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러시아는 즉각 철군, 한국교회는 우크라이나 적극 돕길
전쟁,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만행
침략 전쟁 자체가 문제, ‘정당한 전쟁’ 없어
韓 반면교사를, ‘평화 쇼’로 평화 오지 않아
힘 없는 평화는 民 못 지켜, 군사적 준비를
2021년 11월 ‘기독교 평화론의 역사’를 설명한 책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를 집필한 바 있는 이상규 교수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특별기고를 보내 왔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전쟁’ 자체에 대한 성경적 시각을 전했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시도를 문제 삼고 있지만 실제로 다른 욕심이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전운이 감돌았지만 실제로는 침공치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러시아군은 기어이 무력 도발을 감행했다.
개전 첫날 벨라루스와 국경에서 90km 떨어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와 북동부 대도시 하르키우(하르키프) 외곽지대까지 진출했다. 또 러시아군은 남동부 항구도시 오데사와 마리우폴에 대한 상륙작전, 벨라루스 군과의 합동 육로 진격 등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침략 전쟁
러시아 측에서는 전쟁이 하루 이틀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우크라이나의 예상치 못한 저항에 직면한 러시아군은 민간인 거주지에 대한 무차별 공습을 시작해 아파트나 단독 주책이 파괴되고, 심지어 학교나 병원마저도 파괴되고 민간인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개전 2주가 지난 3월 4일 새벽에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에 공격을 가해 시설 내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총 16개 원자로 중 6개가 모여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이다.
전쟁 상황이라 하더라도 원전을 직접 공격한 것은 해 시설이 만들어진 후 푸틴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곳이 공격을 받아 파괴된다면 체르노빌 핵유출보다 더 심각한 핵재앙이 될 수 있다.
러시아는 국제법상으로 금지된 진공 폭탄을 사용한 의혹도 있다고 한다. 반경 수백 미터 내 사람의 내장을 파열시키는 무서운 무기를 말이다. 민간인을 살상하고 학교가 파괴되고 어린아이들을 인질로 잡는 전쟁이 지금 진행 중이다.
전쟁은 인간인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만행이고, 전쟁의 결과는 파괴와 살상뿐이라는 점은 역사가 가르쳐 준 실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재명은 “우크라이나 지도자의 무능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무고한 생명을 약탈하는 침략자를 탓하지 않고, 침략당한 자의 무능이 전쟁을 초래했다고 말하고 있다. 강도를 탓하지 않고 강도만난 자를 탓하고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빗대 다른 이를 공격하기 위한 의도였다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무고한 우크라이나에 대해 무력 침략을 감행한 푸틴을 탓하지 않고 기습 공격을 당한 나라를 탓하는 것은 건실한 사고라고 할 수 없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을 보면서, 전쟁이 너무 쉽게 발발했다는 생각이 든다. 통신이나 국제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던 시대가 아닌 오늘의 국제질서에서는 어떤 나라도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공동 운명체를 형성하고 있는 오늘 같은 글로벌한 사회에서,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은 수많은 전쟁을 경험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현대사에 다시 찾아온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이 너무도 미약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보도에 의하면 우크라이나는 항전 의지로 뭉쳐 러시아에 대항하고 있고, 젤렌스키는 예상과는 달리 불의한 공격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보도처럼 “내게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며 결사 항전 의지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가 어떠하냐가 아니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 전쟁 자체가 문제다.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 사실 어떤 선제적 침략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 초기 기독교는 평화주의를 지향하였으나, 콘스탄티누스 이후 서서히 평화주의(平和主義)는 퇴조하고 정전론(正戰論)이 대두되었는데, 정전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전쟁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의도라기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함으로서 전쟁을 막기 위한 대안이었다.
현실적으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 곧 국가종교(state religion)가 되면서 제국의 영토 확장과 같은 전쟁 전쟁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전쟁은 피해햐 한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경우의 전쟁에 대한 정전론을 제시한 것이다.
