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의 러브레터] 파레토 법칙, 롱테일 법칙
1. 평범하게 밥 먹고 사람들 만나고 일을 하는 것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기본 삶의 욕구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많아지고 보통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행복한 나라입니다. 사각지대가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니까요.
‘파레토 법칙’. 20%의 충성고객이 매출의 80%를 만든다는 법칙이 유행했습니다. 이 법칙이 유행하다 보니 백화점과 매장마다 20%의 충성고객을 만드는 것이 당연시됐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겠지만, 20%만을 위한 운영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부익부 빈익빈을 낳았습니다. 전체 총량은 부유해졌지만, 소외계층은 늘어만 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도적으로 금전적 지원은 잘 되는 편입니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큰 변화가 없거나 떨어집니다. 불만족은 늘어나고 짜증과 분열은 점점 확산됩니다. 남여 모두 불공평하다고 아우성입니다.
2. 경제학에서는 10년 전부터 ‘롱테일 법칙’에 관심갖고 있습니다.
80%의 매출을 만들지 않는 20%의 비주력 품목에서, 오히려 80%의 순이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소외돼 있던 영역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면, 전체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논리입니다.
사실 이건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매출총액과 전체적인 숫자놀음에만 빠지면 점점 사각지대는 늘어납니다. 사각지대에 주의집중하지 않고 전체 총량에 집중하여 남는 돈을 풀어주는 정책을 씁니다.
결국 사회 전체는 돈이 전부인 줄 아는 의식구조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서로를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이익구현의 도구로 보게 됩니다.
3. 결국 오늘날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소수의 목소리를 향해 주어지는 관심에 대해서는 ‘불공정, 불평등’이라는 이름, 정치적으로는 ‘비문명적’으로 해석돼 전달됩니다.
그래서 불편하다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는 전체를 흔드는 불안으로, 나의 편안한 일상을 무너뜨리는 폭력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모두 살아가는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을 점점 개선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 사람의 범위에 들어가는 존재들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만남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모두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트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자유입니다.
그와 달리 현재 있는 사람들끼리의 논리에만 충실한 공간은, 그곳이 아무리 넓어보여도 결국 닫힌 공간이 됩니다. 닫힌 공간은 아무리 아름다워져도 누군가에게는 들어설 수 없는 공간으로 빌드업됩니다.
결국 사각지대는 늘어나고, 우리라는 넓은 세계는 우리끼리의 세계로 고착됩니다. 그 공간 밖 사람들 목소리는 들어도 들리지 않는 듯한 이들에게 거세집니다. 거세진 목소리는 평범한 행복을 무너뜨리는 불편함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4. 평범함의 행복, 어쩌면 우리 모두가 누리고, 누군가는 누리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오늘 나의 일상이 당연히 여겨지는 행복이라는 의미이지만, 이런 당연한 일상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행복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느껴야 합니다. 그들이 여기 오기 불편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바로 이곳에서 나와 우리끼리의 행복을 위해 살아왔던 , 그것이 만든 사각지대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들이 불편을 잠시 느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행복한 세상을 위해선 불편한 공사를 해야 하니까요.
5.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예쁜 집이 있습니다. 30년 정도 살았던 정원이 있는 예쁜 집에서, 어느날 계단을 올라가다 넘어졌습니다.
목발을 짚고 걸어가던 그날, 집을 리모델링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순전히 제 편의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 결정을 두고 그 누구도 탓하지 않습니다. 그 공간은 저희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니까요.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 순간 문득 꿈트리(달꿈학교 전신)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을 세워 나가야 하는 공동체라는 철학.
그런데 건물이 주가 되어버린 한국교회에 맞서는 것은 제가 있는 교회를 건축하지 않는 것에서 구현한다고 믿었습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해서가 아니라, 의식이 공간을 지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철학은 그렇다 해도, 학교나 병원, 집 등 건물이 아닌 곳은 없습니다. 예배드리지 않는 순간에도 매일 교회에서 공부하고 연습하는 아이들과 달리, 저는 예배를 드리면 나름 정원도 있는 아담하고 예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평범한 가정의 일원입니다.
