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22년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창세기 35:2)”.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라고 하십니다. 형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특히 ‘벧엘’은 야곱에게는 뜻 깊은 장소였습니다.
벧엘은 형을 속인 야곱이 그의 낯을 피해 밧단아람으로 내려갈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나타내셔서 야곱을 안심시키시며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장소였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신명기 12:28)”.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은 축복을 받기 위한 중요한 통로요 조건이 됩니다. 이 말씀에서 주는 교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선과 의를 행하면 당대는 물론, 그 후손들까지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기 1:5)”.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다는 것은 1장 서두에서 이미 기록된, 큰 전제입니다. 이는 이어지는 본론 속 대화들, 곧 변론을 통해 발전되어 나갑니다. 특히 자녀들이 여호와께 죄를 범할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늘 자녀들을 위해 예배를 드렸던 가정의 모범 사례였습니다.
이제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코로나19와 오미크론의 해였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병마에 시달려 불안과 고통스러웠던 해였습니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답답하게 살아온 것이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2년의 세월은 일상들이 틀어지며 각 분야별로 많은 계획과 실천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조그마한 벌레로 인한 질병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대하게 느껴졌던 권력과 부귀영화가 초라하게 추락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의 본 모습이지만, 내려놓지 못하고 쟁취하려는 탐심 때문에 우리 가정과 이웃, 나라와 온 세상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임인년 새해부터는 지난 과거에 묻혀 살았던 사고방식과 우리의 행동들을 전환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 총력을 기울이는 기초 작업은 성도들의 가정이 먼저 변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먼저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먼저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충실히 드려야 하는 것은 물론, 부모들은 자녀들의 존경 대상이 되어야 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모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동은 버리고, 약속을 철저히 이행함은 물론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고 이웃을 위해 무얼 할 것인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기도하며 찬송하는 분위기로 가정을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가족 모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오히려 신앙 때문에 가족 간 다툼과 불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교회 봉사와 여러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부모의 자녀가 오히려 신앙생활을 멀리 하기도 합니다.
이는 뭔가 잘못된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그만큼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가족 간 다툼과 불화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게 아닙니까?
소위 전문가들은 행복한 가정을 위해 가족 간 이해와 배려를 말하기도 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분명 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해도 배려도 결국 자신을 중심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베푸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자신이라는 틀 안에 갇혀 상대를 위한다고 하기에, 더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탓하지 않는지….
그래서 행복한 하나님의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이해와 배려가 아닌, 양보와 포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와 배려가 자기중심적이라면, 양보와 포기는 자기중심성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양보와 포기는 누군가 불편해하고 손사래치기도 합니다. 양보와 포기는 손해와 희생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참고 희생하며 살았는데, 더는 그럴 수 없다고도 합니다. 손해 보고 희생하는 것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하지만 부모는 어린 자녀를 돌보면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양보하지만, 손해나 희생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곧 자녀들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사랑 앞에서는 손해도 희생도 문제 되지 않나 봅니다. 우리 가족이 사랑의 대상인가요, 아니면 나의 이익을 위해 경쟁해야하는 대상인가요?
앞서 가정은 하나님 중심적인, 하나님과 함께하는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 되시려면, 먼저 자기중심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자기를 비워내야만, 가족이든 다른 누군가든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꼭 양보와 포기를 하지 않더라도,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나의 뜻에 맞추려 한다면 그 가정은 올바른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지금 나라 안에서는 많은 가정들이 핵가족화되어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자녀들의 입맛에 맞는 교육이나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뭐라고 할까요? 성경대로 실천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 때문에 오늘날 가정들이 참으로 어려운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훈계와 사랑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하고 싶은대로 그저 방관만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교육으로 인해 겪는 지금의 사회는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기독교적 교육 방식이 계승되어야 하는데, 세상 논리에 함몰돼 하나님마저 버리는 오늘날 교육현장과 가정은 서글프기 짝이 없습니다.
가정이 살아야 이웃이 살고 나라가 강건해지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무너진 가정을 되살리지 않고서, 결단코 나라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2022년 새해부터는 먼저 교회가 앞장서 가정을 살리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가정과 이웃과 나라를 살리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