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넷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쉬움의 밤에 다시 새벽을 기다린다.”
지난 목요일 11시 인천 숭의감리교회에서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연합회 주최로 ‘제103주년 3·1운동 전국교회 연합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실무적인 준비는 전부 박요셉 목사님이 하시고 저는 기념사를 준비하면 되었습니다. 기념사 내용이야 탄탄하게 준비를 했죠. 그리고 기념사에 필요한 영상도 방송실에 준비를 하도록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아침에 다시 방송실에 확인을 해보니까 그쪽 교회에다가 단단히 부탁해놨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직접 직원이 한 명 오지 그랬느냐,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일로 전화하기 바빴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차에서 원고를 다시 한 번 체크를 하거든요.
그런데 그날 기념사 내용은 제가 KBS 3.1절 다큐를 제작하면서 여러번 인터뷰를 한 내용이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로 바빠서 원고를 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행사장에 정시 도착을 했는데 화장실에 들렀다가 올라갔습니다. 화장실만 안 들렀어도 좋았는데, 제가 본당에 들어가자마자 제 순서 시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장의자와 장의자 사이의 통로를 눈썹이 날리도록 달려갔습니다.
숨도 못 쉬고 강단으로 올라갔는데 숨이 차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급하게 올라가니까 원고 글씨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진짜 이런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대목에서 버벅거릴 수밖에요.
게다가 영상이 나와야 할 대목에서 영상을 보니까, 자료 영상이 나와야 할 부분에서 영상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또 거기에서 멈칫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너무 빨리 읽어나가서 그러는가 해서 영상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그 영상은 귀한 영상이었거든요.
장롱 속의 고서가 될 뻔한 3.1운동의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선교사의 사진과 편지들, 미국 장로교 선교역사박물관을 방문하였을 때 수북이 쌓여 있었던 선교사들의 기록과 편지들, 3.1운동 당시 영명학교의 교장이셨던 린튼 선교사의 편지를 보고 제가 감격해 하는 영상 등 정말 희귀하고 가치 있는 영상들을 준비했는데 보여주지 못한 것입니다.
그 영상들이 나갔으면 기념사의 격이 더 올라가고 가치 있게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 방송실이 너무 방심을 한 것입니다.
진짜 제 사역에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기념사가 끝나고 나니까 박수가 우렁차게 나왔지만, 저는 너무 화도 나고 아쉬운 것입니다.
제가 방송실로 전화를 해서 “그쪽 방송실만 믿지 말고 나를 수행한 수행비서도 있고 미리 먼저 가 있는 윤 목사도 있고 우리 교역자들이 몇 명이나 가 있었는데 한 번만 크로스 체크를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 아니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무조건 송구하고 죄송하다는 것입니다. 그 날의 아쉬운 마음이 왜 그렇게 가라앉지를 않는지 하루 종일 아쉬웠습니다.
행사가 끝날 무렵에 ‘제1회 독립운동 선양상’을 수상하였는데도, 왜 그렇게 어색하기만 한지요. 오후에도 마치 머릿속에 머피의 법칙이 연상이 될 정도로 하루 종일 삐꺽거리듯 보냈습니다. 글을 쓰는 저녁에도 아쉬운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문득, 제가 작사 작곡한 ‘내 마음 강물 되어’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내 마음 강물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 멈추라 하여도 흘러야만 합니다 (중략)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고통도 고일 길이 없어서 / 흐르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 멈추고 붙잡는 것이 속절없는 것을 / 흘러야 행복인 줄 알기에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떠올려도, 아쉬운 마음이 흘러가지 않고 계속 머무르는 것입니다. 사실은 저에게 더 큰 책임이 있었는데요. 행사 끝나고 전화해도 될 일을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행사장에 가기 전에 계속 전화만 하고 갔거든요.
영상이 준비 안 됐더라도 제가 원고를 더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쉬움의 동기는 제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이 밤은 정말 아쉬움의 밤입니다.
그런데 다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처럼 뼈저리게 아쉬움의 깊은 밤을 경험해야 내일의 신선한 새벽의 여명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만약에 제가 아쉬움을 느껴야 하는데도 아쉬움을 느끼지도 않고 하루를 보내왔다면 저는 더 이상 내일의 찬란하고 눈부신 새벽을 맞이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아쉬움을 깊은 밤까지 보듬고 있어야 다시 여명의 눈동자로 눈부신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쉬움의 밤에 다시 새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련의 황무지를 걷다가 이제 아쉬움의 강을 건너려고 신발끈을 동여매고 다시 시린 가슴으로 새벽길을 떠나는 순례자가 되고 싶습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