아이티에 있는 아이들 이야기에는 눈물 흘리거나 가진 돈의 아주 작은 부분을 흘려보내면서 할 일 다한듯 살고, 이곳에 있는 아이들의 평범한 삶이 가진 불편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이런 저런 프로그램 정도로 충분하겠지, 이 정도 밥 사주면 감사해야지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제가, 누군가가 저와 같은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함을 당연한 듯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가 알았으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였습니다. 너무 평범해서 모두 사각지대가 되어가고 있는, 어쩌면 이 나라 많은 분들의 삶일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 삶이야말로 평범하다며, 전혀 몰랐던 이야기 말입니다.
6. 달꿈학교를 짓기 위해 30년 살던 집을 허물었습니다. 그동안 항상 봤지만 보지 못했던 아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13평 집으로 이사가 1년을 살았습니다. 1년 내내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일어나면 눈앞에서 바퀴벌레들이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자다가 불안해서 눈을 뜨면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수세식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공사 현장은 또 다른 불편함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공사 기간 내내 이웃들의 불편한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공사장에 드러누운 주민도 있었습니다.
온갖 소문이 퍼졌습니다. “장애인 목사가 뭔가 건축하니 장애인 단체가 들어오나봐. 정부 보조금이 어마어마하겠지”부터 시작했습니다. 공사에 영향이 있을 것 같은 이웃에게 편지를 써서 작은 선물과 함께 마음을 전했던 일은 “세입자들은 안 줬대”, “목사가 지으니 교회가 들어오는 거 아니야? 시끄럽겠다”는 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일, 미국 애틀랜타 밀알 초대로 허물어지는 집을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오래된 것에 집착할까봐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하셨나보다, 부모님과 아쉬운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소문은 “건축하고 미국으로 도망갔대”로까지 확산됐습니다.
7. 미국 집회 마치고 한 달 뒤 돌아왔습니다. 힘들어 하시는 이웃들을 만나며 설명드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당신들이 틀렸고 우리 이야기가 맞다고 만난 것이 아니라, 그저 고개 숙이고 죄송하다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30년을 거주하신 큰 어른입니다. 그간 이웃들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옆집이 건축할 때도 싫은소리 하나 안했는데, 정작 건축한다고 고개숙여야 했던 날, 아버지가 제 휠체어를 밀며 물으셨습니다.
“아니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30년 산 동네에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냐. 편히 먹고 살 집 마련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좋은 일 하기 위해 내가 사는 집 허물고 짓겠다는데, 너나 나나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냐”는 취지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지금은 우리가 고개 숙이지만 오늘 우리가 고개 숙임으로 언젠가 아이들이 고개 들고 다닐 날이 올 거예요.”
공간이 완성되고 이제 달꿈은 동네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이웃들이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한두 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두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8. 장애인 이동권 문제로 연일 시끄러웠습니다. 이미 아시는 것처럼, 저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입니다.
4살에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직장에 이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는 지금처럼 장애인을 위한 도움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IMF가 왔을 때는 엘리베이터를 3층까지 꺼두었습니다. 그 이상 되는 층으로 가야 했지만, 언제나 꺼져 있었습니다.
넓은 캠퍼스가 좋은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하는 저로서는 캠퍼스가 넓은 것이 독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이동한다는 것 자체도 그림의 떡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있는데 누릴 수 없는 대학 생활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젊은 날을 재미있게 살아야 하는 친구들이, 저 때문에 피해보는 것은 더더욱 싫었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저를 위해 고생하신 어머님에게 기대기 싫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도의 문제는 아닐까 싶어, 행정실과 학과 사무실에 불편을 이야기했습니다.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습니다. “장애를 갖고 이 학교에 온 이상 네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너 한 명을 위해 학교나 다른 학생들이 불편을 겪을 순 없다”고 말입니다.
