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린이를 아낌없이 사랑하시는 어머니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며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니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누가복음 10:13-16)”.
어린아이들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벌지 않고, 부모들이 주는 것을 받아먹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는 당시 바리새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의 공로나 선행으로 차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자신의 마음을 비워내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3-15절 말씀에서 보듯, 제자들은 단순히 둔하고 속물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예수님께서 지나치게 주목 대상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들은 아직 ‘어린아이들’로, 가장 큰 자가 되실 예수님의 혁명적인 가치 기준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 이니라”는 말씀은 모든 어린이가 자동적으로 구원 받음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낮은 지위를 제자도의 모델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올해 5월 첫째 주일은 기독교에서 정한 어린이주일입니다. 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은 100년째를 맞이하는 오래된 기념일입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한 이유는 어린이를 천대하던 시절 어린이 애호 사상을 함양하고, 어린이를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한 범국민적 분위기 조성을 위함입니다.
일제 초창기 제정된,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뜻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린이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는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지역별로 매년 어린이들을 위해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있지만, 일회용 선심성 행사는 지양하고 아이들이 정말로 행복해할 수 있도록 사랑의 가슴으로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코로나19 장기화 사태로 모든 것이 비대면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여, 지난 3년간 자기 가족에게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외당한 아이들과 가족이 없어 어머니나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종교단체나 우리 신앙인들은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고 용납하라”고 당부하신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며 실천으로 옮기는 사랑의 정신을 품고, 사랑에 목말라 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나눠줘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필자는 길을 걷던 중, 한 여인으로부터 전도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전도지가 참으로 예쁘게 보여 겉과 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거부감 없이, 펼쳐서 읽어 보려는 충동이 느껴졌습니다.
요즘 전도지를 보면 앞장에 사탕을 달아놓거나 물티슈나 화장지 등을 붙여 나눠주는데, 대개 받지 않고 버리거나 사탕, 휴지만 챙기고 전도지는 그대로 길거리에 버려지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 전도지에는 물질은 없고 오롯이 예쁘게 접은 종이 한 장 속에 깊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비신자들도 감동케 하는 훌륭한 전도지였습니다.
전도지 안에 어머니가 아이를 전심을 다해 사랑한 모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두 고아원이 있었는데, 시내에 있는 고아원은 정부 지원으로 아이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주고 있었고, 시골의 다른 고아원은 지원이 부족해 제때 영양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어린이들의 사망률이 늘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사망률이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원인을 조사하던 중,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포격으로 자식을 잃은 한 여인이 충격으로 정신이상을 일으켜 시골 고아원에 오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아이들만 보면 자기 자식인 줄 알고 가슴에 끌어안고 하루종일 사랑의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어린이들의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어린 생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배불리 먹는 것도, 좋은 장난감도, 좋은 옷 입는 것도 아닌 따스한 엄마 품이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친엄마의 품은 아니지만, 엄마의 가슴으로 착각하고 사랑을 느끼는 아이들에겐 그것이 생명을 이어주는 구원의 품이 됐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에 목말라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이는 우리 가정의 미래요 이웃의 미래이며, 나라의 미래입니다. 이 땅 모든 어린이들의 행복을 위해 소외되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꿈을 실어주고, 부모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신실한 사랑으로 다가가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들이 넘쳤으면 참 좋겠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전심을 다해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서로 사랑하며 질서를 존중하고 정직한 역사를 배우게 하며,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은 물론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아름다운 문화 속에서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먹을 음식 전부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 앞에 선뜻 내어놓은 어린아이의 선한 믿음과 행실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어린아이 어머니의 준비성 있는 모습은 어린 시절 소풍 날 어머니께서 싸주셨던 도시락을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어린아이의 용기 있는 믿음에 찬사를 보냅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남몰래 한쪽 켠 외진 곳에서 혼자 배고픔을 해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중 감동을 받은 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웃 사람들의 배고픔과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용기 있게 음식을 내놓았습니다. 어린아이의 믿음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자라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주님 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꽃피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별하지 않고 사랑했던 고아원 어머니의 삶을 본받아, 이 땅 모든 어머니들 역시 차별과 편견을 멀리 하고 모든 어린이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 사랑을 품에 안은 어린이들이 잘 자란 뒤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품는 작은 천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