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106] 김빠진 사랑은 두 배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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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더 이상 기대감이 없고 나아갈 곳이 없을 때 서서히 식는다. 사랑이 항상 기대와 설렘으로 채워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서로를 통한 즐거움과 작은 기대감은 있어야 유지되는 법이다.
그런데 유지는커녕 뒤로 가는 일이 자주 생긴다면 어떨까. 자주 좌절을 겪고 무언가 벽에 부딪친다면, 사랑은 시들해지고 점점 뒷걸음질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무슨 일이든 김이 빠지면 동력이 사라진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일도 중간에 틀어지면 계속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는데 팀장이 묵살해 버리거나,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팀원들 앞에서 핀잔을 주면 다시 할 맛이 사라진다. 동창 모임에서 무언가 제안을 했는데 시큰둥하면, 다음부터는 참석하기 싫어질 것이다.
‘김샜다’는 속어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몰라도,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자주 쓰던 말이었다. 갑자기 어떤 일의 의미와 의욕이 사라질 때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관용적 표현이라 지금까지 쓰이는 것 같다.
콩나물국을 끓일 때 섣부른 시점에 열어보면 비린내가 나서 안 되듯, 또 삼겹살을 구울 때 너무 일찍 뒤집으면 제대로 익지 않고 맛이 없듯, 매사에 김이 빠지면 시들해진다.
연애나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김빠지는 일이 많아질수록 잘해보려는 의욕도 반감되기 마련이다. 이런 일은 대개 어떤 이벤트나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많은 남자들이 더 경험하는 편인데, 여성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얻으면 의욕 상실에 빠지기 쉽다. 꼭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좀 재미있게 해보려고 조크를 했는데 정색을 한다든지 하면 얘기할 의욕이 사라지기도 한다.
“말한 내가 바보지.”
이렇게 된다. 물론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음식을 했는데 무반응이거나 “그냥 먹는 거지, 매번 반응을 보여야 돼?”라고 하거나,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뭐 달라진 거 없냐고 물을 때 못 알아보면 김이 빠질 것이다.
좋은 제품을 발견하거나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얻어서 신나게 알려줬는데, 상대방이 전혀 고마워하거나 반기지 않으면 대화할 맛이 나지 않는다. 이런 때 나쁜 태도는 이런 것이다.
“아, 그거 나도 알아. 인터넷에서 봤어.”
아무리 반갑게 답해도, 이런 건 맞장구가 아니다. 빨리 가서 알려줘야지 하다가, 신나게 말했는데 이미 다 알고 있다면 김이 빠진다. 고지식한 사람은, 그럼 거짓말을 하라는 거냐고 물을 것이다. 꼭 거짓말이나 연기를 하라는 건 아니지만,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있지 않을까.
“오, 신기하다. 나한테도 링크 보내줘 봐.”
더 나쁜 태도는 물론 심드렁하거나 거절하는 거다. 하지만 리액션은 존중이며, 상대를 신나게 만드는 돈 안 드는 기술이다. 재미있는 영상이나 짤을 받을 때도, ‘ㅋㅋ’ 두 번 할 것을 몇 개 더 한다고 크게 힘드는 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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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반응과 거절감을 느끼면 좌절하고 실망해서 수동적으로 변한다. 자신의 실망이 소심한 복수로 이어져 악순환이 될 수도 있다.
거절감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보통 남녀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자신에게 크든 작든 일정한 권리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무례함이나 막말처럼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존중받을 권리와 무안 당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어떤 부실한 말을 해도 조롱당하지 않을 자격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자기 권리를 박탈당하고 무시당하면 사랑에 크게 공들일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수동적인 자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큰둥해지고, 뭘 해도 재미가 없다.
부부나 연인 사이에 한쪽에서 무언가를 제안하면, 한 번에 오케이를 안 하고 꼭 토를 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외식을 하자거나, 영화를 보자거나, 바람을 쐬러 가자거나 하는 일에도 바로 그러자고 하지 않는 경우가 무척 많다.
정보의 대홍수로 결정장애에 빠진 현대인들은 한 번을 나가도 맛집과 명소가 아니면 시시하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가기 싫어도,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바로 거절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럴까? 언제가 좋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정해지지 않는 건데, 굳이 “왜 갑자기?”, “나 바쁜데…”, “지금 시국이 놀러 다닐 때야?” 이런 식으로 일단 반대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꼭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평소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을 때나 서운한 일로 심사가 뒤틀렸을 때 그러기가 쉽지만, 그럴수록 더 김빠지는 관계가 될 것이다.
더 안 좋은 것은 다 정한 일을 중간에 틀고 깨는 것이다. 외식하기로 약속한 날 더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다면서 취소한다든지, 너무 머니 그냥 가까운 데서 대충 먹자든지, 비가 오니까 배달이나 시키자 하면 김이 새는 법이다.
이것은 비단 남녀 사이만이 아니라 가족 간에도 그렇다. 자식들이 어디 가자고 하면 자꾸 빼고 중간에 트는 어르신들이 있다. 자녀들이 돈 쓰는 것도 아깝고 괜히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식당 예약 다 해놨는데 집에서 먹자 하고, 식당에 가서도 ‘비싸다, 맛이 없다, 집에서 먹으면 반값도 안 드는데…’ 하신다.
그런 마음은 알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기운이 빠진다. 이럴 땐 꼭 좋아야 좋은 게 아니라, 마음을 받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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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거절하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시큰둥한 연인이나 배우자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이 시들해지고, 대화를 하거나 무슨 제안을 해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시작하면 반응도 떨떠름해진다.
형식적인 이벤트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국면 전환용으로 하는 행동도 상대방은 알아본다.
진심이 없으면, 거절당해도 싸다. 사람은 상대방의 작은 몸짓만으로도 정말 내가 좋아서 그러는지 그저 필요해서 그러는지, 항상 그런 마음인지 아쉬울 때만 태도가 변하는지 다 느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매번 좋은 척 모든 일에 응할 수는 없는 법이다. 거절하고 반대해서 김빠지게 만든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내가 원인 제공한 면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한편 표현도 안 해 버릇하면 갑자기 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밥 먹을 때마다 늘 시큰둥하던 남편에게 표현을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면, 억지로 하긴 하는데 영 이상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맛이 있다고 칭찬을 해도 영혼 없는 세리머니나 과장된 리액션이 나와서, 연기가 아닌지 의심받는다. ‘엎드려 절받기’ 한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 먼저 표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사랑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일 테지만, 자주 실망하고 기운이 빠지면 힘들어진다. 사람에게는 사는 이유, ‘살아갈 맛’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어질 때 의욕을 잃고, 심하면 삶을 등지게 된다.
사랑에도 ‘사랑할 맛’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라지면 사랑은 뒷전이 된다. 여러 번 뚜껑을 열어 김이 빠진 콜라는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사랑은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달리는 증기기관차 같은 것이다.
수증기의 압력을 이용하는 증기기관차는 김이 빠지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그 나아가는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석탄을 퍼 나르며 누군가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나마 있는 김까지 빼버리면, 무슨 기력으로 그 무거운 철마가 앞으로 내달리겠는가.
사랑은 김이 빠지고 나면 두 배로 힘들어진다. 아직 사랑이 남았을 때 열심히 레일 위를 달려야 한다. 구원열차는 차표가 필요 없지만, 사랑의 열차에는 공짜가 없다.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