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존재에 대한 이유와 근거가 있는 확신입니다.
삶이란 것이 늘 계획과 예상대로 되지 않고,
삶의 기다림이란 생각보다 훨씬 더 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그 긴 기다림이 우리 인생을 더 깊게 만들었고,
깊이 익어지게 함으로 인생들을 이해하고, 더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서게 하였습니다.
가장 안 좋은 것은, 내 작은 경험과 지식과 지혜로 다른 이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내 부족을 느껴 다른 이를 소중히 여기며, 그에게 배우고 함께 있고 싶어 함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삶에 기쁨이 없고 늘 만사가 불만이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후자는 늘 은혜가 감사하고, 사람들이 그립고 좋고 같이 있고 싶고,
그러다 보니 그 사람도 내가 함께 있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고, 어느덧 좋아합니다.
내가 왜 살아 있어야 할까에 대한 답은 분명해야 합니다.
이 단순 무지한 문항이, 어느 순간 깊은 감동으로 와 닿을 때 삶은 살만한 것입니다.
제 경우 그 문항에 대한 답의 첫 번째는 “책임”입니다.
제가 책임져야 할 교회 사람 일 역사의 부분들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생각합니다.
책임져야 할 순간, 그것을 회피한다면 그로 인해 기쁘고 행복함은 없을 것입니다.
가급적 생활을 단순화해 집중을 이루고자 하는 것도,
부족한 힘을 지닌 자가, 무엇인가 책임을 져야 할 일에 최소한의 방패라도 되어야 한다 생각해서입니다.
책임짐이란 말로 이룰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대가가 필요하고, 그 대가를 치를 때만 책임이란 말은 진정성과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기쁘고 싶고, 또 그 기쁨을 가두어 두지 않고, 펼쳐 흘려보내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 믿습니다.
은혜와 기쁨의 공유 의지는 결국 그 진정성을 담보 받게 되는,
규모 분량과 시간의 지속성 확보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의 양과, 마음의 양과, 사랑의 양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진정한 사랑은 분량을 포함한다고 믿습니다.
시간의 지속도 결국은 오랜 기간을 통한 분량의 확보라는 생각을 합니다.
큰 사랑, 깊은 사랑, 오래 가는 사랑, 변치 않는 사랑도, 결국은 분량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가엾은 인생들이 사는 세상, 많이 사랑하고 원 없이 사랑하고, 편히 눈 감고 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