지금 들으면 충격적이지만, 대학교 입학 면접 때 “그런 장애를 가지고 학교 다니기 힘들텐데, 어떡하려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교수님들이 있던 시대이니, 너 한 명을 위해 우리가 불편을 겪고 대부분 학생들과 선생들의 보통의 삶을 멈출 수는 없다는 이야기는 상식인지 모르겠습니다.
9. 그렇게 다니던 대학 시절 내내, 목발로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휠체어는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초·중·고는 교실에 휠체어를 두고 공부했지만, 휠체어를 가지고 이동할 수 없는 환경인지라 오직 목발로 승부를 봐야 했습니다. 목발로 승부 본다는 말을, 아마 지금 의사들이 들으면 기겁할 노릇일겁니다. 제 장애는 걸어서 다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전신마비 장애인이신데 휠체어 타고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이 이슈인 듯 합니다. 대단하다 싶어 봤는데, 불완전 마비였습니다. 전신마비이지만, 실은 완전 마비가 아닌 경우입니다.
이 경우 전신마비라고 흔히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완전 마비에 비해 활동이 훨씬 자유롭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 노력을 보고 응원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완전 마비 환자들은 아예 그런 노력조차 시도하기 어려운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제 경우는 완전 마비 흉수 2-3입니다. 보통 흉수 5-6만 돼도, 목발로 잠깐 서는 것도 버겁습니다.
미국 병원에서 제가 걸었던 이야기를 하니 “정말이요?”라고 의사가 되묻습니다. 병원에서 당연히 추천하지도 않을 뿐더러, 휠체어에서 평생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당연한 듯 목발을 짚고 살아 왔습니다. 특히 대학 시절 내내 20대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대학 시절의 삶을 위해 어쩌면 병원에서 4살 때부터 그토록 훈련받았구나 싶었습니다. 한 번은 계단에서 넘어져 팔이 다쳐 부모님 몰래 휴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겨울철에도 머리에서 김이 났습니다. 가끔은 군대가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건강했으면, 군대라도 가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 시절은 공부를 한다기보다 수업을 들으러 이동하기에 급급하고, 매 수업마다 목숨을 걸고 오가야 했습니다.
10.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금, 제가 졸업한 학교를 가보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봅니다. 건물마다 있는 휠체어 리프팅 시설, 그리고 학교마다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제도들이 너무너무 잘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 건물 앞까지 가기 위한 보통의 삶의 질 말입니다. 아름다운 캠퍼스를 자랑하지만, 그 캠퍼스 곳곳에는 여전히 높은 경사로, 그래서 여전히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다닐 수 없는 구조들 말입니다.
장애인 주차장은 마련돼 있지만, 주차장에서 목적지까지 갈 수 없는 도로의 불편함은 여전합니다. ‘그림의 떡’이 여기저기 많습니다.
11. 제가 타고 다니는 휠체어는 활동형 휠체어입니다. 말 그대로 활동형 휠체어라서 가볍습니다. 가볍다는 기준은 약 10-13kg입니다.
혼자서 다닐 때는 차에 휠체어 바퀴를 분리해, 조수석 자리에 넣고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활동에 편리하기 위해 앞바퀴 등이 작습니다. 이 정도 가벼운 휠체어여야, 차에 혼자 넣고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휠체어 가격은 500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웬만한 중고차 시세입니다. 그에 대한 정부보조금은 48만 원입니다.
전동휠체어 가격은 오히려 저렴합니다. 약 200만 원입니다. 거기에 정부보조금은 약 150만 원입니다. 아이러니하지요.
12. 얼마 전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정치권의 이슈가 되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드러누운 장애인들을 보며, 사람들은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왜 굳이 바쁜 와중에 여기에 와서 이래야 하냐는 것입니다. 100% 동의합니다.