정당화될 수 있는 전쟁의 경우를 제시한 첫 인물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Cicero, B.C. 106-43)였다. 그는 6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때, 도덕적으로 양심의 가책 없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첫째, 국가의 명예와 안전을 지켜야 할 경우의 전쟁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방어적 전쟁은 정당하게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모든 평화협상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대화와 협상을 시도해야 하고, 그런 노력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에는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전쟁은 반드시 공적으로 공표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습공격이 부당하다는 의미이며, 전쟁이 적절한 경고와 더불어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넷째, 전쟁의 목적은 의로운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민족이나 국가를 정복하거나 자기 나라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잠정적인 전쟁의 목적이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다섯째, 비전투 요원이나 민간인들, 그리고 전쟁 포로들은 보호되어야 한다. 여섯째, 합법적인 군인만 전투에 참가해야 한다.
이런 6가지 조건은, 이러한 경우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정당한 전쟁 지침을 제시한다기보다, 전쟁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깊었다.
키케로의 정전론은 약간의 손질을 거쳐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주창되어 왔다. 대표적 인물이 암브로시우스(339-397)나 아우구스티누스(354-430)였고, 이들의 정전론은 그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 그리고 16세기 개혁자들, 그 이후 주류 교회에 의해 수용되어 왔다.
이런 정전론의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전쟁의 목적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잠정적인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없다.
한 달 이상 계속된 전쟁에서 러시아는 수도 키이우를 집중공격 했으나 이제는 남동부의 요충지 마리우폴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주거 건물 90%가 파괴되고, 1만 명 넘는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마리우폴을 집중 공략하는 것을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하다. 유럽으로 통하는 요충지를 확보하겠다는 탐욕이다. 군사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포기하게 하고, 친러 정권을 세워 러시아의 영향권 하에 두려는 속셈이다,
이번 전쟁의 피해가 적지 않다. NATO 고위 관계자의 추정에 따르면 러시아 군은 7천 명에서 1만 5천 명이 사망했는데, 1만 5천 명이라는 수치는 과거 소련 시절 벌였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10년 간(1979-1989) 소련군 사망자와 맞먹는 수라고 한다. 부상자도 2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 정전논의 혹은 평화협정이 일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얽혀 종전에 이르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도 침략 행위가 계속되고 있고 삶과 죽음의 절박한 현실에서 민간인들,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은 범죄 행위다
이웃 나라의 영토를 침공한 것은 그 자체가 범죄 행위이다. 전쟁은 평화의 파괴이며,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침략 행위에 대하여 유엔은 긴급특별총회를 개최하고, 러시아의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141:5라는 압도적 표차로 채택한 바 있다.
반대표를 던진 5개국은 러시아와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에리트레아(동아프리카 홍해 연안의 군국주의 국가)였다. 러시아 편을 들고 있는 이 다섯 나라는 정상적인 국가라고 볼 수 없다. 자유와 평화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들이다.
기권한 나라로는 중국, 인도,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등이 있다. 인도는 인접한 국가라는 이유겠지만, 이들 나라는 이해 관계에 따라 기권을 선택한 것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안보의식이 강화되고, 유럽 국가들은 군비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또 다른 군사적 긴장과 대립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평화 쇼’로는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정한 평화를 위한 정직한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사기이자 기만일 뿐이다.
또 한 가지, 힘 없는 평화는 민(民)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군사적 준비는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준비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전쟁 없는 평화라면,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군사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것을 라인홀드 니버는 ‘현실적 평화주의’라고 불렀다.
비전(非戰)·반전(反戰) 평화주의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한 가치이지만,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 자기 포기의 희생을 감내할 용기가 없다면, 적이 감히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군사적 대비를 해야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적에 대한 정확한 판단, 그리고 정직한 접근 없는 소위 ‘평화 프로세스’는 쇼이자 기만일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번 어려움에 처한 우크라이나를 돕고 전쟁 난민을 후원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이 가상하다는 점이다. 교단별로 모금활동이 전개되고 있고, 한국교회봉사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그 나라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기 위한 노력은 강도 만난 자에 대한 사랑이다. 과거 한국교회봉사단은 이런 봉사의 전례가 있다.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에서 최악의 해안 기름누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름띠 제거를 위한 자원봉사자가 120만 명에 달했는데, 이중 85만 명이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기독교 신자들이 70%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러시아는 즉각 철군해야 하고, 한국교회는 어려움에 처한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1930년대 초 극심한 기근으로 350만 명이 굶어 죽었던 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이기도 하다.
이상규 박사
백석대 석좌교수
고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