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尹, 진실보다 레토릭 능했던 文 정권 반면교사 삼아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유일한 인물, 다윗의 용병술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과 피조물인 인간의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전혀 다르다(사 55:8-9). 성경이 대단히 패러독스적인 책인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창조주와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특성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성경 인물 중 가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 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성경은 바로 다윗이라고 지목한다(행 13:22). 다윗은 밧세바의 일을 제외하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란 칭호를 받은 성경 유일의 인물이었다.
다윗은 목자요 장수요 정치인이요 왕이요 연주자요 음악가요 시인으로 믿음의 용사(히 11:32)였다. 그의 이름 ‘다위드’가 ‘사랑’이라는 의미의 히브리 어근에서 비롯된 것만 보아도, 그가 하나님께 사랑 받는 인물이었음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다윗은 부친과 형들뿐 아니라 성경 최고 인물 중 한 사람인 사무엘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리더십을 지닌 인물이었음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외모나 스펙이 아닌 중심을 보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평가는 분명 달랐던 것이다.
사실 우리 인간의 행태는 허물과 미숙함 투성이이다. 다윗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다윗을 정치 지도자요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자신의 마음에 합한 최초 지도자로 삼으신 걸까? 정치 지도자로서 다윗의 용병술은 어땠을까? 문재인, 윤석열 정부는?
성경이 보여주는 다윗 용병술의 가장 큰 특징은 한 마디로 코드 인사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다윗은 변방 유목민(?) 레갑 족을 중용한다. 이들은 훗날 예레미야에게 칭찬 받은 경건주의 족속(렘 2:2; 35:12-17)이 되었다.
이렇게 레갑 족은 유다의 재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민족(렘 35:18-19)이 되었다. 이 이방인들은 다윗의 개인 경호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다윗의 사람 보는 안목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변방의 헷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는다. 바로 역사 속 지금의 터키 땅 아나톨리아에서 발흥한 히타이트 족이다. 다윗은 수하에 이방의 헷 사람 아히멜렉(삼상 26:6)과 충성스런 장수 우리야(삼하 11장)를 두었다. 다윗의 37 용사에도 든 밧세바의 전 남편이 바로 그였다.
심지어 블레셋의 일파였던 그렛 족과 블렛 족도 다윗의 용병 가운데 있었다. 이들은 압살롬의 반역 때에도 다윗에게 충성하였으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즉위식에까지 참여(왕상 1:38)한다.
한민족 역사상 최대 영토를 경영한 광개토대왕이 백제인들을 왕묘 관리인들로 중용한 담대한 용병술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것이 바로 코드에 연연하지 않는 담대한 영웅들의 용병술인 것이다.
지독한 코드 인사, 문재인 정부
지연과 학연과 혈연에 매달린 우리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좀스러운 용병술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감히 약속드린다. 2017년 5월 10일은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 취임사에서 대단한 선언을 해놓고는 다음 날부터 적폐 청산과 코드 인사에 매진하며 거짓말 대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가톨릭 신자로 선량한 선출직 대통령이 감히 약속을 어기는 거짓말을 할 리는 없기에, 주변 참모들 가운데 역적과 간신배들이 우글거린다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긴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라고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코드 인사’ 중에도 최고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임명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용병술의 가장 큰 특징은 실력 없는 C급, D급 코드 인사들을 청와대와 행정부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참된 국가경영보다는 논공행상이 앞선 결과였다.
청와대 관계자가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라 한다거나 캄보디아 사진을 브루나이 사진으로 소개하던 것들이 바로 그 수준을 보여준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 신문이나 책도 제대로 보지 않고 청와대 고위관료가 되었단 말인가?
행정 관리는 말할 것도 없다. 문 대통령은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인물 28명(최대 31명이라는 기사도 나온다)의 임명을 강행하는 집착적 고집을 보여주었다.
선생님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인물을 관련 주무 부총리로 세우는가 하면, 정치학과 출신을 부동산 정책 주무 장관으로 임명하여 집 없는 국민, 집 사려는 국민, 집 있는 국민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든 일, 불쌍하고 안쓰러운 정신대 할머니들을 앵벌이 삼은 윤미향을 국회의원에 진출시킨 것이나 그를 두둔한 여성가족부 장관이 미투 피해자 외면 등으로 원성을 산 일이 바로 그런 경우다.
무슨 크나큰 신세를 진 것인지 이상직 같은 사람을 국회의원,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세운 것을 보면, 정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다. 가장 공정해야 할 언론, 방송, 선거관리위원회, 대법원장 등이 모두 지극히 기울어진 확증편향의 인물들로 채워졌다. 무법의 조국, 추미애 같은 수준 이하의 인물이 법무부 장관이 된 것은 또 어떤가!
지속된 코드 인사의 대참사
바이러스의 기본 특성도 모르는지 대만, 싱가포르 등과 달리 코로나19 초기 중국 우한과 여러 지역 항공의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나, 정부 관리가 ‘아세트 아미노펜’이 함유된 해열제를 약사 상담을 통해 구입하라 하면 될 것을 특정 제약회사 제품인 ‘OO레놀’을 구입하라고 버젓이 광고한 것은 인민사회주의 국가처럼 마스크를 약국서만 구입하게 해 독과점 수입을 특정 회사에 몰아 준 것과 더불어 압권이었다.
