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누가 내 형제고 내 어미더냐: 기구한 운명의 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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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온종일 왁자지껄 시끄럽게 오가고, 어른들의 입씨름이 분주하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을 자꾸 껌벅여도 휑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어른들이 손에 쥐어주는 용돈이 주머니 가득하다. 세 살 위 언니와 함께 구멍가게를 드나들어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뭔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다. 슬픈 마음이 벅차오르는데 눈물을 흘릴 수 없다. 아버지의 죽음.

‘집을 팔아서 큰 사위에게 절반을 나눠주고 막내딸을 교육시키라’는 아버지의 유언은, 물질 욕심으로 가득 찬 오라비의 탐심 앞에 남가일몽(南柯一夢)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룬 지 불과 석 달 만에 부모 역할을 해야 할, 성품이 어진 큰 형부마저 고인이 되었다.

어린 4남매를 남겨두고 죽은 형부의 죽음으로, 막내딸을 돌봐주어야 할 어머니마저 외손자들을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세 살 위 언니는 지인의 소개로 양녀로 보내지고, 물욕(物慾)으로 하늘을 가린 오라비의 집에 남겨진 막내딸은 졸지에 고아보다 못한 처지가 되었다.

오라비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다. 유언대로 집을 팔기는커녕 집을 매매하려는 어머니에게 대들며 막내딸의 중학교 진학마저 불허했다.

언니들이 드나들며 조금씩 쥐어 준 용돈을 모아 초등학교 졸업 비용을 낸 막내딸은 오라비의 자식을 돌보는 식모 아닌 식모로 전락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총명한 막내딸의 학구열을 삭혀야 하는 비극의 서막이다. 동장(洞長)으로 재직한 아버지는, 문맹자가 많은 동네에서 지덕(知德)을 겸비한 어른으로 추앙받았다.

애경사를 알리는 전보(電報)를 해독해 주고, 배고픈 서러움을 안고 동네로 흘러들어온 이방인들을 환대해 주고 일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식을 4명이나 둔 오라비 밑에서 동장(洞長)의 막내딸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다는 것을 믿는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라비는 거짓말을 일삼았다. 막내동생이 공부하기 싫어서 중학교 진학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입소문을 내고 다녔다. 막내딸은 오라비의 헛소문에 대하여 반론하지 않았다. 기절하는 습관이 생기도록 입술을 다물었다.

교복을 입고 중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 온종일 집에 처박혀 오라비의 아이들을 돌봤다. 바닷가에서 참게를 잡고, 과자 공장, 빵 공장을 다녔다. 미용 기술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불러들인 둘째 언니마저 녹초가 되도록 잡일을 시켰다. 누가 내 형제고 자매인지, 타인보다 못한 핏줄들이다.

스무 살 되던 해, 평소 스토커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초등학교 동창인 남학생에게 납치되어 강간당하고 감금당한 채 임신을 했다. 남자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이를 악물고 원수와 같은 그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 아버지는 외박을 일삼았고, 심지어 미성년자를 강간하는 중범죄를 저질렀다. 아이를 안고 눈물로 용서의 합의를 이끌어냈고 아이 아버지는 교도소행을 면했다.

아이를 안고 가출했다. 아니, 드디어 짐승의 우리를 벗어났다. 지인들에게 돈을 꾸어 작은 양품점을 차렸다. 이른 새벽, 출근하는 여성들에게 스타킹만 팔아도 가게세가 나올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술집 종업원들을 상대하면서 시장 문턱의 작은 양품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어느 날부터 볼품없는 사내가 드나들며 친절을 베풀었다. 노총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의 친절이 반복되면서, 이런저런 대화 중에 아들이 있음을 고백했다. 그래도 좋다고 청혼을 했다.

