르게 작용한다.

마치 똑같은 지갑이라도 돈을 넣으면 ‘돈지갑’이 되고, 담배를 넣으면 ‘담베쌈지’가 되는 것과 같다. 같은 건물이라도 그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 ‘예배당’이 되고, 술먹고 잡담하면 ‘술집’이 되듯이 말이다.

산 속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들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드는 것과 같다. 그림 그리는 재주를 갖고 명화(名畫)를 그려낼 수도 있고, 골방에 숨어 위조지폐를 그릴 수도 있다.

같은 칼이 의사의 손에 들리면, 생명을 살리는 수술도구가 되지만, 흉악범 손에 들리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십자가의 구원론이 사람에 따라, 이해와 해석과 믿음에 따라 이렇게 전연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희생(보혈의 대속)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도 허사가 된다. 십자가의 원리와 교리에 대한 시 몇 편을 함께 나누고 싶다.

①“주인없는 십자가/ 아무도 내 것이라, 하는 이 없고/ 다 네 것이라 하네// 죄인의 십자가/ 내 탓이요/ 말하는 이 없고/ 다 네 탓이라 하네// 외로운 십자가/ 함께 가리라/ 응하는 이 없고/ 다 네가 지라 하네// 고난의 십자가/ 둘러서서지켜/ 보는 이 많지만/ 지기는 싫다 하네// 주님의 십자가/의인은 질 수 없으니/ 죄 많은 너희가 지라 하네”(이해인/ 주인없는 십자가).

②“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십 일쯤, 욕망의 잔뿌리마저 자르고, 엉겅퀴 가시밭길, 땡볕 광야를 헤매거나, 살과 뼈가 엉겨붙은, 깡마른 영혼이 되어 이월의 싸늘한 바람처럼, 앙상한 가지에 목을 메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무 십자가 그 아스라한 높이에 손과 발은 두어뼘의 대못으로, 쾅쾅 두드려 박고, 창으로 옆구리마져 찔려, 한 서말쯤, 물과 피를 쏟아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죽고, 내 욕망의 그림자도 죽고, 가중한 본능의 흔적마다 부재한, 텅 빈 하늘에 오직 너만 있는 것이다/ 너만 한송이 붉은 장미가 되어 너만 눈부신 봄 햇살이 되어, 파아란 하늘에 가득한 것이다”(홍문표/ 사랑한다는 것은).

③“생살에 못을 박는다. 손바닥에 대못박고 발등에 대못 박는다/ 살아있는 목숨,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살을 찢고, 뼈를 뚫고, 쇠망치로 내려친다/ 햇살이 눈부신 대낮인데, 목련꽃 화사한 4월인데, 눈을 뜨고 내려친다. 고개들고 내려친다. 심장에 창을 꽂는다/ 로마 병정이 망치질을 한다. 유대인들이 망치질을 한다. 지금도 곳곳에서 망치질을 한다. 거짓이 망치질을 한다. 욕심이 망치질을 한다. 나의 어리석음이 망치질을 한다”(홍문표/ 생살에 못을 박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고. 오류도 없다. 그렇지만 최고 수준의 죄인으로 처벌받았다.

내가 머리(생각)로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의 머리에 가시관을 썼고, 내가 마음 속에 불안, 시기, 질투, 증오로 지은 과오를 씻어내기 위해 심장에 창이 꽂혀 물과 피를 쏟아냈고 내가 손과 발로 만지고 다니며 지은 죄를 용서받게 하려고 손발에 대못이 박혔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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