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레미야의 사명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들을 내 눈으로 보니 내 심령이 상하는도다 나의 원수들이 이유 없이 나를 새처럼 사냥하는도다 그들이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애3:47-54)”.
유다 왕국이 앗수르의 지배를 받던 시기인 B.C. 627년 경,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때부터 B.C. 587년까지 40년 동안 사역을 하였으며, 이 시기 유다 왕은 요시야 외에도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등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 국가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토록 부르심을 받았던 눈물이 유달리 많았던 선지자였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상스럽게 생긴 나무와 돌까지도 신으로 섬겼으며, 우상 숭배의 결과는 멸망과 심판이며,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임을 강조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폭로하며, 하나님의 징계까지도 무시하며, 하나님의 심부름꾼인 선지자들을 대적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도 오히려 회개하기를 꺼려 하며, 이스라엘의 완고한 고집을 지적하였음에도 그들은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고, 그들 스스로의 길을 재촉하여 멸망당했던 사실을 우리 신앙인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더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에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던 선지자였으며, 처음에 그는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 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는 머뭇하며 주저하였습니다.
하지만 말할 줄 모른다는 솔직한 고백의 겸손이 도리어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계기를 제공하게 되어, 마침내 예레미야의 충실한 선포에는 이방인들에게 조롱을, 동족에게는 박해를 받는 신세가 되어, 왕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위협도 받았으며, 심지어는 체포되어 동굴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너무나도 비참한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 불운한 예언자처럼 보였습니다. 더구나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들 중 예언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충실히 전하는 충직한 사명자들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이 그 대표적인 예언서이며, 성령의 이끄심으로 전해져오는 성전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가 듣고 말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졌다면 예언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누가복음 4:21)”고 하십니다. 우리 신앙인들 모두는 예언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우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예언자 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고 철저하게 순종하며 따라야 할 것이며, 우리 신앙인들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지칠 때, 우리 내면에서부터 선이든 악이든 상관없이 타협하려고 하는 습성을 표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끄심에는 타협이란 절대 있을 수가 없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힘들수록 그분의 이끄심은 우리 마음에서 더 뚜렷하며 선명하고 강렬해집니다. 더구나 수 년째 많은 인간들을 괴롭혀온 코로나19를 포기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것마저도 하나님의 뜻으로 알아차리는 기회로 삼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예언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충실하면서 끝날에는 그분의 부르심이었음을 깨닫고, 신앙인 개인의 응답과 거기에 합당한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면, 먼저 있어야 할 단계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이미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비록 교회 지도자들을 향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부르심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에게 해당한 말씀임을 깨달으며, 그 분을 내면 깊숙이 모셔서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자의 삶으로 전환하여, 그 분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 때 이야기이고, 오늘날은 그 시절보다 더 풍성하고 풍요롭게 누리고 있지만, 여전히 우상숭배는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돈과 권력 그리고 집, 자녀가 주로 우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현 시대는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시대입니다. 말씀보다 더 우위에 있는 자녀 우상으로 인해 믿음에 적잖은 타격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탄압은 물론, 권력과 부를 얻고자 겨자씨만 했던 믿음마저 저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영원할 것 같은 눈앞의 권력과 부귀영화에 함몰되어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저만치서 우릴 향해 슬퍼하시며 우시는 주님의 모습이 달빛에 걸려 잠 못 이루는 밤입니다.
더구나 교회 집사라고 국민들 앞에 당당하게 말했던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위해,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경북 경산시 팔공산 자락에 모여 그의 대선 승리를 위해 기원하는 밤샘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 행사에서는 천지신명, 축원 굿, 용신 천왕 굿, 불사 굿, 신왕 굿, 당산 굿 등의 순서로 진행됐고, 마지막 무렵에는 한 여성 무속인이 그네 위에 작두를 올려놓고 춤을 추는 ’그네 작두 굿‘ 행사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교회 출석을 한다는데,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국민들 앞에서 버젓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면, ‘저런 분에게 과연 나라를 맡길 수가 있을까?’ 라는 의구심으로 고개만 한없이 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거침없이 자행하는 저런 분들이 교회를 나간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건물에만 관심이 있고, 준엄한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교회 이름으로 백성들을 현혹하며 정치적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선교와 봉사 활동에 전념하며 최선을 다하는 선교사와 의료봉사자, 그리고 각종 재능을 기부하며 뜨거운 열정으로 수고하는 그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이라면 지구촌 전체의 기후와 환경, 굶주림과 병마, 그리고 물 부족으로 고통당하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베풂, 섬김과 나눔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사명감으로 하나님의 기쁜 복음을 전하는 이 땅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숭배와 권력과 세상 연락에 심취되는 곳에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징계가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로 이미 사전선거가 시작되었고,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대통령 선거가 곧 실시됩니다. 그러나 여태 경험하지 못했던 무수한 민낯들이 드러나면서 권력 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갖은 술수를 다 허비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어찌 감당하려는지요.
거짓말과 화려한 말잔치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내로남불’ 가득한 현 여권 사람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국민들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주어진 사명과 본분을 망각한 채, 그들 스스로 탐욕의 운동회로 전락하는 이 어리석은 정부를 어찌 믿고 함께할 수 있을까요?
국민들과 주변 국가의 따가운 시선도 외면한 채, 그들의 무도회로 변해 버린 대한민국의 미래가 과연 있을까요? 지난 5년은 참으로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세월이었기에, 이제 국민들과 신앙인들은 나라와 민족, 다음세대들을 위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으로 하나님을 위해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가 주는 교훈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같은 사태를 맛보지 않으려면 우리 국민 모두 철저한 안보의식과 함께, 공산당은 우리의 적임을 인식하고 다시는 이 땅에서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아픔을 또 다시 겪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사순절 첫 주를 맞는 우리 신앙인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 눈물로 기도하셨던 주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새로운 다짐으로 믿음을 지켜나가는 십자가 군병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