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루터의 ‘결혼 개혁’
루터의 시대, 당시 잘못된 가르침 따라 결혼 부정
우리의 시대, 시대 풍조 따라 젊은이들 결혼 기피
교회 내 청년들도 세상 가르침 더 중요하게 여겨
사회 독신과 만혼 조장하나, 성도들 결혼 중시를
루터와 개혁
얼마 전 종교개혁 기념일이 지났다. 코로나 등으로 인해 500주년을 맞았던 2017년에 비할 수 없이 초라한 종교개혁 기념일이었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선포했다. 상당수 교회는 로마서 1장 17절이나 갈라디아서 2장 16절을 본문으로 오직 믿음을 선포했다.
루터가 성경을 통해 회복시킨 교리인 이신칭의는 너무나 중요하다. 루터의 말대로, 이 교리는 교회를 서게도 하고 넘어지게도 하는 교리다. 루터의 말대로 천지와 만물이 다 파괴되더라도, 이 교리에 관한 것은 단 하나도 포기되거나 타협될 수 없다.
그런데 루터의 종교개혁은 단지 이신칭의만 아니었다. 그의 개혁은 성경 번역, 교리, 예배, 설교, 찬송, 직분, 직업, 국가관까지 폭넓었다. 그의 개혁은 신앙과 삶 전체의 개혁이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주로 이신칭의만 강조된다. 아쉬운 대목이다.
루터와 결혼 개혁
특히 그가 결혼에 있어서도 개혁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전해지지 않는 것은 굉장히 아쉽다.
루터 시대에는 결혼과 성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던 때다. 독신의 삶이 결혼한 사람의 삶보다 더 거룩하다고 생각하던 시대였다. 독신 서약을 선행으로 여기던 때였다. 나아가 사제나 수녀 등의 직분자는 결혼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풍토는 450여 년간 이어져 오고 있었다. 워낙 오랜 기간이다 보니, 이런 미신이 퍼져 있었다. ‘사제와 수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괴물이 태어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루터는 42세의 나이에, 16살 어린 수녀 출신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 1499-1552)와 결혼했다. 이는 엄청난 개혁이었다.
루터는 성경을 통해 결혼의 소중함을 알았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중요한 제도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직접 주선하셨으며, 그들의 결혼에 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부모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소명’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터는 결혼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사제와 수녀에게 결혼하지 않는 삶을 강요하는 당시의 가르침이 얼마나 비성경적인지를 지적했다. 그리고 몸소 결혼했다.
이렇게 루터에게는 결혼도 개혁의 대상이요 주제였다. 이후 종교개혁자들과 개혁신앙인들은 모두다 결혼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오늘날의 결혼
2021년 9월 27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충격적인 통계를 발표했다. 2020년 기준 30대 남자의 미혼율이 51%다. 한창 가정을 꾸리고 있어야 할 사람들 절반이 미혼 상태다. 20대 남성의 미혼율은 95%다. 20대 남성 중 결혼한 사람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30년 전에 30대였던 현재의 60대 남녀의 미혼율은 2%다. 1990년에 30대 여자의 미혼율은 4%였다. 지금과 크게 대조적이다.
슈카월드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슈카는 얼마 전 이 주제를 가지고 ‘결혼 안 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거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과 20년 만에 대격변이 일어난 사회”, 결혼이 사라지는 사회다. 이제 곧 이 사회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교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세속화
더 큰 문제는 교회조차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결혼 안하는 건 그렇다 치자. 문제는 이 시대의 풍토를 교회 안의 청년들이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혼을 가볍게 생각하는 풍조가 교회 안에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교회 안에 청년의 숫자가 줄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조차 세상 청년들을 따라 결혼을 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결혼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루터가 살던 시대는 성경보다 당시의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 결혼을 부정한 것으로 생각했다. 독신을 더 경건한 것으로 생각했다.
반면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성경보다 시대의 풍조를 따라 결혼을 기피한다. 결혼하지 않는 삶을 더 좋은 삶, 더 윤택한 삶으로 생각한다. 루터의 시대나 오늘의 시대나, 성경보다 시대의 가르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신칭의보다 한국교회에 필요한 복음, 결혼과 출산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루터의 개혁을 생각해야 한다. 루터의 개혁이 단지 이신칭의의 복음을 회복한 것만이 아니었고, 결혼의 개혁도 포함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혼이 곧 신앙이요, 개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종교개혁이 단지 교회의 개혁이 아니라 삶 전체의 개혁이었으며, 우리는 신앙과 삶 전체를 개혁했던 이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사회가 독신(瀆神)과 만혼(晩婚)을 조장하고 있지만, 성도는 이런 가치관을 따라갈 수 없다. 주님께서 주신 젊음의 때에 결혼하여, 정욕을 불법으로 해소하지 말고 언약의 자녀를 얻어 젊음의 힘이 있을 때에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신자는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결혼을 기피해서는 안 되며, 출산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결혼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제도요, 결혼과 출산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지속해 가시는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결혼할 수 없던 시대에 루터는 수녀 출신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 루터는 3남 3녀의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종교개혁자의 후손들에게 결혼은 신앙이요 개혁이다. 앞으로 한국교회를 살리는 복음은 이신칭의보다 결혼과 출산일지도 모른다.
※ 위 내용과 관련한 설교를 유튜브 (https://youtu.be/tuXKAGiyLTk)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 관련 다른 글 링크: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7334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나에게 거듭났냐고 묻는다면』(좋은씨앗)
『특강 예배모범』(흑곰북스)
『설교, 어떻게 들을 것인가?』(좋은씨앗)
외 다수 기독서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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