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질 알면서…” 상대를 충분히 안다는 생각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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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105] 너무 잘 알아서 생기는 부부 간 ‘거리’

1

살다 보면 사람의 개성이나 습관, 사고방식이 점점 더 굳어지고 뚜렷해지는 걸 느낀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물론 대개는 나쁜 것들이 더 고착화되는 것 같다. 그것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고치려고 아무리 애써도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고칠 수 있다면 습관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도 없는 것일텐데, 그것이 문제라는 걸 잘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의 확신 속에서 계속 강화해 나갈 때 더 큰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자기만 옳고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꼰대가 되는 것도 그래서다. 평생 살아온 방식에 스스로 도취되고, 자기 확신을 강화하면서 늘 가르치려고만 하게 된다.

“맞잖아? 나는 틀린 얘기는 안 해” 이러면서 자기 생각을 강요하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확증편향 속에서 또 한 번 확신한다.

혼자 살면 이런 것도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지만, 남녀가 함께 살거나 오랜 시간 함께하면 그런 습관들이 서로에게 체감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결혼의 목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상대방의 모습이 낯설고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사고방식의 예를 들면, 자녀교육 문제 같은 것이 서로 다를 수 있다. 보통은 한 사람이 강압적인 스타일이면 한 사람은 방임형이다.

처음부터 자녀교육의 관점을 정했다기보다는 한 사람이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쪽에서 너무 아이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자유방임으로 노선을 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가 숨을 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교육은 아이의 성향과 다양한 변수 때문에 그때그때 다른 솔루션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부부가 서로 다른 생각을 섞어 균형을 맞추면 좋지만, 상대방의 교육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면 문제다.

그리고 상대방의 방식 때문에 나쁜 결과가 오면 그것 보라며 자기 신념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2

생활 방식에서도 그렇다.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새로운 것을 접하는 일보다는 자기 루틴을 고집하는 일이 늘어나는데, 그것이 모험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하던 일을 하고, 늘 먹던 것을 먹으며, 살던 대로 살아야 몸과 마음이 편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 보이는 방식에 상대방이 따라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여자가 깔끔해서 무엇이든 정리가 돼야 하고 어떤 물건이든 늘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반대로 남자는 늘 사방에 물건을 흘리고 다니고, 쓴 것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 귀차니스트라면 늘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다.

“썼으면 좀 갖다 놔.”
“좀 이따 또 쓸 건데 뭘 갖다 놔.”

“좀 치우고 있지.”
“뭘 치워. 금방 또 지저분해질걸.”

이러다가 나중에는 자동으로 반응한다.

“당신…”
“알았어, 알았어.”

또 다른 예로 남편이 시간에 강박이 있는 플랜맨인데 비해 아내는 느긋한 성격에 빠듯하지 않게 살아왔다면, 신혼 때나 중년에나 노년에나 같은 걸로 늘 티격태격하게 된다.

“내가 7시면 딱 오는 거 알면서 아직 아무것도 안 해놨어?”
“나도 바빠. 그런 날도 있는 거지. 집이 무슨 예약하고 오는 식당이야?”

“길 막히니까 9시에는 무조건 출발해야 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그럴 수도 있지. 아침에 여자가 챙길 게 얼마나 많은데.”

깔끔한 아내나 시간 강박의 남편이나 상대방의 스타일을 몰라서 다투는 게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건데 왜 안 고쳐지나 하는 답답함 때문이다.

알 만한 사람이 왜 저럴까 싶어서 서운함을 느끼는데, 그 서운함은 자신의 행동 패턴이 강화된 만큼 더 크게 느껴진다. 자신의 강박이 더 굳어진 것은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내 성질 뻔히 알면서 왜 또 저럴까?’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좀 고치라니까, 어떻게 나아지는 게 없냐.’

그러니까 자기 단점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고, 상대방의 단점에 대해서는 고쳐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무한 반복의 딜레마다.

3

남녀가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면 닮아가기도 하지만, 끝까지 합일점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부분도 많이 발견된다. 그런데도 배우자가 내 페이스에 맞추기를 바라게 돼서, 부질없이 설득하고 설명하곤 한다.

가끔은 서로 조금씩 양보도 하고 개선하기도 하지만 뇌구조가 다른 부분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수가 빤히 보여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 마치 스포츠에서 상대방의 장단점과 전술을 다 알아도 실력 차이 때문에 매번 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이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둘이 똑같으면 좋은 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문제들이 생긴다.

한 사람이 자유로운 영혼이라 방랑하며 살고 싶어 한다면, 한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상대방의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감싸는 배우자는 결코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동학대로 어린아이가 죽는 사건도 대개 부부가 함께 학대를 한 정황이 발견되고, 친부에 의한 성폭행에도 아빠의 편을 들어 딸에게 함구할 것을 강요하는 엄마가 사태를 악화시킨다. 어린 아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함께 게임에 빠져 있던 철없는 부부도 있었다.

극단적인 사례들이지만, 두 사람 중 하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른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함을 보여주는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자가 나와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방을 거울삼아 자신을 고치고 서로 보완해서 살라는 의미이며, 한 걸음씩 다가서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대개는 내가 옳으니까 나는 가만히 있고, 상대방이 두 걸음 다가오기를 강요하는 일이 많다. 그럴 때 바로 이 논리가 사용된다.

상대방의 단점에 대해서는 “내가 그렇게 싫다는데 좀 고치면 안 돼?”라는 논리로 대응하고, 나의 단점에 대해서는 “내 성질 알면서 꼭 그래야 돼?”라는 식으로 따진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주로 상대방의 부족한 것은 단점이라 생각하고 나의 부족한 것은 그저 특성으로 이해하는 이중적 잣대가 작용한다.

쉽진 않겠지만 반대로, 상대방의 단점을 볼 때는 “그리 오래 살아도 안 고쳐지는데 강요하지 말자” 하면서 내가 한 번 더 움직이고, 나의 단점에 대해서도 “그렇게 싫다는데 내가 좀 고치자” 하는 생각이면 어떨까. 조금은 편안하고 숨통 트이는 삶이 되지 않겠는가.

다투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보다 훨씬 수월하고 행복한 길일 것이다. 악순환에서 선순환으로 가는 길이다.

부부는 한 몸이다. 반쪽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서로 다른 부분이 상호 보완 작용을 이루어 이상적인 관계로 나아가려면, 상대방을 내 페이스로 끌어오거나 완전히 휘둘리기보다는 적당히 팽팽한 상태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단점을 낙인찍는 사고나 나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상대를 충분히 안다는 생각, 그리고 내 생각을 잘 알아줄 거라는 안일함을 버리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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