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비대면 예배의 문제점 (1) 코로나 시대의 교회론
비대면 영상예배 참석만으로, 신앙 필요조건 충족 여겨
약간의 의무사항 수행했다 여기는 성도, 신앙 괜찮은가
편리한 신앙생활, 오히려 비정상적 상황 합리화하려 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지금 우리는 공적인 예배가 멈춰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신앙적인 관점에 바라볼 때에는, 그야말로 대재앙이다. 모두들 바이러스 공포 때문에 비대면 예배로 전환하더니만, 이제는 형편이 나아졌는데도 아예 모이지 않는다. ‘나쁜 습관’에 중독되어 버렸다. 히브리서 저자가 그토록 철저히 경계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인들의 숨통을 조이는 총체적인 비상 상황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먼저 호흡곤란을 겪는다고 한다. 생명이 소통되지 못하도록, 숨통을 조이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숨통을 조이는 것도 거리두기라는 초강수 대책의 결과로 빚어지는 비대면이요, 접속 단절(언택트, untacted)의 시대적 현상들이다.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확산(the coronavirus pandemic)으로 인해, 전 세계 기독교와 한국교회는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가공할 유행병이 교회를 파괴하는 세력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인류는 지난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생명을 잃었지만, 그 기간에 교회도 역시 무참히 파괴되었다. 세계대전이 성행할 때, 자유주의 신학은 기존의 정통 신학을 파괴하였다. 전쟁에서의 희생자들 보다 훨씬 더 교묘하게 신실한 교회들을 파괴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교회의 건물들을 파괴하였다. 그런 세계대전 동안에 교회 예배 출석은 불가능했었다. 동시에 교회가 붕괴되어 예배가 활성화될 수 없는 동안에, 교회의 신학을 무너뜨리려는 혁명주의자들의 선전과 책동이 확산되었다. 기독교의 기본 신학이 침탈당했고, 자유주의 신학이 번성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일련의 시대상과 신학논쟁은 ‘넓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사실은 그 정반대로 ‘변질되는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프린스턴 신학교 워필드 박사는 핫지 박사와 함께 성경의 영감성을 변호하였고, 보스 박사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개정에 반대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교회가 각종 집회를 생락한 채 성도들이 직접 예배당에 나와서 참여하는 예배를 축소한다면, 결국 한국교회는 무너지고 만다. 그 사이 정통 신학과 성경적 신앙은 혼탁한 이론의 공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성경적인 신학이 무너지게 되면, 교회가 더 쉽게 세속화되고 만다.
교회가 가능한 한 모일 수 있는 대안들을 발표하고, 이를 속히 시행해야 한다. 주일 예배에 다 모일 수 없다면, 주중 예배를 확대해야 한다. 월요일이나 화요일에도 모일 수 있는 한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경청하고, 찬양과 경배에 참여해야 한다.
소규모 집회를 통해서라도, 새벽기도회처럼 어느 날이나 아침이나 오후에나, 저녁에나, 소규모 집회를 개설해야만 한다. 작은 숫자가 모일지라도, 경건의 훈련 과정을 지속적으로 가져야만 한다.
가공할 전염병의 위협으로 인해 교회의 모임이 지속적으로 위축되어 왔는데, 그냥 유튜브에서 은혜를 받으라고만 하고 방치한다면, 결국 교회의 본질이 손상을 입게 되어 역동적인 은혜를 나눌 수 없게 되고 만다.
교회는 주님에 의해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란 소명받은 사람들이 거룩한 교제를 위해 집회를 가지며,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은혜를 공급받는 예배 공동체이다. ‘에클레시아’는 분명히 회중들의 ‘모임’이나 ‘집회’를 가리킨다. 각 지역교회의 ‘모임’은 매우 중요한 교회의 본질에 해당한다(행 5:11, 11:26, 고전 11:18, 14:19, 28, 35, 롬 16:4, 고전 16:1, 갈 1:2, 살전 2:14 등).
교회가 ‘모임’을 소홀히 하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없다. 회심을 불러일으키는 성령의 교통하심과 성도의 교제가 상실된다. 교회는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이자, 예배와 기도라는 특수한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았다.
