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당스(Décadence)는 운동은 19세기 말(fin de siècle)에 프랑스에서 등장하여 서유럽과 미국으로 퍼진 예술 및 문학 운동이다. 당시 비판가들이 데카당스 예술가(The Decadent 데카당트)들에 대해, 과도하게 정교하다, 병적이다, 퇴폐적(데카당트)이다 라고 비판하였었다. 그러나 데캉당트들은 “데카당스”를 겸손하게 영광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말로는 퇴폐파(頹廢派))로 번역된다. 데카당스라는 개념에는 “심미적 쾌락주의”에 더하여, 19세기 세기말의 “문명의 몰락과 위기”라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심미적 쾌락주의”란 인생에 대한 철저히 수동적이고 관조적인 태도를 가지고 체험의 덧없음과 불확실성을 논하며 쾌락의 감각을 추구하는 사조이다. 자연적인 것을 거부하고, 인공적인 것을 찬미하고, 극히 세련된, 이상적으로 승화된, 인위적인 그리고 순간적인 쾌락적 감각의 세계를 추구하여 그리로 도피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통상적인 세계에 대한 반항의 의미가 있다.
“문명의 몰락과 위기”라는 개념은 18세기 이래 생물학적 진화론의 대두와 함께 나타난 사회의 진보(evolution)와 퇴보(devolution)라는 개념에 기초한다.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는 서구문명은 문화의 과잉과 사치와 성적 타락으로 몰락(degeneration 퇴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논쟁이 있었다. (의학적 degeneration의 예로서 노인치매가 있다. 또한 19세기 당시 정신분열병은 뇌의 degeneration으로 간주되어 조발성 치매라고 불리었다)
이러한 세기말의 세상의 타락 상태와 인공적이고 과잉된 문화에 대해 절망감과 냉소적 허무감을 느낀 엘리트들이 데카당트들이었다. 그들은 관능적인 자극이나 도취를 추구하는 퇴폐적인 사상을 추구하였다, 데카당트들은 인간은 창조성이 있다는데 동의하며, 논리성과 자연세계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믿었다. 그만큼 그들은 지적 회의주의에 빠졌다. 철저히 생물학적 자연 뿐 아니라 “자연적”인 표준적 도덕성과 “자연적”인 섹슈얼리티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자연이 아니라 정교한 인위적인 솜씨(artifice)를, 그리고 단순성보다 세련된(sophisticate) 것을 찬양하고 추구하였다. 그들은 이런 활동이 세기말의 이상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극도로 세련되었지만 결국 퇴폐로 살아진 헬레니즘, 로마제국 말기, 로코코 문화 등을 동경하였다. 데카당스는 계몽주의 방탕자들(the Enlightenment libertines), 특히 사드후작을, 그리고 낭만적 루소주의와 바이런의 염세적 낭만주의 등을 계승하였다. 대표적인 퇴폐파(頹廢派))에는 보들레르, 말라르메, 오스카 와일드, 등이 있다.
데카당트들은 절제되지 않은 자연적인 것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혐오를, 그러면서 나름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절망적인 노력을, 상징적으로 또는 미학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들의 작품들의 특징은 자기혐오와 세상에 대한 혐오(구역질), 전반적인 냉소, 도착성(변태)을 즐김, 조잡한 유머, 등이 특징적이다. 그들은 불륜은 물론, 타부시되던 호색, 가학-피학증, 동성애, 소아성애, 관음증, 페티시즘 같은 각종 도착증들, 그리고 괴이한 흡혈귀 등등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데까당트들은 예술은 철저히 자기 충족적 유희로서, 자기파괴의 괴팍한 쾌감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 영역 바깥 일체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였다. 자신들이 쾌락을 도발해 놓고는 그에 초연한 태도를 가졌다. 그들이 실제로 그런 생활을 했다기보다 주로 상상으로 글을 썼다고도 한다.
데카당트들은 일반 사회에서 반대를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 퇴폐라는 명칭으로 겸손을 표방했으나, 스스로 “창녀의 이미지”를 가진다고 하였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쾌락주의자이로서 죄의식과 열등감이 있었던 것이다. 반항과 죄의식은 사춘기적 심리의 전형이다.
일반적으로 세기말의 데카당은 1920년대의 일차 성혁명으로 계승되었다고 말해진다. 레닌은 자본주의가 쇠퇴하면서 퇴폐로 흐르고 그 결과는 결국 일차세계대전으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공산주의자들은 데카당스 사회가 바로 자신들이 혁명할 대상이라고 본다.
우리 크리스천은 자연이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보며, 인간의 노력과 삶을 결코 허무하게 또는 냉소적으로 보지 않는다. 자포자기적인 퇴폐의 성 행동을 미학적으로 보지 않으며, 반대한다.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