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돌아가야 할 존재
2021년 12월 21일 현재 세계 223개 국가에 코로나19가 확산되어 감염 환자가 2억 7,587만 7,026명에 이르렀고, 사망자는 537만 9,058명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확진자가 57만 5,615명이었고, 사망자는 4,828명이었다. 날마다 늘어나고 있으니, 지금쯤 또 얼마간 늘어났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앞에 우주여행도 하는 인간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그 어느 분야도 예외 없이 이 바이러스 앞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이유를 계속 추적하다 보면, 마지막에 결국 죽음이 두려움의 최종 대상인 것이다.
‘죽음’을 초극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인간이 겪고 있는 두려움은 별것 아니다. 내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것을 환영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우리가 성장, 성숙, 변화될 수 있으면 좋겠다.
천상병(1930-1993) 시인의 「귀천(歸天)」이란 시가 한 예일 수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길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은 날개 없는 새처럼 살았다. 시를 쓰는 일 외에 다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과 감옥살이를 겪었으나, 힘든 세상 살아가는 우리에게 늘 위로와 희망을 주려고 했다.
‘시몬’이란 영세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로서 어린애같이 순수하게 살다 갔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가진 게 너무 많고, 감사할 게 너무 많다.
지금 산야(山野)에 가보면, 참나무를 빼놓고 거의 모든 나무가 잎을 다 떨어뜨리고 나목(裸木)으로 서 있다. 초목귀근(草木歸根)이란 자연 섭리에 예외가 없는 것이다. 모든 잎은 땅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이규태(李圭泰) 칼럼에 보면 ‘죽는다’(死)는 것을 ‘돌아간다’(歸)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사색의 대종(大宗)을 이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창하는 유행가 가사의 단어 빈도(單語 頻度)를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유행가 가사 속의 상위 25위까지 빈도 조사를 해보면 ‘운다, 눈물, 밤, 꿈, 정든, 꽃, 바람, 이별, 비, 등불, 외로움, 슬픔, 나그네, 사랑, 믿다, 미련, 안개, 죽음, 고향, 혼자, 배, 간다, 길, 어머니, 부두’ 등이었다.
이들 중에서 떠난다거나 돌아간다는 말과 연관되는 단어들은 ‘운다, 눈물, 정든, 이별, 등불, 외로움, 슬픔, 나그네, 사랑, 멀다, 어머니, 고향, 혼자, 배’ 등 18개나 된다.
옛날 공직자(벼슬아치)들은 나이가 들거나 노부모가 계시면 반드시 고향이나 고향 근처로 근무지를 옮겼다. 또 세상을 등졌다는 은자(隱者)들도 최소한 고향이 내려다 보이거나 고향의 등불이 눈에 어른거리는 산속에 숨는 것이 관례였다.
떠나 있어도 항상 고향에다 한 끈을 잇대고 살았다. 거의 모든 한국인은 죽은 후 고향에 묻히고 싶어 한다.
조총련 계통의 재일교포가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했을 때 수년 전 돌아가신 자기 부모들의 유골함을 갖고 오는 경우가 그 한 예이다. 소위 귀소의식(歸巢意識)이 있는 것이다. 망자가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유지(遺志)를 남겼기 때문이다.
“객사(客死) 할 놈”이란 말이 한국인에겐 최고의 욕이었다. 옛 중국에서는 “구학(溝壑)의 사(死)”, 즉 어디서 죽어도 괜찮다는 말이 있고, 일본에서도 젊은 병사를 독전(督戰)하는 노래에 “바다에 가면 바다에도 시체, 초원에 가면 초원에도 시체”라는 말이 있다.
6.25 한국전쟁 때는 긴박한 전장에서도 전사한 군인의 손가락만이라도 수습해 그의 고향에 보낸 일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고향으로 돌아가 묻히고 싶어 하는 민족이다.
신앙인들은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본향 귀환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