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교회 논란 일었던 카타리파와 왈도파, 무엇이 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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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이단자들 14] 왈도파 2-2: 한 사람의 신학자

왈도파, 금식일과 축제일 등 로마 교회의 관습 거부
성인 숭배, 성인유품 숭배, 성상 숭배도 ‘비성경적’
오스카의 두란, 카타리파는 정죄하고 왈도파 옹호
왈도파, 두란 잃은 뒤 오해와 핍박, 이단 누명 쓰다

▲독일 보름스 루터 기념공원 속 피터 왈도의 동상.

▲독일 보름스 루터 기념공원 속 피터 왈도의 동상.

2. 왈도파 신앙

신학자 버나드 구이(Bernard Gui)가 취조하고 기록한 ‘이단심문 조서’는 리용의 빈자들―왈도파 무리의 신앙고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적용했다. 살인을 거부했다. 법적 살인이든 복지를 위한 살인이든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반대했다. 기존 교회의 금식일과 축제일 규례를 거부했다.

교부들의 가르침 일부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제에게 하는 고백성사는 옳지 않으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있다고 했다. 왈도파 신기독인들은 자파의 지도자 곧 ‘완전자’에게만 죄를 고백했다.

왈도파는 죽은 성인에게 기도하는 관습을 거부했다. 성인이 기적을 일으킨다고 함은 터무니없는 주장이고, 성인축일, 성모축일, 사도축일은 지킬 필요가 없다.

참된 회개와 죄 사함은 이 세상에서만 이루어진다. 죽으면 영혼이 육신에서 빠져나와 즉각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 연옥 교리는 옳지 않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왈도파는 금요일에 금식했다. 로마교회가 정한 금식일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았다. 사순절에 육고기를 먹지 않는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모범을 보이지 않았고, 금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다. 그러므로 그러한 관습은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했다.

왈도파는 마리아에게 올리는 기도문을 외우지 않는 반면, 주기도문을 자주 외웠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거나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다. 주기도문을 30-40차례 조용히 반복 암송했다.

이른 아침, 매일 점심식사 시간과 저녁식사 시간 전후, 취침 시간, 그리고 오전과 오후에 기도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기도하지 않았다. 마리아나 성자들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고 오로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직접 기도했다.

왈도파는 세 가지 교회계급이 있다고 보았다. 감독, 사제, 집사이다. 이 계급의 힘은 로마 교회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직임 자체에 기인한다고 여겼다. 제도화된 기존 교회의 질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들이 만들어냈다.

사제가 아니라도 성찬을 베풀 수 있다. 성인 숭배, 성인유품 숭배, 성상 숭배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왈도파 무리는 이러한 복음적 신앙 때문에 로마 교회와 중세 사회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다.

▲왈도파들이 비밀리에 예배 처소로 삼았던 천연 동굴 입구. ⓒ크투 DB

▲왈도파들이 비밀리에 예배 처소로 삼았던 천연 동굴 입구. ⓒ크투 DB

그 무렵, 이단 심문자들은 수상쩍은 사람에게 “사도신경을 외워 보라”고 했다. 외우지 못하면 왈도파 사람으로 간주했다. 왈도파가 사도신경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도신경을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것이 아니라 로마 교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왈도파 전도자들과 설교자들의 신앙고백은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고도의 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심문관이 “거룩한 보편 교회(Holy Catholic Church)를 믿는가?” 하고 물으면, 그들은 “예”라고 답했다.

그러나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거룩한 보편 교회(Holy Catholic Church of Rome)를 믿는가?”라고 물으면, 대답을 주저했다.

왈도파 교회는 분리주의 집단인가? 교계(敎階)를 본질로 보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시각과 기득권자의 관점으로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성경, 성경적 진리성, 프로테스탄트 관점으로 보면 왈도파 교회야말로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 신앙 공동체다. 교회의 본질에 해당하는 사도성은 감독좌가 아니라,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 진리, 교리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왈도파는 구성원을 ‘신자’와 ‘완전자’로 구분했다. 카타리파와 같은 사회적 계층 구조를 지니지는 않았다. 완전자는 집이나 재물을 소유하지 않았다. 결혼한 사람이 ‘완전자’가 될 경우는 아내를 떠나야 했다.

완전자가 어느 지역에 가면 그곳 왈도파 신자들은 사람들을 모아 참석시키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했다. 완전자들이 “온갖 좋은 것들을 먹고 마시면서” 설교 사역에 전념한다는 비난이 나돌기도 했다.

왈도파는 맹세를 거부했다. 교회는 그들을 “맹세하지 않는 죄인들”로 규정했다. 이단 여부를 가리는 종교재판 심문자는 어려움을 겪었다. 심문조서 끝부분은 사제가 그들을 심문할 때 겪는 어려움을 열거한다.

맹세로 시작하는 종교재판에서도 그들은 맹세를 거부했다. 강압적으로 맹세를 하라고 하면 “심문관이 맹세할 것을 명하므로 그 명령에 기꺼이 따르겠지만 자의로 맹세를 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강압에 따라 한 맹세는 무효이다. 그래서 심문관은 맹세하지 않는 자들을 심문하느라 곤혹을 치렀다. 당시의 맹세 거부는 종교적 의무 거부로 간주되었다. 교회는 맹세를 “사도들이 교훈하고 교회의 박사들과 거룩한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로마 교회의 법(decree)이 지시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왈도파 무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과 승천의 교리를 믿는다고 고백했다. 이단심문 조서는 그들이 “이단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고 마치 로마교회가 믿는 것을 다 믿는 것처럼 답하기 때문에” 이단자로 정죄하기가 아주 어려웠다고 기록한다.

