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재인 대통령의 후회와 탄식
인간, 속으로 우는 존재
“갈대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민족 대시인 신경림 선생의 초창기 시 가운데 한 구절이다. 요절한 크리스천 천재 과학자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를 염두에 둔 구절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인간은 나약한 존재며 누구든 가슴 속 한줌 아픔을 간직하고 속으로 울며 살아간다. 그 근본 원인의 내면에는 인간이 풀 수 없는 죄와 죽음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의 수감과 이 정권 조국·유재수 등의 무수한 파행과 문제도 죄의 문제요, 노회찬 전 의원이나 전 청와대 공무원, 전 총리의 최고 핵심 보좌관과 박원순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 등도 모두 죄와 죄책과 관련된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보좌에 오른 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수많은 후회와 탄식이 가슴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겉으로는 늘 자신감이 넘친다.
취임 4주년 기념사도 그랬다. 정말 본심도 그렇게 후회 없이 자신만만할까? 문 대통령은 똑똑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변호사도 되고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 아니던가?
사실 이 정부 들어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났었다면 나라가 뒤집어질 만한 사건들이 즐비했다. 정권을 살려준 것은 오직 코로나19였다. ‘코로나 정치’는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의 줄임말 -편집자 주)’은 소위 ‘정신승리’라는 증거다. 문 대통령도 속으로는 울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디모테오’라는 세례명을 가진, “창조의 주요 구속의 주”를 하나님으로 믿는 가톨릭 신자다. ‘디모테오’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는 의미다.
어떤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일까? 성경에 주목할 만한 정치적 두 인물이 있다. 바로 다윗과 솔로몬이다. 이들은 문 대통령처럼 최고 보좌에 오른 인물들이었다. 이들도 죄와 죽음의 문제를 누구보다 가슴에 안고 살아온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2,930명의 성경 실명 인물 중 다윗을 ‘밧세바의 일’ 말고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고, 솔로몬에게는 ‘인류 최고의 온갖 지혜’를 주었을까?
많은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목사로서 필자는 솔직함과 겸손함에 있었다고 본다. 이들은 죄 앞에 솔직했고 죽음 앞에 인간의 덧없고 헛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종필 전 총리가 정치는 허업(虛業)이라 했던가. 인생도 솔로몬의 표현처럼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된 일종의 허업이다.
호남 출신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대통령의 인사 방식을 보며, 일찌감치 지지를 철회했다고 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이 정부의 지독한 ‘내로남불’에 글을 쓸 가치조차 없어 책을 낼 의지가 꺾였다 했던가?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 했다. 필자는 이 정부가 세금을 자기 돈처럼 뿌리는 것에 대충격을 받았다.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했을까? 어찌 수천 원짜리 김밥조차 아끼고 아끼다 사먹는 서민들 앞에서, 이 정권 초창기 청와대는 1인당 10만원 가까운 김밥도시락을 단체로 시켜먹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천박성에 이 정권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였다.
자신들은 수만 원짜리 호텔 도시락을 먹으며, 공적 카드로 수천 원짜리 김밥 사먹었다고 명지대 강모 교수를 방송 관련 임원직에서 강제로 몰아낸 잔인함은 천박성에 치사함을 더한다.
문 대통령의 후회와 탄식은 무엇일까?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내로남불 류 자화자찬보다 솔직함을 보고 싶어한다. 필자는 그 무수한 후회와 탄식 가운데 결정적인 4가지 장면을 회상한다.
첫째, 대통령 취임사다.
온 국민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 바로 그 취임사 말이다. 대통령은 그냥도 아니고 “감히 약속 드린다” 했다. “2017년 5월 10일은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온갖 좋은 말은 다 가져다 붙인 번지르르한 취임사였다. 그 취임사대로만 했다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그런데 ‘국민통합(?)’, 100명이 넘는 전 정권 인사가 징역형 처벌을 받았고 그 와중에 자살한 사람이 여러 명이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는 종식하고 국정운영 동반자 야당과 대화 정례화(?)”, 국민과 야당은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유능한 인재 삼고초려(?), 대통령은 오직 내편이라는 이유로 부적합한 인물들을 30명 넘게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감행했다. 무수한 낙하산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인사는 만사가 아닌 망사였다.
이것이 불공정의 대명사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 동계올림픽 여자 하키 대표 탈락 사태, 피해호소인 사태, 울산 부정 선거 사태, 북한에 의한 비참한 해양 공무원의 참사, 개성남북연락처 건물 폭파 사태, LH 참사, 안타까운 여 중사의 호소와 은폐와 자살 등으로 이어졌다.
준비 마치면 곧 청와대 나온다던 광화문 대통령 시대는 또 어찌 되었나? “퇴근길이면 늘 주민들과 시장에서 만난다”던 약속은 어디 갔나? 광화문 광장에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나온다면 만나서 끝장 토론을 벌이겠다던 그 약속은 어찌되었나?