그래, 머리라도 올려야지. 후회를 하더라도 정식으로 결혼을 해 보리라 마음을 다잡을 때, 평소 단골손님으로 옷을 자주 사 입던 술집 종업원이 다가와 귀엣소리를 한다, ‘저 아저씨 내 단골손님이야’라며 여러 차례 동침한 사이임을 토설했다. ‘여성 편력이 심한 사람이니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결혼하면 달라지겠지, 설마 하는 마음을 안고 볼품없는 노총각과 결혼식을 올렸다. 아들을 키워준다는 말에 내키지 않는 결혼을 강행했다. 유명 브랜드 치킨집을 운영하면서 제법 많은 돈을 모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동거했던 남자가 자신의 아들을 몰래 데리고 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일손을 놓고 아들을 찾아 헤맸다.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동거남은 아들을 내주기는커녕 언제든지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비아냥거렸다.

가장 규모가 큰 호프 체인점을 시내 복판에 개점하면서 둘째 아들을 출산했다. 결혼 전 단골손님이었던 술집 여종업원의 말대로 남편의 외도는 걷잡을 수 없는 병증으로 반복됐다.

심지어 영업장까지 내연녀를 끌어들이고 버젓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희희낙락했다. 결혼 전 첫 아들을 출산한 과거는 남편의 외도를 막아설 수 없는 상처로 따라다녔다. 대항을 하면 매를 맞았다.

매를 맞고 나면 과한 친절을 베풀었다. 무엇이든 해 달라는 것은 다 해 준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사들이고 침대 위에 먹을 음식을 챙겨주기까지 하는 이중적 태도를 반복하면서 세월은 흘렀다. 남편의 외도와 폭력과 폭언은 신경정신과 치료마저 요식 행위로 여겨지는 절망뿐이었다.

천만 번 갈등하고 고심한 이혼을 아들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고, 인고의 시간은 상처와 절망만 쌓여 갔다. 아들이 결혼하여 새 가정을 꾸리는 그날까지 참으리라 이를 악문 세월 동안,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도피처 삼아 못 다한 학업에 매진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오라비의 탐심으로 이어가지 못한 학업(검정고시)을 이어가면서 한국 전통 무용과 법원 전문 경매인 교육을 병행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남편과의 격간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의 골만 점점 깊어져갔다. 사고의 격간, 가치관의 격간, 문화 척도의 격간, 소통할 수 없는 언어의 격간, 배움을 거듭할수록 남편과의 격간은 헤어나올 수 없는 늪처럼 넓게 펼쳐졌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던가. 아들이 결혼을 하면서 마침내 삼십여 년을 분방(分房)하면서 지탱해 온 명목상 부부라는 공문서에 종지부(이혼)를 찍었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픔의 세월이다. 몇 날이고 외도를 즐기고 집에 들어선 남편은, 너무 한다는 핀잔을 견디지 못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으며 목을 졸라 기절을 시켰다. 기절한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문이 부셔져라 뛰쳐나간다.

모아 둔 수면제를 털어 넣었다. 여섯 날 동안 잠이 들었다. 기절을 시켜놓고 나간 남편이 사흘 만에 집에 돌아와 대학병원에 후송했다. 대학병원에서 사흘 만에 깨어났다.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흘 동안 애지중지하던 물품, 정성 들여 담근 약 술병을 모두 정리했다. 죽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마 10:21).

문병 온 형제들의 가식적인 안부가 역겹다.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목소리만 들린다. 우상을 숭배한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생들은 모두 입술에 재갈을 물고 다닌다. 마지막 때가 이 때가 아니면 어느 때이랴.

찬송이 들려온다. 어머니 손을 잡고 집 앞 교회를 다녔던 어린 시절의 가을바람, 동거남의 눈을 피해 아이의 손을 잡고 울부짖던 천막 기도원, 암 투병을 하면서 자신의 중병을 알리지 않고 소천(召天)한 친구이자 상담자였던 사모(師母)의 간증과 전도, 목사의 큐티, 아들의 목소리가 다가온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50)

웨민총회 신학장 하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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