“너는 무엇 때문에 종교재판대에 서게 되었는지 아는가?” 하고 물으면,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주인님, 나는 그 까닭을 당신으로부터 기꺼이 듣고 알고 싶습니다.”

▲알프스 산자락 해발 700미터에 있는, 왈도파 신학교 건물. ⓒ한평우 목사

▲알프스 산자락 해발 700미터에 있는, 왈도파 신학교 건물. ⓒ한평우 목사

3. 오스카의 두란

오스카의 두란(Durand de Osca)은 리옹의 빈자들이 펼친 왈도파 신앙운동을 옹호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왈도 경을 선택하여 당시 고위 성직자들의 탐욕, 성직매매, 교만, 허욕, 과식, 음란, 여러 가지 수치스런 행동과 잘못을 지적하는 설교를 하게 했다고 설파했다.

두란은 하나님이 왈도에게 사도적 임무를 맡기셨다고 했다. 왈도파의 최우선 과제는 이단 카타리파 반박이고, 그 다음은 왈도를 헐뜯는 로마교회 측 비판자들을 물리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두란은 왈도파 신앙 운동의 신학적 주지의 정당성을 논하면서, 그들의 신앙고백 요점들이 로마교회가 믿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삼위일체 하나님, 세례요한의 신적 소명, 예수의 신성과 인성, 하나의 교회, 일곱 가지 성례, 거룩에 이르는 다양한 길, 육식의 합법성, 카타리파가 허용한 고리대금업의 비합법성, 최후 심판, 영혼의 공로 심판, 죽은 자의 영혼이 타인의 육체로 옮겨갈 수 없음 등을 논의했다.

두란은 이단 카타리파의 뿌리가 영지주의, 마니교, 초기 이단,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공유한 플라톤주의 이원론임을 밝혀냈다.

반면 왈도파는 정통 신앙을 고백한다고 했다. 만물을 창조한 분이 한 분 하나님이며, 하나님을 배역한 천사는 영원히 저주를 받았고, 모세의 율법은 사탄의 작품이 아니라 신성한 하나님의 법이며, 부활의 날에 모든 사람들이 육체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두란은 왈도파 신앙 운동을 논리적으로 변증하고, 카타리파를 명확하게 비판했다. 이는 왈도파 무리가 성경과 교부들의 글과 교회법에 충실했음을 의미한다.

두란이 교회를 위협하는 카타리파를 비판했으므로, 기득권을 가진 교회가 환영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 않았다. 그 까닭은 주목할 만 하다. 그의 글은 난해한 문체, 복잡한 어법,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 문구로 지면을 채우는 오늘날 일련의 신학자들 글과 같았다.

두란의 글은 복잡한 구도를 가진 라틴어로 쓰였다. 프랑스의 대중은 라틴어를 읽지 못했고, 두란의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지식인들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글은 현학적이었으며, 세련되지 않았고, 어순이 뒤틀렸다. 외국어 특히 그리스어를 많이 사용했다.

왈도파의 변호인 두란은 1207년 어느 날 갑자기 로마 교회 편으로 돌아섰다. 왈도파 형제들을 로마 교회로 되돌아가도록 이끌었다. 두란은 교황 인노센트 3세의 조심스런 비호 아래 약 40년 동안 ‘가톨릭 빈자들’이라고 불리는 롬바르드파 무리를 권면하고 가르쳤다.

반(反)카타리파 사상을 담은 작품들을 저술하고, 비판적 논쟁에 투신했다. 두란이 저술한 책은 왈도파의 신앙과 로마 교회의 고백이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증명한다.

▲왈도파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비밀리에 예배 드렸던, 알프스 계곡의 굴.

▲왈도파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비밀리에 예배 드렸던, 알프스 계곡의 굴.

세월이 흐르면서, 왈도파 신앙 운동은 정치적으로 점차 카타리파와 동일시되었다. 왈도파 구성원들의 겉모습과 삶의 형태가 점차 카타리파가 추구하는 완전자(perfecti)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순결하고 거룩하며 정통적인 신앙을 가진 왈도파는 ‘신학자’ 두란을 잃은 뒤, 정치적으로 힘없는 소수 그룹이 흔히 겪는 오해와 핍박을 받았다. 이단이라는 누명을 피하지 못했다. 비평적 능력을 가진 신학자 한 사람이 다수의 전도자들, 구성원들보다 더 중요하고 절실할 때가 있다.

그 무렵 일각에서는 ‘용사들의 시대’에 걸맞게 교회를 비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 풍토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카타리파만이 아니라 대중도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혐오하고 질타했다.

‘파트리아(Patria)’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성직의 정치적 오리엔테이션과 성직자들의 부패가 증대하고 있음을 질타했다.

왈도파 신앙인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파트리아의 정신’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교회와 세속의 타협에 더욱 비판적이었다.

최덕성 지음, <위대한이단자들: 종교개혁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5장 1부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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