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인은 교회력에서 부활절과 성탄절을 2대 절기로 생각한다. 특히 태어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지만, 부활은 인류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다.
무덤이 없는 단 한 명의 인간(하나님+인간)이 예수님이시다. 이 크고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수많은 설교와 논단이 있겠지만, 오늘은 시를 통해 부활절을 축하하고 감사하고 기념하자.
①“부활하신 주님 만나. 기쁨이 넘치는 막달리 마리아처럼, 이 새벽, 하늘의 환희, 경험하게 하소서/ 흰옷 입은 천사들같이, 대속의 은혜로 표백된 흰옷을 차려입고, 찬송과 감사로, 부활하신 당신을 맞이하게 하시고/ 들려온 주님의 음성에, 가슴 뜨거워진 엠마오 도상의 제자처럼,성령의 감동과, 환한 믿음 이루게 하소서/ 배신의 죄 슬피 울던, 디베랴 바닷가의 베드로처럼, 오늘 당신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엎드리게 하시고/ 삼층천 올라 놀라운 세계를 경험한 바울사도같이, 천상의 종소리와 눈부신 세계 실감하게 하소서” (박수민/ 부활절 기도).
②“깊은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고, 봄바람, 봄햇살을 마시며, 새들과 함께 주님의 이름을 첫 노래로 봉헌하는 4월의 아침/ 이 아침, 저희는, 기쁨의 수액을 뿜어내며, 바삐 움직이는, 부활의 나무들이 됩니다/ 죽음의 길을 걷던 저희에게 생명의 길이 되어 오시는 주님, 오랜 시간 슬픔과 절망의 어둠 속에, 힘없이 누워있던 저희에게 생명의 아침으로 오시는 주님/
당신을 믿으면서도, 믿음이 흔들리고, 당신께 희망을 두면서도, 자주 용기를 잃고 초조하며, 불안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해 온 저희는/ 샘이 없는 사막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사소한 괴로움도 견뎌내지 못하고, 일상의 시간들을 무덤으로 만들며, 우울하게 산 날이 많았습니다. 선과 진리의 길에 충실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당신을 배반하고도 울 줄 몰랐던, 저희의 어리석음을 가엾이 보시고, 이제 더욱 새 힘을 주십시오/
미움의 어둠을 몰아낸 사랑의 마음, 교만의 어둠을 걷어낸 겸손한 마음에만, 부활의 기쁨과 평화가 스며들 수 있음을 오늘도 빛이 되어 말씀하시는 주님/ 주님이 살아오신 날, 어찌 혼자서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어찌 혼자서만, 주님을 뵈오러 가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뵙기 위해, 기쁨으로 달음질 치던 제자들처럼, 한시 바삐 뵙고 싶은 그리움으로 저희도 이웃과 함께, 아침의 언덕을 달려갑니다/ 죄의 어둠을 절절히 뉘우치며 눈물 흘리는 저희의 가슴속에, 눈부신 태양으로 떠오르십시오. 하나되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 되지 못해 몸살을 하는, 저희나라. 저희 겨레의 어둠에서도, 환희 빛나는 새 아침으로. 어서 새롭게 살아 오십시오” (이해인/ 부활절 아침에).
③“주님 묻힌 작고 차가운 돌 무덤에, 작은 불빛 고요히 밝히고, 못 박힌 손바닥에 입 맞추고, 못 박힌 발등에 입 맞추고, 가슴에 얼굴 묻고 울겝니다/ 죽음보다 더 슬픈 그리움,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이별, 죽음보다 더 아픈 외로움은, 주님 가슴에 묻어 놀겝니다/ 날 밝으면 동산 숲에서, 파란 들 풀 엮어 돌무덤에 깔아드리고, 예쁜 풀잎 엮어 차가운 몸 감싸드리고 왕께 드릴 향기로운 꽃 왕관을 만들 겝니다/
새의 울음 따라 소리 만들고, 꽃의 울음 따라 화관 만들고, 바람의 울음 따라 소리 만들고 구름의 울음 따라 칸타타를 만들 겝니다/ 아직 드려야 할 사랑이 많은데, 내 주님 어디 계신가요. 눈물로 불러도 대답 없으시니, 눈물이 앞을 가려 눈이 멀었습니다/ 울음이 울음으로 깊어지고, 그리움이 그리움으로 깊어지고, 사랑이 사랑으로 깊어질 때, 고요한 부르심이 영혼 깊은 곳으로 들어옵니다/
누이야 하시니. 고요한 부르심에 그리움이 녹아지고, 천진한 웃음에 눈물이 닦아집니다. 붙들지 말라시니 거룩한 이어라, 아버지께로 가신다니 하늘가는 길이어라/ 누이는 초청하신 갈릴리 성찬에 다가가, 거기서 주님과 마주 앉아 깨진 빵을 먹으리라. 보혈의 잔을 마시리라/
그리고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옛지기들 손짓하여 부르고, 옛지기 어깨동무하여 마하나임 춤추리라. 할렐루야 누이의 부활절 칸타타 아버지께로 가시는 길 찬송가로 드리리라.” (김영희/ 누이의 부활절 칸타타)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으로 끝나지 않음을 예수님이 부활로 보여주셨다. 우리 생명이 영원하지 않다면, 현재의 삶 자체도 무의미하다.
우리는 무덤에 안장된 위인이 아니라, 살아서 하늘에 계신 주님을 예배하고 있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