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현란한 기능화 시대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선호 기호 선택의 여지를 넘어서서, 기능은 능력이 되고 감정을 능가해 권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평가와 정오 기준을 넘어, 그 기능 유무 자체가 실존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이런 시대 주님은 어떤 가치이며, 형이상학의 범주에 속하는 믿음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합니다.
또 믿음의 삶에 필연인 영적 이유로 인한 고난이란, 어떤 의미와 기쁨 힘 혹은 아픔인가 생각합니다.
해마다 고난주간이 되면 우리는 지나친 정서주의를 넘어서기를 주문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고통스러우셨을까의 의미를 넘어선다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의 깊은 고난의 의미를, 정서를 넘어서 진실 속에 구원의 반열에서 반추함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가며 모든 것이 기능이어야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메말라 믿음의 효능에 대한 감격과 감동의 가치가,
SF영화나 사이버 공간에서 어떻게 다가오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시간의 흐름은 시대와 사고의 변화를 가져왔고,
지금뿐 아니더라도 세대는 늘 가고 오며, 이전과 새로움의 괴리를 확인시켜 주고는 했습니다.
우리도 다만 너무 지나치지 않은 언제나 있었던 시간대의 변화를 느끼고 있을 뿐이며, 극복될 것입니다.
사이버 상의 성령충만, 가상공간에서의 감동과 감격, 그것조차도 어차피 시간은 평정할 것입니다.
언제나 시간의 흐름은 어렵고 혼미하다 여겼던 것들을, 제 위치에 놓고 보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 시간과 그 흐름이 주는 바른 해득과 정위치를 찾게 될 것입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며, 우선 생각나는 것은 삶의 도락을 정돈하고, 금식하고 고난을 묵상함입니다.
그것이 우리 후손의 세대에는 어떤 의미로 와 닿을까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금식이란 말을 본지는 오래 됐고, 교류와 소통의 금지는 호흡의 정지만큼 힘든 시대입니다.
그 갈급한 소통의지 만큼 인생은 더 고독하고, 그 고독에 익숙해짐이 이루는 문화는 또 새로운 장입니다.
이제 이번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묵상하며, 우리는 각자를 판단하지 않고,
각각 주어진 영적 상태와 장에서 그리고 시간이란 무대에서,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려합니다.
진리는 시대의 옷을 입으나, 본질은 변함 없이 흐르고 전달됨을 믿고,
우리에게 주어진 경건의 장을 향하여 나아갑시다.
요즘은 자꾸, 믿음의 모양을 판단하고 권면할 것이 아니라, 시대와 세대와 문화를 넘어서는,
믿음의 참된 힘과 가치를 전하고 누리며 함께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믿음은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