국민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약속은 그야말로 절정이다. 모든 좋은 말은 다 동원해 붙인 이 취임사가 문 대통령을 부끄럽게 한다. 또 하나, 쇼통의 대명사 ‘일자리 상황판’은 어디로 가 버렸나?
번지르르한 취임사를 써준 인물은 분명 얼굴이 화끈거릴 것이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문대통령 특징을 ‘선함’이라 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에게 감히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취임사로 제공한 역적과 간신과 무능력자들이 대통령 주위에 득시글거린다는 증거다.
이 같은 번지르르한 취임사로 대통령을 “거짓 취임사를 선포한 최초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만든 역적들을 처형해야 한다! 만일 국민이 이런 거창한 거짓말을 했다면 어찌되었겠는가!
둘째, 청와대 특별 감찰관 임명
라브리 공동체의 탁월한 기독학자 프랜시스 쉐퍼 박사는 민주 정치의 기본은 견제와 균형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 법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삼권분립이나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온갖 핑계를 대며 감찰관을 두지 않았다. 그런 허송세월을 하다 이미 집권 4년이 지나 버렸다. 때는 늦었다.
일찌감치 특별감찰관을 두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무수한 인사 참사도, 조국 가족의 진면목도, 이상직의 진면목도, 울산 부정선거 사건도, 유재수 사건도, 탈 원전, 태양광 난맥상도, 대통령 부부의 농업호소인 난맥상도, 청와대의 무수한 인물들이 기소되는 사건들도 모두 통제되거나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감찰관 임명이라는 기본을 거부하였을 때 나타난 참사였다. 그리고 이 많은 사건들은 여전히 대부분 현재 진행형이거나 수사 중인 사건들이 되어버렸으니, 대통령 마음이 온통 사건 무마에 매달려야 할 판이라 더욱 참 안타깝다.
변호사 출신 선한 대통령이 그런 판단을 했었다니. 대통령 뜻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대통령 주변에 역적과 간신과 무능력자들이 득시글거린다는 의미다. 두고두고 후회될 일이다.
지금이라도 감찰관은 법이니 임명해야 한다. 그런데 유행가 가사처럼 때는 늦었으니 어찌할까. 그 사이 국가 공금 수십억은 감찰관 없이 날아가 버렸다. 정말 되돌릴 수만 있다면, 공수처 집착보다 감찰관을 임명할 일이었다.
셋째, 이상한 특별 당부
일개 국민인 필자 기억으로는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다녀온 후 느닷없이 이상한 특별 당부를 한다. 세 가지 사건에 대해서였다. 페미니즘 대통령이어서였을까? 모두 성 문제와 관련된 음침한 사건들이었다. 왜 유난히 이들 사건에 대해 특별 당부를 했을까? 대통령의 당부는 무섭다.
사실 대통령의 당부는 지시보다 무서운 일이다. 지시는 대충 형식적으로 하면 되나, 당부는 감정이 개입된 명령이라 역적과 간신과 무능력자들의 행동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 내뱉은 지시 성 당부는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무슨 죄 지은 사람들이 그리 많은 지 소위 ‘버닝썬’ 사건을 물타기하려다 청와대 총경이 걸려들었으며, 김어준을 비롯한 여당 주변 수많은 인물들이 캐나다로 출국한 한 인물을 추앙(?)하다 농락당했고, 일반인으로 돌아간 김학의 전 법무차관을 강제 출국금지시키다 법무부와 검찰의 수많은 고급공무원들이 피의 선상에 올랐다.
모두 생뚱맞은 {대통령 당부’만 없었더라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안타까운 일들이었다. 해외 순방만 하던 대통령이 국내 일을 어떻게 소상히 알았겠는가. 느닷없이 ‘귀국 당부용’ A4용지를 대통령에게 제공한 역적과 간신과 무능력자가 주변에 득시글거린다는 의미다.
민주투사 상징 장기표 어른은 “참 뻔뻔스런 정부”라 했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 씨는 이들을 “민주 건달들”이라 했다. 정말 안타깝다.
넷째, 김정은·여정 남매 뒤통수를 “죽창가”로 후리친 토착왜구 프레임
김정은·여정 남매의 분노에 대못을 박는 일이 벌어져 버렸다. 바로 ‘토착왜구, 죽창가’ 프레임이다.
토착왜구 프레임은 사실 야당과 일본 정부를 겨냥한 정치 슬로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프레임은 이 정권에게 큰 부메랑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아니다. 일정 시대 국가의 녹을 먹었던 문재인, 유시민, 정동영, 신기남, 홍영표, 몇몇 전 현직 여성 국회의원의 조부, 부친으로 인해 이들 모두 토착왜구 프레임에 걸려들었다. 부메랑이다.
