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10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된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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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어떤 욕구가 가장 강할까?
세상에서는 남자들이 충동을 이기지 못해 성폭력을 저지르는 일이 많으니, ‘성욕’이 가장 강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 여성들이 보는 남자는 성욕을 주체 못하는 대책 없는 동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기존 학설대로, 남자는 명예욕이 가장 강하다. 물론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기초적이고 육적인 욕구와 명예욕을 대비시키는 것도 그 종류 면에서 다른 것이긴 하다.
아무튼 모든 욕구를 통틀어서 생각해도 가장 센 것은 명예욕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쁜 쪽으로 드러나면 권력욕이 되어 자기 명예를 직함이나 벼슬이 지켜준다고 믿고 불나방처럼 달려들기도 하는데, 권력에 취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게 된다.
국회의원도 초선 때는 잘 모르지만 재선, 3선이 되면 더 하고 싶고 더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한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어려운데 한 번 해봤으면 됐지…. 이런 게 안 먹힌다.
사실 그것이 무엇이든 한 번만 가지면 원이 없겠다 해도, 막상 갖고 나면 더 갖고 싶은 법이다. 어떤 성취나 재물이나 사람이나 칭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명예욕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남자는 좀 더 그런 것 같다. 세상에서 권력과 재물과 모든 것을 더 많이 잡고 있는 것이 남자인데, 사회 구조나 힘의 문제뿐 아니라 바로 남자들의 명예에 대한 욕망과 욕구의 차이도 원인이 아닐까 싶다.
여자에게 명예욕이 없다는 게 아니다. 사람은 다 비슷할 테지만, 상대적으로 남자가 좀 더 강하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남자는 그렇게 지음 받았다. 땀을 흘려 가족을 부양하도록, 가장으로서 가정을 대표하도록, 그리고 무기를 들고 나가 소중한 것들을 지키도록 만들어졌다. 명예가 없다면, 희생이나 책임도 감당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는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 사랑하는 대상을 감동시키는 것이 자신이 감동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는 것이 더 기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중요한 명예이자 재산이다.
그런데 명예욕을 좀 더 원초적으로 바라보면, 무슨 자리를 차지하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그런 것을 넘어서, 말 그대로 명예…, 자기 이름, 자기 존재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최후까지 애쓰는 지극히 당연한 심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명예를 안 좋게 바라보면 ‘허세’인데, 혼자 죽을 때도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하고 죽는, 비속어로 ‘가오’와 같은 것이다.
일본어인 가오는 ‘얼굴’이라고 하는데, 어떤 영화의 대사였나,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게 있듯, 곧 죽어도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 즉 명예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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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성적으로 드러나는 욕구도 사실은 명예욕인 경우가 많다. 남자는 부부관계에서도 자신이 만족하는 것보다 만족시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늘 고심한다. 그것이 남자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정도면 상태(?)가 충분하다고 의사나 전문가가 말해줘도 굳이 무리한 방법을 쓰거나 무언가 섭취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스태미너 관련 제품은 끝없이 남자들을 유혹한다.
오죽하면 바퀴벌레가 많아 골칫거리일 때, ‘바퀴벌레가 정력에 좋다’고 하면 일주일에 박멸될 것이라는 농담들을 하겠는가. 쥐부터 황소개구리 등이 골치일 때도 같은 얘기를 했다.
최근에는 약이 좋아져서 덜하지만, 과거에는 불법시술도 꽤 있었다. 남자들끼리의 유치한 경쟁도 이런 풍토를 부추길 것이다.
하지만 정력의 문제는 오히려 다른 쪽에 있을 수 있다. 예전에 외딴 마을이 배경인 한 단막극 드라마에서, 남성 기능이 부실해 늘 아내에게 타박을 받던 남자가 그 마을에 파견 나온 의사를 알게 된다.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의사는 어느 날 그 남자가 넌지시 물어본 ‘정력에 좋은 특효약’이 있다면서 제대로 주사를 놔준다.
그러자 그의 위상이 바뀌었다. 늘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던 아내의 대우가 달라지고 남자는 의기양양…, 목에 깁스를 했다.
세월이 좀 지나 의사가 마을을 떠나는데, 이웃 사람이 그간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그 남자에게 놔준 약이 대체 뭐였냐고 말이다. “그거 그냥 식염수예요.”
