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비대면 예배의 문제점 (5)
초대교회 종말론, ‘영원한 구원’ 소망 광범위하게 자리
믿음의 다짐, 격려와 위로, 교육과 양육, 온전케 하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믿음의 교훈 더 확신을 위해
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재림을 바라보면서, 긴장감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베드로후서 3:9-12)”.
초대교회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곧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임한다“는 사도 바울의 종말신앙은 그의 전체 서신 속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있는 중요한 교리였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9-23절에서 피조물의 질서가 회복되는 새로운 날에 대한 소망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절에서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하면서, 사도 바울은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할 수 없으리라“고 경고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종말론에는 영원한 구원이라는 소망이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때로는 핍박과 비난이 가해져도, 참음으로 기다리자는 격려를 서로 간에 나누고 있었다.
특히 바울 사도는 몸 안에 영혼이 깃들이듯이,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하시면서, 이 땅이 영원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주신다고 하였다. 주의 영은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록 인도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데살로니가후서 2:1-2)”.
초대교회 성도들의 예배와 모임은 종말신앙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심각한 배교의 상황에 직면하였다.
”불법의 사람“(살후 3:3)이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나타나서,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높이고, 숭배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성경 주석가들은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주후 40년에 자신의 얼굴을 황금 신상으로 만들어서 예루살렘 지성소에 세웠던 것을 지적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황제숭배가 절대 신앙으로 강요되면서, 교회는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 같이 모임을 유지하려고 격려했던 이유는 믿음의 다짐을 새롭게 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교육하고, 양육하고, 온전케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믿음에 관한 교훈들을 더욱 더 확신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히브리서 10장 25절에서, 성도들의 모임이 과연 어떠한 목적으로 유지되어 나갔던가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려는 마음으로 모임을 갖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승리하신 주님의 왕권을 초대 교회의 신앙내용으로 각인되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1장 20-23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고 가르쳤다.
비록 복음이 완전히 세상을 정복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낙관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리스도가 성도의 완전한 성화이자 구원받을 성도의 모델이라는 점을 확신하였다.
그들이 사회적 차별과 정치적 압박, 재물이 없어서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있더라도, 최후 심판에서 의로우신 재판장이 의인으로 인정할 것을 확신하면서 서로 격려하였고, 승리를 고대하였던 것이다.
종말론적 모임을 강조하는 히브리서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전반적인 앞 뒤 문맥을 살펴보자. 히브리서 10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과 속죄를 확고하게 믿어야 할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서 10장은 구약성경의 옛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으로 전환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의 모든 제사 규정들, 즉 제사장들의 제도, 회막, 동물제사 등 여러 요소들 가운데 상징적으로 담겨져 있던 제사장의 임무를 완전히 성취하신 것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 예비해 놓은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고난을 직면했을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켜나도록 격려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원을 아는 자들에게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영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지만,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는 행동을 택하는 자들도 있다.
이제 조금 더 본문을 좁혀서 한 구절에 집중해 보자. 히브리서 10장 19-25절은 히브리서의 두 부분을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주제들로 상호 결속된다. 그 앞에 나오는 모든 내용은 새 언약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생활을 격려한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히브리서 10장 25절은 믿음의 길에서 떠난 자들의 실상을 드러내어 심각한 경고를 하고 있는 부분이다.
물론 히브리서 10장 25절을 가지고, 오직 공적인 예배 모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단정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불치의 질병을 가진 환자나 장애인이나 혹은 핍박을 당하는 중에 있는 성도, 또는 전쟁의 위험 상황에 있다면, 집회에 나올 수 없다. 그러한 여러 예외적인 경우에는 성도가 개인적으로 경건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유행하는 위기의 시대에서도 특수한 상황들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특수한 형편들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 모두 다 교회로 모여야만 한다고 명령하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안식일 성수의 조항들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예외 조항들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내용들을 간추려 보자. 먼저, 이 본문에 명확하게 ‘교회’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신학자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 모이는 모임이 교회에서 소집되는 예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인데, 기본적으로 “모임”을 의미하며, 헬라 도시 국가에서 “백성들의 회합”을 뜻하는 “민회”라는 단어에서 기인했다.
더구나 초대교회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박해 속에서 비밀리에 집회를 가졌다. 공개적인 교회가 아니라 지하교회에 모여 예배와 성례, 기도와 교육, 권면과 격려, 구제와 자선 등을 함께 나눴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을 통해 유무상통하고 서로 영적인 교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므로, 우리가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나오는 모임을 단지 예배만을 위한 집회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증거하듯이, 초기 신앙공동체의 모임에서 사도들의 말씀과 기도, 찬양과 기원, 성례와 고백 등이 가장 중심된 일정이었기에, 이들의 모임은 당연히 교회의 활동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순리이다.
김재성 박사
총신대학교 신학과(문학사)와 신학대학원, 합동신학대학원(M.Div, 목회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M.A, 문학 석사),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신학석사 과정), 미국 칼빈신학대학원(Th.M 신학 석사),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Ph.D, 철학 박사)을 나왔다.
국제신대 부총장, 합동신대 조직신학 교수, 합동신대 칼빈사상연구소장, 종교개혁500주년 공동대표,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한국개혁신학회 창립발기인 및 회장, 미국 Calvin Study Society Congress, International Calvin Congress, 세계복음연맹(WEA) Theological Commission 한국대표, 신학위원회 아시아대표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