김정숙 여사는 일본 다도를 좋아하고, 문 대통령 딸은 정한론자가 세운 일본대학을 나왔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어떤 소설가는 일본 좋아하면 모두 토착왜구라 했으니, 이들이 바로 토착왜구다. 이것도 부메랑이다.
토착왜구 프레임은 위에서 소개한 정치인들 말고도 선량한 국민들 대부분, 일본 정부, 재일 한국인들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다. 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로 인해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를 상대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애를 먹고 있다. 이 말이 얼마나 모독을 포함한 말인지 일본 정부도 잘 알기 때문이다.
김정은·여정 남매에게 던져진 ‘토착왜구’ 프레임, 정말 큰일났다.
그런데 이것들보다도 정말 심각한 김정은 남매의 대분노를 유발할 큰 실수가 있었다. 바로 김정은·여정 남매에게 던져진 토착왜구 프레임이다!
설마 토착왜구 프레임이 김정은 남매에 적용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김정은·여정 남매의 모친이 재일교포 출신에 조부는 일제시대 일본군복 만들던 공장의 소위 ‘십장’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노이, USB 문제로도 분이 안 풀리는데 이 ‘토착왜구’ 프레임은 절대 풀 수 없는 인격 모독이 되어버렸다. 이 부메랑을 어떻게 풀 것인가? 감언이설의 변명도 이 프레임에는 통하지 않는다.
정말 이 정권 큰일났다. 토착왜구·죽창 프레임으로 토착왜구 김정은 남매를 후려쳐 버렸으니~. 토착왜구 프레임은 부메랑을 넘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다. 북한 주민 아닌 김정은 정권을 늘 더 보호하고 싶었던 이 정권, 정말 큰일났다.
김정은은 김일성의 유일한 사위 장성택을 고사포로 처형할 만큼 포악하기로 이름난 인물이다. 감히 누가 이 독재자 앞에서 토착왜구라 하겠는가!
누가 이 미숙한 토착왜구 프레임을 짜서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인가. 김원봉 애국자 타령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가? 김원봉은 김일성이 처형한 북한의 역적이요 6.25 전범인 대한민국의 역적이다.
김일성·김정일은 종교인 중심의 상해임시정부와 종교인(특별히 기독인) 중심의 3.1 운동을 철저히 폄훼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3.1 운동을 함께 기념하자 하였으니 김정은이 대진노한 것은 당연할 결과였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작전(?)이었을까? 함량 미달의 무능력자들이 주변에 득시글거린다는 얘기다. 바둑으로 말하면 속맥만을 골라 두는 외통수, 환격에 걸린 하수들이 많다는 얘기다. 하기야 중학생들도 아는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라 하는 무능력자들이 그득하였으니, 참으로 황당한 웃음이 나올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해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능숙한 아마추어가 너무 많았다. 그 언밸런스 때문에, 대통령 스스로 당초 기대했던 국정 성과에 못 미쳤다고 본다. 대통령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이다”고 했다.
충분히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부작용 많고 저품질의 백신 구입, 그것도 부족한 량, 초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공항 폐쇄 대응 실패,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온 날 짜파구리 파티 등이 모두 ‘능숙한 아마추어’ 덕분이었을 것이다.
최고 인재를 선발해도 모자랄 판에 어쩌면 그렇게도 이 정부는 D급, E급, F급 인재들이 그리 많은지. 이 부분에 대해 양 비서관은 “참모들이 가용 인적자원을 폭넓게 쓰도록 하지 못한 면에서도 협량함이 있었다고 본다.”고 했다.
미숙하고 부족한 우리 인간
맞는 말이다. 인간 지혜란 사실 미숙하고 보잘 것 없다. 지혜의 상징 솔로몬도 후회와 탄식을 하지 않았는가.
창조주 하나님이 인정한 다윗은 정부의 견제와 균형 임무(나단 선지자 존중 등)를 잘 알고, 코드 인사 하지 않기로도 유명한 지도자(이방 인물들을 주요 보직에 임명)였다. 그것이 아마 미숙한 우리 인간이 그나마 건강한 통치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결이었을 것이다. 능숙한 대통령이라고 다를 리 없다.
같은 민주 진영 지도자라도 김영삼 대통령은 5.18 민주화 운동을 공식화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 보복하지 않고 DJP연합을 이룬 유연한 지도자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정까지 구상했던 소통에 능한 대통령이었다.
만시지탄이긴 하나, 문 대통령은 삼권분립을 지키고 속히 청와대 감찰관부터 임명하여 견제와 균형의 민주의 기본 원리로 돌아가 마지막 임기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한다.
그리고 참된 신앙인이라면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또한 간신과 무능력자들과 기고만장한 자들은 멀리 하는 게 만고의 진리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잠 14:2-3)”.
조덕영 박사
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
전 김천대-안양대-평택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