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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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내린다. 푸르른 솔잎에 눈꽃이 핀다. 나뭇가지마다 한 움큼씩 눈송이를 모은다. 간이역 크리스마스 트리 위로 함박눈이 지난다.
당장이라도 찬송가가 울려 퍼질 것 같은 해질녘의 고요가 낯설은 연말이다.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마치 전쟁의 포화를 피해 바깥출입을 금한 것처럼 쓸쓸하다.
모두 지쳤다. 두 번의 겨울 내내 재갈(마스크)을 입에 물고 지나온 뒤안길을 회고해 보면, 한 마디로 서글픈 비애의 시간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거듭된 변이, 부작용이 죽음을 부르는 백신 접종 강행, 효력 없는 백신에 의존하고 있는 지구촌의 망연자실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처, 자유를 잃어가고 있는 ‘백신패스’의 광범위한 적용.
청소년과 소아까지도 효력 미상의 백신을 강제하고 있는 현실은 어처구니없는 집단주의적 경거망동이다. 살맛나는 세상은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어린 시절, 함박눈이 내리면 마을 아이들과 청년들은 한 마음으로 모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을회관 마당은 언제나 아이들과 청소년들로 왁자지껄하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뛰놀던 옛 기억은 언제나 정겨움이다. 썰매를 만들고 굽이진 냇가의 얼음판을 지치면, 어느새 등짝에 땀이 송송 매치고 뜨거운 입김을 연신 내뿜는다.
또래 친구들과 어깨 씨름으로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다 보면, 두터운 외투는 물론 속옷까지 질펀하게 젖는다. 마을대장 격인 형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고구마 감자를 구워주면 꿀맛이다. 엉덩이를 흔들어대든지, 연예인 성대모사를 하든지, 지체 높은 동네 어른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든지, 장기자랑을 해야 얻어먹을 수 있는 꿀맛 간식이다.
그러나 이제 마을의 정겨움은 어디에도 없다. 우마차를 따라 이십 리 길을 넘던 장터에는 네온사인 간판이 휘황하고, 상권이 형성된 장마당 정중앙에는 행정관청이 들어서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고 있다.
가느다란 철사 올무로 토끼를 잡던 산등성이는 온데간데없고, 비둘기 집 같은 집단 아파트가 괴물처럼 노을을 가리고 서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전부터 세상은 악화일로의 길을 걷고 있던 것은 아닐까.
눈발이 점점 굵어진다. 눈꺼풀에 나앉는 한 가닥 눈송이는 무게로 감지한 것은 아니다. 분명한 실체가 있는 함박눈의 작은 흔적은 눈 깜박이는 율동에 사라진다.
매우 미약한 존재지만, 잠간 사이 눈꺼풀에 나앉은 눈송이의 실체를 찾아본다. 어디에도 없다. 분명히 시아에서 사라졌지만, 발밑 어딘가 쌓인 눈더미에 작은 기운으로 존재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진실한 가치들은 변함없이 존립하건만, 유독 보이는 세상의 변화만을 추구하고 있는 생명은 안타깝게도 고등(高等)의 지혜를 지녔다는 인간들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들은 인간에 의해 상실되어 가다, 종국에는 보이지 않는 가치의 충만함을 홀로 운행 섭리하시는 창조주에 의해 가중한 형벌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은 정연한 조화로움일 때,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평안하다. 보이는 존재의 긍정과 보이지 않는 존재의 부정이 충돌하다가 급기야 보이는 존재가 세상을 잠식하면서 살맛나는 세상은 사라졌다.
이제 세상은 보이는 존재의 가치관으로 충만하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비운의 세상이 되었다.
이 문구는 그레샴이 1558년 즉위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진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한 말은 ‘좋은 돈과 나쁜 돈은 같이 돌 수 없다(good and bad coin cannot circulate together)’에 더 가까운 말이라고 한다.
이 이론은 약 300년 뒤 이를 발굴한 스코틀랜드 경제학자 헨리 더닝 매클라우드(Henry Dunning Macleod, 1821-1902)에 의해 '그레샴의 법칙'으로 명명됐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좋은 돈 소식은 부재하고, 나쁜 돈 소식만 연일 핫한 뉴스다.
성남시 대장동 아파트 분양과 관계된 유력 용의자가 목숨을 끊으면서 부정부패의 머리일 수 있는 여당 대통령 후보의 부정부패와의 결탁의 개연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수차례 이력서를 허위 조작한 야당 대통령 유력 후보의 배우자를 국모(國母)로 선택해야 하는 국민들의 한숨은 누가 거둬줄 것인가.
문재인 정부 집권 내내 교도소에서 함박눈 소식을 들어야 하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출소 소식은 현실로 다가올까. 무심히 내리는 함박눈의 정취가 사뭇 애닳은 연말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박정희 대통령의 비운의 죽음,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억울한 수감과 가택 연금,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감옥살이, 노무현 대통령의 허망한 죽음,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수감생활의 뒤를 이어, 문재인 대통령 역시 청와대 후 교도소행을 이어갈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은 너무나 커다란 부분에서 정책 과오를 불러 일으켰다. 국민의 실생활의 모태가 되는 부동산 정책 실패, 국력을 지탱하는 핵심 축인 원자력 정책의 퇴보, 국민과의 소통 부재, 저급한 읍소를 야기 시킨 북한 정책, 임시직을 가장한 정규직 채용 비리, 정책 실패를 거듭한 인사 정책 실패, 정시 모집 한 가지로 충분한 대학입시 제도를 혼란스럽게 제도화하여 기득권층 자녀들에게 유리해진 입시 제도의 모순적 변질, 반복해서 울리는 세월호 참사 사건 규명의 허구, 선거공약과 다른 두 얼굴의 노동 정책, 잘못된 정책의 시정과 보완 및 철회할 수 있는 결단 부재 등 옹고집 정책으로 실정을 거듭한 문재인 집권 5년이다.
한 해가 저문다. 함박눈의 백색 순결이 어울리지 않는 흑암의 도시에 밤이 나앉는다. 부정부패와 중상모략, 권모술수와 부정의 담합, 기득권층들의 술책과 꼼수, 거짓과 허구, 위선과 불법, 가증스러운 모든 것들을 가려주는 잿빛 하늘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세상, 부요한 자는 더욱 부요해지고 가난한 자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세상,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세상, 위드 코로나를 빙자하여 선택의 자유를 규제하는 백신패스 남용.
백신패스는 결국 짐승의 표 666 베리칩을 인체에 삽입하기 위한 전초전이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는 희붐한 하늘은, 닭똥 같은 눈물인 양 하염없이 함박눈을 쏟아낸다.
하민국 목사
웨민총회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