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NEW 노아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 (26)
인류의 본향, 메소포타미아의 주인 앗수르
셈의 아들 앗수르의 땅, 이라크의 운명은?
기원전 14-7세기까지, 고대 근동의 최강자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창세기 10:22)”.
성경 속 에덴동산의 위치가 어디였는지, 아직 그 뚜렷한 결론은 없다. 창세기 대홍수 사건이 홍수 이전 모든 지구촌 모습을 매몰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의 시원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성경이든 세상 학문이든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의 시원이 메소포타미아였을 거라는 데는 대부분의 학자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를 뜻하는 말로, 헬라인들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 지역을 지칭한 단어였다. 오늘날에는 주로 이라크를 중심으로 시리아 북부를 포함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수메르, 바벨론, 앗수르와 페르시아,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지금은 주로 이라크의 영역이 됐다. 즉 인류 본향의 땅 메소포타미아는 수메르와 바벨론과 앗수르를 거쳐 지금은 이라크 땅이 되었다 할 수 있겠다.
성경 속 앗수르
성경에서 앗수르(Asshur)는 셈의 둘째 아들로 소개되고 있다(창 10:22; 대상 1:7). 영어의 앗시리아(Assyria)는 바로 히브리어 앗수르의 영역(英譯)이다.
앗수르도 엘람처럼 그 후손들의 이름을 성경에 남기지 않았다. 엘람과 마찬가지로 앗수르도 일찌감치 셈 공동체와 멀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앗수르의 후손들은 앗수르 제국을 통해 자신들이 살던 지역이 ‘앗수르의 땅’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성경은 함족 “구스의 아들 니므롯이 세상의 처음 영걸(英傑)이라 그가 시날 땅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하여 앗수르 방면으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고대 앗수르 땅은 단순한 앗수르 후손들이 독점한 땅이 아니었다. 이 지역에는 함족 니므롯과 그 추종자들이 몰려들어 일찌감치 함족의 바벨론 문화(니므롯 계열)와 셈족 문화(앗수르 계열)가 혼합된 형태를 띠게 되었다.
때로 고대 앗수르 제국의 초대 황제가 니므롯이었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여기에 이 지역에는 주전 3천여 년 전 비(非) 셈족 계열의 ‘수바르 족(Subarian)’과 셈족 계열로 여겨지는 ‘수메르 족(Sumerian)’도 있었다.
바벨론이 초기 주로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중하류에 위치한 반면, 앗수르는 티그리스 강 상류인 바벨론의 북서부에 자리를 잡는다. 훗날 이 두 제국은 결국 혼합 문화를 이루었고 마침내 오늘날 이라크라는 국가로 남게 되었다.
앗수르 제국의 흥망
남방의 바벨론이 바그다드와 페르시아 만 사이의 비옥한 평지를 차지한 반면, 앗수르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중상류를 거느리면서 남쪽으로는 바벨론을 맞대고 서쪽으로 시리아 사막과 북쪽과 동쪽으로 메대(마대)와 셈족 엘람의 땅인 페르시아를 접하고 있었다.
이 같은 지정학적 위치는 정치적 힘을 소유할 경우 큰 폭발력을 가지게 된다. 무역과 정보가 교류하는 사통팔달의 지정학적 장소에 위치한 앗수르는 일찍부터 앗술과 갈라(Calah)와 니느웨 지역(주전 2350년경 셈족 계열의 사르곤이 건설)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한 축을 이루었다.
앗수르 초기 왕국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의 고대 신화와 마찬가지로 그 연원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시 왕들은 유목민들의 족장이었다.
하지만 제31대 왕 일루-슈마(Ilu-shuma, 주전 1830년경) 때 앗수르는 이미 아나톨리아(터키 소아시아) 지방에 무역 식민지를 세워 양철과 직물을 수출하였고, 은(銀)을 수입하였다.
샴시-아다드(Shamshi-Adad, 주전 1813-1781)는 유프라테스 강 중류의 테르카(Terqa) 출신으로 마리(Mari)를 정복하고 앗술에 성전을 건축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이 때는 바벨론의 함무라비와 동시대였다. 함무라비 시대(주전 1800-1760) 잠시 위축되었던 앗수르는 고(古) 앗수르 시대의 막을 내리고(주전 약 1650년전) 다시 제국의 기틀을 닦기 시작한다.
1887년 이집트 텔 엘 아마르나(Tell el-Amarna)에서 발견된 아마르나 서신(Amarna Letters)에는 애굽 뿐 아니라 미타니, 헷족, 바벨론과 앗수르를 포함하는 당시 열강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 서신은 이집트 왕 아크나텐(Akknaten, 주전 1360년 경, 아멘호텝 4세)에게 원군을 요청하는 팔레스틴 왕의 편지였다.
함무라비 이후 수백 년 동안, 일부 위축된 시기는 있었더라도 앗수르 왕국은 여전히 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앗수르 왕은 신(新) 앗수르의 앗술 우발릿 1세(Ahur-Uballit 1, 주전 약 1364-1328)였다. 앗술 우발릿 1세는 헷 족속과 연합하여 미타니 왕국을 멸하고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배권을 확립한다.
이 때부터 고대 앗수르 제국의 전성시대가 도래한다. 앗수르는 바벨론 왕국보다 더 강해졌으며, 그 힘은 아라비아 해에서 그리스 에게 해까지 이르렀고, 남북으로는 아르메니아에서 애굽까지의 넓은 판도를 차지하였다.
기원전 14세기부터 7세기까지 약 700여 년간 앗수르 제국은 고대 근동 지방의 최강자로 군림하였다.
이후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가 갈대아인들에게 함락되어 제국의 해가 진 것은 주전 612년이었다. 그리고 하란(주전 610년)과 카르케미시(주전 605년)가 함락되면서 앗수르는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졌다.
앗수르 수도 니느웨는 오랫동안 그 위치가 불분명하였다. 하지만 근래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인해, 최근 우리 대한민국의 자이툰 부대가 주둔한 모술 인근에서 그 위치가 확인되었다.
조덕영 박사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