전통적인 교회론에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마 18:20)”고 하신 말씀을 매우 중요시했다.
‘에클레시아’라는 곳은 하나님께서는 택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향유하도록 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밖으로 불러내 긴밀한 교제로 연결하였다. 개인적으로 선택과 소명을 받아 믿게 되지만, 그들이 함께 연결되기 때문에 교회라고 부른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소명을 받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에게 한 지체로 접붙여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란 본질적으로 죄의 비참함 가운데서 은혜의 상태로 불러낸 사람들의 교제이다.
그러면 이제 집합금지 명령에 따라, 대면 예배가 금지된 비상상태 속에서 어떻게 교제하며 교통할 것인가? 대단히 비정상적이고, 당황스러운 조치들 속에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가공할 질병 앞에서,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고, 깨어지기 쉽다. 안타깝게도 성도들은 열심을 내기보다는 흩어지는 쪽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비록 교회에서 모임을 갖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은 죽음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참된 성도들, 즉 구원받은 성도들은 ‘집합금지 명령’에 의해서 흩어질지라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할 수 있다.
2020년 봄부터 거의 1년 반 동안 비정상적인 디지털 방송 예배가 마치 정상처럼 유지되고 있는데, 긴급한 비상조치를 마냥 따라갈 수만은 없다. 정부와 보건당국의 ‘집합금지’라는 방법에 대해, 교회가 무작정 두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 정부에서는 예배당 좌석에서 단지 10-20%만 출석하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사실상 모든 교회의 모든 집회가 다 제약을 받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을 크게 훼손당하는 비상사태이다. 교회는 모임을 통해 기본적인 관계를 지탱해 왔는데, 집회가 축소되면서 모든 목회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크게 손상시키고 말았다.
이제 대면 예배, 소규모 집합 예배, 성도들이 수시로 교회당에 출석하여 드리는 주중 예배, 매일 예배가 속히 활성화되어야 한다. 새벽에 드리는 소규모 기도회와 같이, 주중에 오전이나 오후에나, 매일 소수가 참여하는 주중 예배가 주일예배의 보충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대형교회 성도들은 전혀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인터넷 방송 예배나 유튜브 예배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초래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합금지 조치에 의한 ‘비대면 예배’는 엄청난 기독교 신앙의 황폐화가 초래되고 있다. 비성경적 개인주의가 득세하고 있고, 남녀간의 결혼으로 이뤄지는 가정보다 비성경적 ‘성혁명’을 주장하는 동성애가 판을 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당부하면서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 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바른 교훈을 거절하는 자”를 불법한 자들이라고 명쾌히 지적하였다(딤전 1:10).
교회는 공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체험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룩한 모임이 불가능해지면서, 성도들에게 제공되어야할 모든 은혜의 공급이 차단되어 버렸다. 기계적 편리함에 익숙해진 성도들은 게으름의 ‘명분’을 쌓아가고 있으며, 아예 교회를 떠나고 있다. 많은 교회가 성도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가 찰 노릇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은 게으른 ‘습관’에 중독된 기독교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집에서 편안하게 영상예배에 참석한 것만으로 신앙인의 최소한 필요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믿는다.
비대면 예배를 통해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경배와 찬양을 올릴 수 있을까? 약간의 의무사항을 이행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약간의 의무사항을 수행했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은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없다.
이처럼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으니, 비정상적 상황을 합리화하려는 논의들이 나타나고 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교회가 생겨났고, 유튜브 수입을 늘리려는 설교자들이 늘어났고, 가상 세계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 모두 다 편리한 신앙생활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계속>
김재성 박사
총신대학교 신학과(문학사)와 신학대학원, 합동신학대학원(M.Div, 목회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M.A, 문학석사),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신학석사과정), 미국 칼빈신학대학원(Th.M 신학석사),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Ph.D, 철학박사)을 나왔다.
국제신대 부총장, 합동신대 조직신학 교수, 합동신대 칼빈사상연구소장, 종교개혁500주년 공동대표,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한국개혁신학회 창립발기인 및 회장, 미국 Calvin Study Society Congress, International Calvin Congress, 세계복음연맹(WEA) Theological Commission 한국대표, 신학위원회 아시아대표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