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쯤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수학 선생님이 ‘앞으로 너희들은 주판이 필요 없는 때가 올 것이며, 곱하기와 나누기를 몰라도 된다. 그 이유는 전자계산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30년이 지난 오늘 이 시대는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자계산기(핸드폰)를 다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계산기로 과거의 삶을 한 번쯤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약 60가호쯤 되는 농촌 마을에서 제일 가난한 집에서 성장했습니다. 당시 밭 한 평 논 한 평이 없는 매우 가난한 집안이었습니다. 외가는 마을에서 매우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외가 논을 소작해 가을이면 수확한 벼 중에 최우선으로 소작료를 지급한 후 나머지를 식량으로 사용했습니다. 만약 소작료를 내지 않으면 그 다음 해는 논을 소작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누구도 소작료를 지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논 한 평, 밭 한 평도 빌려 주지 않을 것입니다. 십일조 개념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인터넷을 점검해 보면 십일조에 대해 부정적인 목사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의 본질조차도 모르는 아주 무지한 소경(마 15:14)과 같은 사람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십일조는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인이신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주인을 모르는 종이나 소작인들은 내일을 보장받을 수가 없습니다. 십일조는 그런 개념이 내포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기서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3:8)” 십일조는 모든 축복의 근원입니다(말 3:10~12). 국민이 국가에 낼 세금을 탈세하면 무덤까지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백성 된 시점부터 신앙인의 의무를 얼마나 감당을 했는지 손에 들고 있는 계산기로 한 번쯤 계산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필자의 청년 시절 교회에 의사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여러 교인 앞에서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인턴 시절에는 십일조를 잘했습니다. 학위를 취득하고 종합병원에 취직해 첫 봉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십일조를 떼려고 보니까 인턴 시절의 한 달 봉급 정도나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 돈이 아까워 주일 헌금과 감사 헌금만 하였습니다. 그 후 3년이 지났습니다. 시름시름 이름 모를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쇠약해져 뼈에 가죽만 씌워 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검진을 해 보아도 병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합 진찰을 위해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이런저런 검진을 받다가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병실 매트에 누워 있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떼어먹은 십일조를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종합검진을 중단하고 고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떼어먹은 십일조를 모두 계산해 하나님께 헌금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쯤 지났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는 저에게 아내가 당신의 몸이 정산으로 회복된 듯싶습니다.” 필자는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간증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인생 계산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50년(600회) 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면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등을 얼마나 했을까?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월 2,500,000원의 수입으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약 150,000,000원 정도의 십일조를 한 셈입니다. 감사헌금과 기타의 헌금을 합산하면 그보다 더 많은 헌금하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50년간 수익은 1,500,000,000원이란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으로 무엇을 위해서 살았을까? 성경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결론
필자는 복음서에서 두 인물을 늘 생각합니다. 첫째는 믿음과 관련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만약 하나님께서 필자에게 “너에게 무엇을 줄꼬” 물으신다면 ‘믿음’의 선물을 달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 곁에는 열두 제자는 물론 많은 사람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기적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수많은 사람 중에 백 부장은 최고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은 언제든지 행위가 수반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이 여인의 사건은 사복음서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이런 믿음과 헌신이 존경스럽습니다.
모태신앙인들은 최소 70~8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 평균 신앙생활의 연조도 20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 기간 동안 주와 및 복음을 위해서 무엇을 하면서 살았을까? 수많은 사람이 인생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여러 종류의 보험에 가입해 있습니다. 그런 보험은 이 땅에 있을 때만 보장을 받게 됩니다. 그 외 존재물 구매를 위해 할부(카드)로 많은 물건을 사들입니다. 오늘은 손에 들고 있는 계산기로 신앙의 삶을 계산해 보시면 자신의 믿음과 신앙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 지장이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쟁을 하듯이 돈이 없으면 할부(카드)를 사용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늘에 보험이 있습니까?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하늘에 보험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때를 위해 할부(카드)로 이 땅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