누군가에게 불편을 호소할 때, 타인을 불편하게 하면 동감보다 반감을 얻습니다. 누군가에게 불편을 호소할 때는 오히려 내 자신을 불편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불편하게 하면서 불편을 이야기할 때, 내가 누리던 당연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결국 우리 중간지대를 넓혀가는 일입니다. 그것이 모두의 행복을 위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잠깐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왜 수동 휠체어로 다니면서 불편하다고 하느냐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 젊은 분들을 공원이나 야외에서 보신 분들이 있나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지금은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제 30대 이야기입니다. 약 10년은 더 된 이야기 같네요. 이벤트에 당첨되어 전동 스쿠터를 무상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품을 받으려면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한답니다. 병원에 갔더니 노인이거나 상지기능 장애가 있어야 한답니다. 하반신 마비는 해당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애초에 손이 멀쩡하면 수동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겁니다. 한 번도 사용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헐값으로 팔았습니다.
13. 그러니 저같은 사람은 수동 휠체어를 타야 하지요. 문제는 수동 휠체어로 다닐 수 있는 곳이 더욱 더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식당을 예약하려 해도 경사로가 있는지 없는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경사로의 경우도 1/12 이하인 규준을 갖춘 곳은 거의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도움 없이 다닐 수 없는 구조는 자존감을 하락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팔로 모든 곳을 밀고 다녀야 하니, 팔이 금방 상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니 그 팔마저 상해야 전동휠체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변에서 왜 수동 휠체어를 탄 젊은 사람들을 볼 수 없는지 알수 있지요? 아예 집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건 목숨을 건 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단순히 집밖을 나와 지하철 한 정거장 되는 거리를 다니는 일상도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일입니다.
친구를 만난다는 것도, 같이 영화를 본다는 것도 말입니다. 극장에 가면 언제나 휠체어 장애인 좌석은 가장 앞좌석입니다. 조금 보기 편한 중간이나 뒷자리는 왜 마련하지 않을까요. 공간의 문제일까요?
뮤지컬 공연장은 반대입니다. 가장 앞자리를 절대 주지 않지요. 가장 뒷자리입니다. 아이러니하지요. 과연 공간의 문제일까요?
14. 차없는 거리가 많아졌습니다. 환경이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그 참으로 올바르고 아름다운 생각의 세계에도, 휠체어를 타고 나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당장 휠체어를 끌고 밖에 나가보면 압니다. 차들의 소음 없이 걷기 편한 길을 만든 것인데, 그곳에 휠체어가 다니기 편한 길은 별로 없습니다.
횡단보도 사이 사이 움푹 패여진 곳들, 걸어다닐 때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1cm 턱들, 걷는 도로 만든다고 예쁘게 만든 도보는 휠체어가 멈춰서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차없는 거리인데 휠체어가 갈 수 없는걸 보니, 휠체어는 아마 차인가봅니다. 그래서 주차하고 교회로 갈 때 혼자 밀면서 저는 차도로 다닙니다. 그것이 더 안전하니까요.
15. 지하철 엘리베이터. 저상버스등의 숫자가 늘어나야 하는 문제에 세상은 집중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둥근 바퀴가 다닐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어차피 매년 도로공사를 하니까요. 사람들 모두 알고 있는 문제, 연말 예산을 다 쓰기 위해 올해도 어김없이 멀쩡한 도로를 파는구나.
그런데 수십 년 반복되는 멀쩡한 도로를 파서 하는 공사는 새롭게 되어도 멀쩡하지 않습니다. 색은 세련되어졌고, 차가 다니기 편해졌고 사람들이 다니기 편해졌는데 여전히 수동 휠체어로는 100m 앞도 오가기 어려우니, 휠체어는 아마 차도 사람도 아닌가 봅니다.
16.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때 일입니다.
학교의 자립과 지역 주민들과의 공생을 위해 카페를 내면서, 제대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목사님까 대충, 세상물정 모르는 커피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봉사자들에게만 권하고 나만 쏙 빠지는 일은 싫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큰 커피협회에 시험을 신청했습니다. 필기 시험은 한 문제인가를 제외하고 합격했습니다.
