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진달래 만개한 새벽 한들 바람 좋구나, 좋다. 늘그막에 만난 진인(眞人)의 숨결을 매단 어스름 하늘, 반달이 구름을 지날 때 다소곳 따르는 새벽별 노래 좋구나, 좋다.
희붐한 가로등 밑 큰 나무 그림자는 어느 가난한 과부가 이십 년 전에 심은 뽕나무라던가. 삭개오의 절실한 구애를 받아들인 장부의 그림자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한밤중에도 있고 새벽 여명에도 있으니 시린 가슴 참 평안하고 좋구나, 좋다.
그리운 얼굴. 고옥한 옛길 따라 설렘으로 다가오는 정겨운 그네들, 다정이 병인 양 듬뿍 안긴 아비의 십 년 사랑, 진저리친 세월 뒤로 숨은, 못된 인수레들 마저 티끌 없는 새 여명에 지우고 또 지우니 미소 문 입술 좋구나, 좋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9:62)”.
기억의 사고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소풍 길의 진혼곡. 버리지 못해 발병된 신경과 내원 환자들에게, 낡은 부대를 당장 버리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의 훈령.
비우고 버려야 채워지는 순리의 절대자 품으로 돌아오니 만감이 교차하는 중에 잘했다 싶은 마음 참 기쁘고 좋구나. 좋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이사야 55:3)”.
언제 그랬던가. 폭언과 폭력 앞에 숨겨진 소녀의 꿈과 소망, 혈연이 저지른, 만행의 탐심으로 빚어진 얼룩진 세월, 갈등과 대립으로 상실한 본초의 그림자, 문화의 격세지감조차 느낄 수 없이 이방인으로 살아온 허망의 나이테마저 봄날 여로 단봇짐 밖으로 내버리니 세월 참 좋구나, 좋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에베소서 2:13)”.
생명으로 태어난 그날부터 형성된 사회 속에서 희로애락의 인생여정은 말을 통하여 소통과 대립, 사랑과 이별, 호재와 악재, 선악의 공간을 넘나들며 채워진다.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잠언 10:14)”.
말을 많이 하면 실수가 따른다. 말은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하는 것이 좋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특히 타인에 대하여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이유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
그러나 생각을 지배한 말은 독사의 혀처럼 잔악하기도 하고, 솜털보다도 부드럽기도 하며, 당위성 있는 말, 상처의 말, 독선과 위선, 폭언으로 심화되기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살아간다. 남의 말, 뒤 담화, 비판, 주관적 언어들이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세상이다.
벼르고 별러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의 시간은 무심한데 봄날은 간다. 연일 제쳐두고 모처럼 일상을 덮는다.
실눈으로 꺼내든 자유를 풀어 안고 자유로(自由路)를 따라 달린다. 인적 없는 한강 뜰을 놓치면 아쉬움도 잠시 흐드러지게 꽃비 나르는 임진강변이 버선발로 다가온다. 이름 모를 촌가에서 바리바리 싸온 먹거리로 추억을 먹고 마시면 새로 튼 솜이불처럼 다가오는 여분의 시간은 노근한 평화다.
이내 일으킨 나른한 몸을 싣고 인적 드문 옛길 따라 저속으로 굽이길 돌아치면 적벽가(赤壁歌) 들리는, 기왓장 이끼 고옥한 어수정(御水井) 약수터. 임금님이 마시던 약수 한 사발 들숨날숨 잔잔히 들이키면 어느새 회환과 상처 해 아래 안개처럼 사라지니 하늘, 구름, 바람, 햇살 참 좋구나, 좋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3-!4)”.
우상숭배하고 지옥 갈 자 가득한데 일생 중에 택함 닫아 예수 그리스도 믿고, 천국, 영생 보장 받고 살아가니 참으로 정말 좋구나, 좋다.
하민국 목사
웨민총회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