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두 주간 동안, 예정되었던 가정 특강이 진행됐습니다.
저는 두 번 째 박성덕 소장님의 강의 중,
“사랑받으면 살아남는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살아도 살아도 힘든 것이 삶이고,
애쓰고 애써도 여전히 애처로운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살아가는 삶이라면, 좀 더 나은 삶,
보다 더 기쁜 삶, 보다 힘이 나는 행복한 삶은 있을 것입니다.
요즘 영상칼럼 방영하면서, 칼럼 마치고 맨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
“성도님들, 오늘도 힘 내서 살아갑시다”라는 멘트를 드리고는 합니다.
성도들의 삶도 그리 편편치만은 않다라는 느낌이 있어서입니다.
삶이 늘 가변적이고 휘청거리며, 땅도 나도 흔들리니까요.
사랑받으면 그 힘으로 살아남습니다.
“적어도 나를 사랑해주는 신뢰와 기대가 있는데, 살아야지” 하는 마음은, 포기를 능가하게 만듭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는 한, 나는 반드시 살아서 그를 기쁘게 해주어야지” 또한, 삶의 근거입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폴 발레리의 시 구절이 있습니다.
애절할 만큼 인생은,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고 또 발견하고 싶어합니다.
그만큼 삶이 힘겨우니까, 살아야할 어떤 이유라도 붙잡고 그의 삶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받으면 그 삶의 이유를 붙잡을 힘을 가지게 되고,
그 삶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논리를 제시받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 사랑에 목말라하고,
그 사랑을 찾고자 헤매며, 그 사랑에 목메이여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어도 하나님 은혜로, 우리의 인간의 부족한 사랑조차를 채운 백성이라면,
그래서 살아야할 분명한 이유를 확보했다면,
바람 불지 않아도 살아야할 이유와 논리 확보를 마쳤다면,
이제 우리는 나를 넘어서서,
그 사랑을 받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그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사랑받아서 살아남을 수 있고,
그 살아남은 자들이 사랑해서 또 다른 누군가를 살아남게 할 수 있음의 교합.
한 번 해보십시다.
“사랑받으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사랑해서 살아남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