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의 전설로 불리는 ‘요기 베라’라는 선수를 아십니까? 총 19년간의 메이저리그 선수생활 중에서 15년 연속 올스타, 3번의 개인 MVP, 10차례 팀 우승을 일구며 전설적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은퇴 후에도 감독으로 본인이 이끌었던 팀들을 모두 월드시리즈(최종 결승전)에 진출시키며 명장으로 불려진 인물입니다. 이 선수가 더 유명해진 건 오늘 주제이기도 한 이 명언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이 말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포기하면 안돼! 라며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이기기 위해 도전을 해야 한다는 의미, 다른 하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상대방이 역전 할 수 있으니 방심하면 안돼! 라는 의미를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경기가 펼쳐지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경기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마지막 9회 3개의 아웃을 잡아야 마무리 되어야만 경기가 종료되는 야구라는 특성상 끝날때까지 어떠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생겨진 말이죠.
우리 인생에서도 요기 베라의 명언처럼 끝날 때까지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역전이라는 값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저는 환갑의 나이에 지금 운영하고 있는 비지팅엔젤스코리아를 창업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창업을 하던 2007년에만 하더라도 60이라는 나이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보다는 은퇴와 노후를 준비하는 나이로 생각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이라고 하는 숫자에 갇혀서 끝을 준비해야 하는것을 이상하게 여겼고, 새로운 길이 보이는 기회를 찾아 창업이라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창업 후에도 끝날때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마음은 변치 않고 있습니다. 끝일수도 있겠다고 여겨지는 위기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창업 후 15여년의 세월을 이겨내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라는 마음으로 기도의 분량을 채워가며 큰 일을 이루신 시니어가 있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울산 지역 최초 기독교 방송국인 ‘울산극동방송’ 개국을 위해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을 묵묵하게 기도로 준비하며 개국에 큰 역할을 하신 오차출 울산극동포럼 회장 (1937년생) 입니다. “허가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운전하던 중에 저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라며 운을 뗀 오차출 회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들었던 방송국 개국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벌써 25년이 흘렀습니다. 1997년 1월 어느날 평소 친분이 있던 경남 CMBC (크리스천 실업인 모임) 회장으로 계시는 박윤섭 장로님께서 창원에 기독교 방송국인 극동방송이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창원보다 인구도 크고 기독 인구도 많은 울산에도 방송국이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타오르더라구요.” 오차출 회장은 울산 기독교 방송국의 필요성을 함께 느낀 울산지역 CBMC 회원들과 함께 의기투합해 설립 추진위원회를 조직했고 울산지역 교계와도 함께 해 울산기독교 연합회 방송 설립추진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처음 시작 할 때 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분들께서 도움을 주시면서 순풍을 타고 어렵지 않게 개국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방송 설립 추진위원회 핵심 멤버구축과 울산 교계와의 연계가 순조롭게 이뤄졌고 어렵지 않을까 했던 울산 시민들의 서명운동도 5만2천명이나 함께 해주시면서 문화관광부에 인허가 접수까지 순조롭게 이뤄졌습니다.” 오차출 회장 자신도 몸담고 있는 직장 한 켠에 기도실을 만들어 매일 새벽마다 기도로 개국을 준비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그 흔한 난로도 없이 기도를 시작했고, 여름에는 새벽에도 한낮의 열기가 식지 않아 선풍기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는 상황속에서도 많은 분들이 기도로 함께 개국 준비를 도와주셨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표출된 기독교 방송국을 향한 열기는 곧바로 개국으로 이어질 것처럼 느껴졌었다고 오차출 회장은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내 마무리 될 것 같았던 인허가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시간이 2년, 3년이 흐르자 처음의 뜨거웠던 열정은 점점 사그러들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기로 했던 설립추진위원회원들 역시 동력을 잃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허가가 이유 없이 지연되자 마음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방송 인허가의 주관 부서인 문화관광부에 수차례 결과 회신을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고 청와대와 국회에까지 면담을 추진 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답답함에 매일 새벽과 주중 기도회로 함께 하기로 했던 회원들 역시 하나 둘 씩 지쳐가 기도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어느 순간에 다다르자 이제 끝인가 마음을 이제 접고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건가 라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였던 순간이었지만 오차출 회장은 끝날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개국을 위한 실무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인가가 언제 날지는 모르지만, 불허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실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가가 되면 장소, 장비, 인력등을 구성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을 만나며 헌금을 요청드리며 바쁘게 보냈습니다. 방송 제작을 위한 사옥 확보를 위해서도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인가를 허가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결국 개국을 준비한지 5년만인 2001년 10월 울산극동방송이란 이름으로 주파수 FM107.3MHz 로 허가가 났습니다. “허가가 나자 극동방송의 대표이신 김장환 목사님께서 연락주셔서 성탄절이 있는 12월에 꼭 시험방송을 시작해서 울산 시민들에게 캐롤을 들려주자는 기도 제목을 주셨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시험방송을 위해 다시 또 달렸습니다. 개국을 열흘 앞두고 송신소에 불이나 하마터면 개국이 늦어질 뻔했으나 그것도 하나님께서 막아주셔서 큰 피해는 입지 않았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마음을 갖고 개국을 준비하던 오차출 회장의 마음 덕분에 울산 극동방송은 그해 12월 13일 성탄을 2주 앞두고 시험방송에 성공했으며 이듬해 2002년 2월 개국감사예배를 드리며 역사적인 출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라 불리우며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던 예레미야를 모두가 아실 겁니다. 예레미아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메달려 기도하던 선지자 였습니다. 모두가 패배주의에 빠져있을 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외치며 계속 도전을 이어간다는 건 사실 굉장한 큰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니어에게 이런 자세가 필요한 이유는 미리 포기하면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모든 희망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니어들의 인생에는 여전히 수많은 기회와 역전의 날들이 남아있습니다. 무언가 그만두고 포기하고 싶으신게 있으신가요?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희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