특정 회사 제품을 정부 관리가 노골적으로 홍보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모르고 그랬다면 정말 무식한 관리요 알고 그랬다면 무슨 큰 곡절이 있을 것이니, 정권이 바뀌면 이것은 분명 제약회사들의 소송감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은 꼭 사실만큼은 알아야겠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것 같다는 어떤 여당 정치인의 2020년 초 발언과 더불어, ‘K-재앙방역’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이 같은 파행은 사실 이뿐 아니라 부지기수였다.
얼마 전 친 정부 인사들이 압도적 다수인 대법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은 2017-2019년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박근혜 정권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 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해 그중 13명에게 사표를 받아내고, 이후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들을 임명하기 위해 6개 기관, 17개 자리의 채용에 불법 개입했다는 내용이다.
정말 김명수 대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죄가 명확하다는 것일 게다.
박근혜 행정부의 환경부 주무장관이었던 환경과 환경기술 최고의 전문 관료였던 윤성규 장관에 비하면, 김 장관은 환경공학의 공자도 모르는 경영학과 출신의 C급 장관이었다.
환경 기술과 환경 관리 분야에서 윤 장관보다 나은 인물을 문 정부가 임명해 본 적이 지난 5년 동안 있었던가? 필자도 신학자, 목사가 되기 전 대학원까지 6년 반 환경 관련 학문을 공부한 환경인이기에 하는 말이다.
최고의 통계 전문가를 통계청장으로 임명해 놓고도, 입맛에 맞는 통계 수치를 내놓지 않는다고 곧바로 입맛에 맞는 인물로 갈라치운 것도 유사한 장면이었다. 이 같은 논공행상의 파행은 임기를 2개월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에 환경운동가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국문과 출신을 ‘알박기’하는 모습을 보면, 그 많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핵안전 전문가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이 같은 비전문 낙하산 인사들이 정부 막바지까지 부지기수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인식과 수준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환경부 장관 사건’은 문 정부 들어 정권을 겨냥한 첫 수사였던 만큼, 후폭풍도 컸다. 당시 수사를 진행했던 서울동부지검 한찬식 지검장, 권순철 차장검사, 주진우 형사 6부장 등은 승진 탈락 등의 ‘보복 인사’를 당한 뒤 줄줄이 옷을 벗었다.
간신, 역적 검사들에 비하면 이들이야말로 정말 국민의 편에 선 소신있는 훌륭한 정의의 검사들이었다. 하기야 김은경 장관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수준은 떨어져도, 다른 무지막지한 장관들에 비하면 순진했을지도 모른다.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을 한 인물이 무법적 인물이었으니, 민주화운동가 홍세화 씨가 말하듯 소위 ‘민주 건달’들이 장악한 이 정부 ‘민주 귀족 관료’들의 행태는 도를 넘는다.
김은경 전 장관도 노무현 정부 시 발탁되었던 참여연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박원순, 조국, 장하성, 김기식, 김상조, 탁현민 등 이 정부를 망친 장본인들이 바로 참여연대 출신들 아니던가.
C-D급 인재들이 감투 한번 써 보겠다고 달려든 필연적 결과가 작금의 우리 정부의 파행적 모습이다. 사실 블랙리스트보다 무서운 것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실력 없는 화이트리스트들일지도 모른다.
미숙한 운전자로 인한 국민의 트라우마, 새로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본인이나 주변의 흠결은 있더라도 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부(國富)를 늘리는 ‘국익의 대열’에서 벗어난 분은 없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외교 안보 경제 재정 에너지 노동 교육 시민사회 정책은 물론 법치와 국민화합 등 국정 전 분야에서 국익을 자해(自害)하는 통치를 해왔다. 국정의 구석구석에서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내려놓을 때도 되지 않았나.” 동아일보 박제균 논설주간의 칼럼 내용 중 일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했다. 성경은 그 마음의 생각이 그러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 했다. 지난 5년 우리 국민은 우기기와 내로남불과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미숙한 운전자 같은 정부를 보며 일종의 심리적 트라우마와 자괴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그렇게 얕보다니.
변명을 위한 여론조사 해석에 집착하는 레토릭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임기 말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후 이 정부보다 훨씬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는 패러독스를 이 정부 인사들이 알기는 할까?
즉 노 전 대통령은 인기는 없어도 진실은 있는 대통령이 되려고 노력한 인물이었다. 진실보다 레토릭에 능한 이 물러나는 정권에 주는 경고다.
이제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다가오고 있다. 다윗의 용병술과 전 정부의 공과는 역설적으로 새 정부의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다. 에토스와 파토스와 로고스가 최고인 인재가 아니어도 좋다. 코드 인사라고 무조건 배제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치 입문이 미천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이기에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적재적소에 탁월한 인재를 두루 등용하는 용병술을 기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법을 물 같이 정의가 하수 같이 흐르는 대한민국을 기원한다. 그래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의 국가가 되기를 기도한다.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잠 28:4)”.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잠 28:23)”.
조덕영 박사
신학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