필기 시험 장소에는 장애인을 위한 혜택이 있었습니다. 이상하지요. 장소의 혜택은 있는데, 주차하고 휠체어가 이동하는 경로에 대한 설명도 안내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시험을 본 뒤에 실기시험 접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왔습니다. 장애인이냐고, 휠체어 타셨냐고. 그렇다 했더니 그럼 일어나서 보실 수 없냐는 겁니다.
휠체어를 탔는데 일어나서 보라니 무슨 말이냐고…. 휠체어를 타고 앞으로도 일해야 하니 당연히 휠체어를 타고 봐야 하지 않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시험을 보지 말것을 추천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이유가 뭔가 물었더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배려처럼 느껴졌으나 제외처럼 느껴졌습니다.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안전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더 황당했습니다. 일해야 하는 기계의 높낮이가 높으니, 휠체어 높이에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을 위해 한 대만 낮은 책상에 설치할 수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럴 수는 없답니다. 일어나서 보든지, 개인이 높낮이에 맞는 뭔가를 준비해서 보랍니다.
그럼 휠체어의 높이가 얼마나 되어야 할지, 아니 시험 장소의 데스크 높이를 알려주든지, 어느 정도 되는 받침대를 준비할지 알려달라 했더니, 그것은 안 된답니다.
그래서 정중히 물었습니다. 이럴 거면 필기 시험에 대한 혜택은 왜 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실기 시험에서 배제될 것을 권유받는다면, 그것도 안전상의 이유라면 앞으로 휠체어를 타고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배제시키는 것보다, 그들에게도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그러니 나는 시험을 꼭 합격하고자 보는 것이 아니라, 저같은 사람이 시험을 보는 것을 직접 보심으로 휠체어를 탄 사람이 커피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면 되겠구나, 서로가 공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보고 두 번만에 붙었습니다. 저는 현재 휠체어로 학교 1층 카페에서 여러 음료를 타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카페, 평범한 일인데 특별한 기회를 주는것처럼 여겨졌나 봅니다. 그 기회조차 박탈당할 뻔했습니다.
17.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 위해 차를 사줘야 할까? 아니 차를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을 멈추는 공사를 해야 합니다. 차를 사도 움직일 수 없는 세상을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평범한 도로에 바퀴달린 사람들도 사람임을 세상이 느낄 수 있는 곳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이 둥글둥글해져야 합니다. 모나지 않은 곳. 둥근 바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이 지구를 둥글게 만든 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 머리를 그렇게 둥글게 만든 건 아닐까요? 둥글게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18. 새로운 대통령이 임명되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자 했습니다. 좋은 이야기인데, 매번 들어왔던 이야기여서인지 그저 구호로만 여겨집니다. 그보다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 인종차별을 극복한 나라의 엘리트 교육기관에서 공부한 분의 입에서 ‘시민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방식은 비문명적’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요즘입니다.
결국 그것은 최대 다수의 행복의 폭을 넓혀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안함과 일상에 생각이 다른 너희들은 불편함을 호소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2003년에 헌법재판소, 2009년 대법원의 판례는 의견 전달을 위해 어느 정도의 소음과 통행의 불편이 발생하는 것은 부득이하므로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편안함을 누군가의 목소리가 불편하게 한다 해도, 그것을 수인할 때 민주주의는 발전해 왔던 것이 바로 ‘문명적 발상’입니다. 그것은 상식이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마치 특별한 것처럼 바꿔버린 오늘날 우리 시대가 아이러니합니다.
노키즈(No Kids)존. 우리의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나에게 불편함을 주지 말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되지 마십시다.
누군가의 불편함 호소는 그에게 있어야 하는 일상이 사라진 특별한 불편함임을 인정하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공간에 누구라도 올 수 있도록 둥근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류한승 목사
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