알고 보니 그건 약이 아니라 일종의 맹물이었다. 플라시보 효과를 노린 주사가 적중했던 것이다. 남성 기능은 의외로 심리적인 부분이 많아서 지적을 받으면 더 안 되는 법인데, 약이 자신을 도울 거라는 심리적 뒷받침 덕분에 몸이 반응하고, 좋은 결과를 얻어 자존감을 되찾으면서 아내의 달라진 대우에 남자의 명예가 회복되니, 일종의 선순환이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명예와 자존감, 그리고 그에 관한 효능감이 이렇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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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고전 소설을 보면 상류 사회 남자들이 결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자기 가문을 모욕하거나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자와 둘 중 하나가 죽는 결투를 벌였다.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상대방에게 던지면 결투가 성사되고, 몇몇 입회인들 앞에서 오늘날 펜싱 경기를 하듯 혹은 서부영화의 총잡이들처럼 결투를 벌여, 자기 명예를 지켰다. 이긴 자는 이김으로써, 진 자는 죽음으로써 명예를 지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 목숨 걸고 덤비기는 하지만, ‘진짜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여자를 위해 희생할 수는 있지만 여자를 얻기 위해 생명을 버리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간혹 여자를 두고도 결투를 벌이지만, 그것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자기 명예를 위해서다.
왜냐하면 죽은 뒤에는 그 여자를 차지할 수 없으므로, 여자를 갖는 것이 목숨을 버리는 목적이 될 수 없다. 죽음으로 이름은 남길 수 있지만, 그 무엇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
괴테의 소설 속 베르테르는 짝사랑하던 로테가 약혼을 하고 끝내 가질 수 없게 되자 그녀에게 총을 빌려 자살하는데, 그 역시 가질 수 없음을 비관한 것이지, 가지기 위해 죽은 것이 아니다.
물론 오직 성욕 해소를 위해 죽자고 덤비는 자들도 있다. 평생 감방에서 썩을지도 모르는데 충동을 참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발각되지 않을 것을 전제로 벌이는 것이므로, 욕구가 목숨을 넘어선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위험성이 높을수록 범죄 욕구를 더 높인다고 한다.
남자는 명예에 살고 죽는다. 물론 때로는 한없이 비굴하고 깃털처럼 가볍게 자존심을 버리기도 하지만, 그조차 자기 가족이나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한 비굴함일 때가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아무도 못 봤으면 아무 일도 아닌 거다”라는 말은, 나 자신은 얼마든지 세상의 굴욕을 당할 수 있지만, 가족이 보는 데서는 그 사람에게 해선 안 될 일이 있다는 의미다.
즉 가족 앞에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직장이나 밖에서 당한 수모를 집까지 싸들고 가지 않는다.
남자가 이토록 명예에 목을 맨다는 사실은 여자들이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고 본다. 남자의 자존심을 짓밟으면서는, 그에게 어떤 행복도 줄 수 없고 무엇도 얻어낼 수 없다.
소중히 여기는 것을 무시하면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 굴욕감을 차곡차곡 쌓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할 수도 있다.
지키려는 대상은 비단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 가문이나 친구, 신앙, 나아가서 취미나 취향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남자가 아끼는 것을 쉽게 폄하해선 안 된다.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등을 저지르는 범죄자들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남자는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한없이 비굴하다가도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더는 지켜야 할 명예가 없는 나락에 떨어지면 흉기로 변할 수 있다.
많은 남녀 간 다툼과 폭력적 결말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이런 과정에서 벌어지므로, 특히 위기가 극대화된 순간에 경멸하거나 자극하지 말고 영리하게 벗어나야 한다.
예비 범죄자의 명예가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심리를 알고 이용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잃을 명예가 없는 남자는 위험하다. 여성들은 명예를 포기한 남자, 애초에 명예라는 걸 모르는 남자를 선택해선 안 된다. 파렴치범도 카메라 앞에서 자기 얼굴은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지킬 것이 없는 사람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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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자에게 식욕과 성욕만 채워주면 되지만, 남편은 여자에게 경호원, 비서, 흥신소, 해충처리반 등등 수십 가지 역할을 다 해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여성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비튼 것이라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로 비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사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남성을 단순한 존재로 비하한 측면이 있다.
남자에게는 식욕과 성욕만이 아닌 명예욕이 있다. 그것을 무시하고 단순한 욕망에 머무르는 존재로 아는 것은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소한 욕망들도 결국 다 명예와 연결돼 있음을 알 때 남자를 존중하게 되고, 그것을 계속 지키려는 남자는 품위와 절제로 대하면서 행복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한편 남자들은 참된 명예와 헛된 명예를 구분해야겠다. 명예와 허세를 혼동해선 안 된다. 허세는 거만과 교만에서 오지만 명예는 겸손으로부터 온다.
“멸망에 앞서 사람의 마음의 거만이 있고 명예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잠언 18:12)”.
“사람의 교만은 그를 낮추려니와 명예는 영이 겸손한 자를 들어 올리리라(잠언 29:23)”.
“겸손함과 주를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재물과 명예와 생명이 있느니라(잠언 22:4)”.
그러므로 무조건 자존심을 세우고 자기를 알아 달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된 명예를 추구할 때 존중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 명예는 스스로 지키는 거다. 명예욕도 결국은 욕심이다. 그래서 멋진 남자가 되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명예욕(名譽欲)’에서 ‘욕(欲)’을 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