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은 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헌법도 심증으로는 죄인을 판결할 수 없습니다. 죄는 언제든지 물증이나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증인(證人)’은 현장을 목격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원고와 피고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사실을 목격한 증인이 그런 사실을 진술하면 승소를 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에 가장 기본요소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정의를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말씀합니다.
‘실상’과 ‘증거’는 믿음에 법적 용어로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기 위해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실상’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실제의 상태를 100%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현장을 목격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증인’은 “육하원칙”에 근거하여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실상과 증거”가 있어야 참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과 표적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기적과 표적들을 우리는 단 한 가지도 현장에서 목격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목격한 증인들처럼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특히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씀합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2)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사람의 이성으로 어떻게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진화론과 빅뱅 이론이 발생한 것입니다. 노아 홍수 사건을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까? 홍해 바다 사건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3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40년간 광야에서 살았다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 외 수많은 사건이 구약성경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을 현장에 있었던 동시대 사람처럼 100%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체험을 불신자들에게 증언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만약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100% 믿는다면 이 땅에서 염려나 근심을 절대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근심과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2)” 이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적들이 무려 37가지나 있습니다. 그 외 “예수의 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천지창조처럼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믿음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은 그런 사건들을 현장에 있었던 동시대 사람처럼 100%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종교인)을 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천지창조) 기적과 표적,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의 사건을 목격자 믿음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천국과 지옥, 구원의 믿음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판사가 증인의 말을 인정해 주듯 하나님께서도 성경 말씀을 실제 사건으로 믿게 되면 그 약속이 자신에게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마 17:20; 막 4:31; 눅 17:6).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방주를 예비하였고,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었고,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후손을 생산하였고, 하늘의 본향을 사모하였고,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실 줄로 생각하였고, 바로의 공주 아들을 거절하고 세상보다 하나님 백성들과 고난받기를 더 좋아하였고,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고, 불의 세력을 멸하였고, 고문을 받으면서도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였고, 돌로 치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였다. 결국,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마귀)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히 11:38).
결론
필자가 요즈음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믿음’을 연구하면서 많은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을 한 것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그 나라(말씀에 순종)를 위해서 살 수가 있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나라를 위해 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이겠습니까? 세상에서 의롭게 사는 삶은 그 나라(천국과 지옥)를 믿음으로 증명해 보이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백성들은 미래에 다가올 천국과 지옥을 실제로 경험(목격)한 사람들입니다.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의 정의입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의심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약 1:6)”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성령이 내주한 “실상과 증인”의 믿음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 늘 증명되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1 4:8)” 믿음과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